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일상스토리]가만히 있어도 공짜로 얻어지는 것

권영구 2026. 6. 9. 21:57

 

가만히 있어도 공짜로 얻어지는 건 나이밖에 없다 보니,

아무런 노력과 실패도 없이 나이 먹는 것에 성공하고 말았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면 그래도 때에 맞춰 나름대로 애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실수도 너그럽게 용서될만한 찬란한 시기를

혓되이 보내버린 게 아닌지 헛헛한 마음이다.

일도 사랑도 어느 것 하나 뚜렷한 성공을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조금 괴롭다.

남들은 멋진 커리어를 쌓고 결혼이나 출산을 이어가는 동안에

나는 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불행의 시작은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 있다.

사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 삶에 만족한다는 측면에서는 누구보다 특출난 사람이었다.

맛있는 점심 한 끼면 충분히 행복한 사람임에도

어쩔 수 없이 비교의 시간을 통과할 때가 있다.

대체로 길지 않아 다행이지만.

 

주어진 시간이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꽃 피는 시기가 다 같으리라는 법도 없다.

어떤 드라마에서 할머니가 손녀를 응원하며 건넨 말을 가끔 꺼내 본다.

넌 코스모스라서 봄에 피지 않을 뿐,

찬찬히 기다리면 가을에 가장 예쁘게 필 거니까

너무 초조해 말라던 말이 참 좋았다.

 

마음이 궁핍할 때는 흔하디 흔한 말도 위로가 된다.

비록 지금은 빈손이지만,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를 떠올리니 희망이 차올랐다.

최악의 경우 가을에 피지 못한대도 겨울에 피는 수선화가 되면 되잖아.

내일은 꽃시장에 가서 코스모스가 있는지 한번 봐야겠다.

화병에 꽃아두면 너도 곧 꽃이 필 거라고 말을 걸어줄 것만 같다.

코스모스가 없으면 수선화라도 사와야지.

 

 

- 이지현 에세이, <오늘도 거절을 못했습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