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응무소주 이생기심'
* 대전 만불선원 감로당에 모셔진 탱화입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금강경이 우리에게 주는 참으로 밝은 생활 수행법입니다. 사실 이 가르침 속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모든 교리며 실천 수행방법이 다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은 어려운 말도 아니고, 삶과 동떨어진 교리적인 차원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 현실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간명하게 보여주는 참으로 밝은 말씀인 것입니다. 이렇게만 생활합시다. 이 한 구절 가슴 속에 가득 품고 살아갑시다. '머무름 없는 마음' 이 하나면 우리의 삶은 참으로 행복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어려운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생활들을 모두 벗어던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꽉 붙잡고 살아오던 '나'라는 것을 크게 죽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하나 하나에 마음을 머물러 두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세상 살이가 너무나 무겁고 버겁습니다. 모든 경계는 한 순간 인연따라 허망하게 잠시 스쳐갈 뿐인데 그 스치는 허망한 경계를 우린 꽉 붙잡고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수십년, 수억겁을 살아오며 그렇게만 살아 왔으니 어디 힘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힘들다, 힘들다 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놓아야 할 짐들이 너무 많으니 말입니다. 손바닥과 손바닥을 부딪치면 '짝' 하고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그 짝 하는 소리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법입니다. 손바닥과 손바닥이 마주치는 순간, 그 찰나에 잠시 일어난 것일 뿐이며 찰나의 바로 다음 순간 공(空)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 그 소리에 집착을 한다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짝' 하는 소리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손바닥과 손바닥이 서로 마주친다는 인연따라 잠시 왔다가는 것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이 모든 경계 또한 잠시 인연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 하면 사라질 뿐입니다. 어디에도 고정된 '짝' 하는 소리가 없듯 어디에도 고정된 실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렇고, '상대'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과, 돈이며, 명예, 권력, 지위, 이성, 지식과 같은 우리가 현실에서 추구하는 각종의 경계에서부터, 구체적으로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경계(色界), 귀에 들리는 모든 경계(聲界), 코로 냄새맡아지는 모든 경계(香界), 혀로 맛보는 모든 경계(味界), 몸으로 감촉되어지는 모든 경계(觸界), 뜻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계(法界)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경계는 어느 것 하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짝' 하는 박수 소리와 같이 인연따라 잠시 나타났다가 나타난 사이도 없이 사라지면 그만입니다. 거기에 그 어떤 고정관념을 지을 수도 없고 집착을 두어 마음을 붙잡아 둘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에 마음을 머물러 집착할 바는 어디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각각의 모든 대상에 제 아상 만큼 '착(着)'을 두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우리 앞에 펼쳐진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 바로 이것입니다. '착심', '머무르는 마음'인 것입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아 머무르지 않는다면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괴로움의 대상이 모두 허망한 것임을 안다면 거기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순간 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괴롭고, 화나고, 답답하고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일어남' 그 자체는 어쩔 수 없으며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일어난 그 경계에 머물러 '착'을 두는 데에 있습니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것, 싫은 것을 보고도 그 대상에 마음이 머물면 안됩니다. 칭찬이나 비난을 듣고도 그 소리에 마음이 머물면 안됩니다. 좋은 맛, 싫은 맛에 마음이 머물 필요도 없습니다. 좋은 생각을 계속 떠올리려 하거나 싫은 생각을 지워버리려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화를 내되 '화냄' 그 자체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화냄 그 자체에 휘둘려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화내는 그 순간 온전히 알아 차릴 수 있어야 휘둘리지 않습니다. '화'라는 그 비실체적인 마음에 노예가 되어 상대를 질책하고 욕하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다만 이 상황에서는 화내는 마음을 내어야 하기에 화를 내는 것일 뿐입니다. 화가 나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깨어있는 화를 내는 것이란 말입니다. 내 분에 못이겨 화를 내고 질책하고 그러는 것은 화냄에 머무는 것이 됩니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그 마음이 오래가게 마련입니다. 머물러 있는 마음 때문입니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 머물러 있지 않는 마음이라야 합니다. 끊임없이 '머무름 없이 마음을 내라'를 되풀이하시기 바랍니다. 포교를 하거나 남을 도와 주고도 포교했다, 도와 주었다는 상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절에 가서 기도를 하고도 기도했다는 상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내 이름이 세상에 알려질 때에도, 내가 한 일이 크게 칭찬을 받게 되었더라도 함이 없이 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머물러 있지 않음이야말로 생활 속에 있으면서 생활을 초월하고 사는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삶이 고(苦)인 세상 속에서 '삶은 고가 아니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머물지 않으면 괴로울 것이 없습니다. 머물지 않으면 삶이 여여합니다. 마음이 어디에도 머물지 않기에 괴로움이든 답답함이든 붙을 사이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머물고 나야 거기에 괴로움이든, 기쁨이든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머물지 않음은 그대로 해탈입니다. 그대로 부처님 마음입니다.
(풍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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