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로 피아노를 즐긴지도 벌써 6년째다.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못 칠까?'라는 생각이 늘 따라다닌다.
6년 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고, 미친 사람처럼 피아노만 치던 시기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열심히 쳐도 제자리인 것만 같고, 도무지 발전이 없는 것 같아 허탈해지곤 한다.
욕심에는 가당치도 않은 실력에 울적하던 날,
책장에 꽂혀있던 뚱뚱한 악보 모음집에 눈길이 갔다.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부터 지금까지 연주했던 악보가 차곡차곡 쌓여있는 파일이었다.
누군가는 사진첩이냐고 물을 만큼 뚱뚱해진 파일의 맨 앞장에서 두 장의 악보를 발견했다.
6년 전 학원에서 처음 받았던 악보다.
다시 보니 너무나 쉽고 단조로운 모양새에 새삼 놀랐다.
라라랜드 OST 연주를 꿈꾸며 학원에 갔는데,
당시에는 원곡 악보를 치기에는 어림도 없는 실력이었다.
수강생의 목표와 현실을 좁혀주기 위해
학원에서는 악보를 편곡하여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었다.
올림표도 내림표도 붙어있지 않은 단조로운 두 장의 악보가 취미 피아노의 첫 시작이었다.
학원 등록 후 첫날의 느낌은 잊을 수가 없는데,
쉬운 악보를 연주하는데도 나는 분명 헤맸고 어려웠고 바보 같았다.
녹음한 연주를 친구에게 자랑하며 엉망이라고 함께 깔깔 웃었던 기억도 선명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6년 전의 악보를 보다가 스스로 놀라버렸다.
그렇게 헤매던 악보가 이렇게 쉬운 거였다니.
화음도 없는 한 줄짜리 악보를 보면서 음 하나하나 어렵게 찾아 눌렀다는 사실이 생경했다.
인간은 역시 제멋대로 기억을 새기는 것인지,
그동안 처참했던 과거 실력을 싹 다 잊고 있었던 것이다.
참 이상하게도 열심히 할수록 피아노는 해도 해도 안 되는 난제 같았다.
하지만 왜곡된 기억이 아무리 날 속여도 6년의 간극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악보가 있었다.
지금 연습하는 곡의 악보와 첫 번째 악보의 차이를 눈으로 보니 발전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나는 다만 느릴 지라도 확실하게 성장했다.
6년을 연습했음에도 쌓인 시간이 무용지물 같았는데,
시간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꾸준히 쌓였고 차곡 차곡 변화를 만들었다.
나는 비록 느릴지라도 확실하게 성장하고 있다.
내가 일으키고 싶은 변화는 결국 속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울적해진다면,
다시 한번 처음 배웠던 두 장의 악보를 꺼내어 나에게 보여줄 것이다.
내가 얼마나 확실하게 성장했는지를.
- 이지현 에세이,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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