
오랜만에 딸네 집에 오신 아버지는 이틀 밤을 주무시고 가실 채비를 하신다.
집짐승의 끼니를 걱정하며 싸락싸락 눈이 내리는 길을 나섰다.
이별의 아쉬움이 흐르는 터미널 가는 길,
도시 한복판이 꽁꽁 얼어붙으며 추위에 떨고 있었다.
차표 시간을 놓칠세라 조바심이 난 아버지 대신 나는 공원 샛길을 무질러 앞장을 섰다.
미끄러운 길, 몇 번이고 뒤 돌아보아도 그 자리에 그대로 계신 것만 같은 아버지가
잦은걸음을 치며 "미끄런디, 어여가."하며 숨차게 뒤따라오신다.
몇 해 전 혼자 되신 아버지와 눈물짓지 않고는 헤어질 수 없는 이별을 앞에 두고
서로 말수가 줄어들고 시선은 숨기듯 비스듬히 떨군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그렇게 아버지가 탄 고속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바라기를 하다가 돌아섰다.
막술 냄새가 애잔하게 풍기는 아버지는 남도 제암산 자락 아래
집짐승의 밥을 먹이는 시간 속으로 한종일 내려가실 것이다.
아버지가 그리 재촉하시던 그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데
눈 길에 아버지의 구두 모양이 옴팍하게 파묻혀 있다.
그 발자국에 내 발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거푸집 같은 깊이에 저물녘 들길의 고독이 깃들어 있다.
한 세월을 힘겹게 이끌어 온 발자국들이
추수 끝난 빈 논의 벼 밑동처럼 하늘바라기를 하고 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아버지가 벗어놓은 발자국을
거꾸로 꿰어 신고 돌아오다 문득, 뒤돌아섰다.
그리곤 마음속에 돋아난 슬픔의 밑동을 발걸레질하듯 스적스적 지워 나갔다.
쉽게 녹지 않을 흰 그늘 아래 아버지를 세워 놓은 것만 같아서.
눈송이들이 마치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다는 듯 내려 쌓인다.
발로 문지르면 없어질 줄 알았던 사소한 마음이 나풀거리는 눈발과 함께 어지럽다.
길바닥에 버려진 발자국들은 뭉개지고 흥건해져 어디로 가는 것일까.
헐렁해진 나목들이 마른 수액을 힘겹게 빨아올리고 있는 한겨울.
은빛 실루엣을 두껍게 걸친 소나무에서 커다란 말씀 하나가 철퍼덕, 떨어진다.
"아부지는 괜찮하다."
- 전미란 수필집, <이별의 방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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