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삼희의 환경칼럼] 오이도 사는 宋 선생의 은퇴 인생
입력 : 2013.08.24 03:11
오이도 생활 1년째, 대기업 사장 출신… 처음엔 쓰레기 더미 자기 집 앞부터 치워
두 달 지나니 눈인사, 넉 달 지나니 말 건네, 동네 청소 모두 나서… 인생길이 꽃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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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삼희 논설위원
장마 끝 무렵 이곳 사는 송종씨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1948년생 송씨는 대우증권에서 26년을 일하다 교보투신·교보증권 사장을 7년 하고 은퇴 후 2007년 이곳에 노후 대비용으로 4층짜리 다가구 빌라를 지었다. 5년 동안 남에게 맡겨 관리하다 작년 5월 직접 입주해 들어왔다.
이삿짐을 풀고 나서 둘러보니 맞은편 빌라의 담 옆 두 평 남짓 공간에 쓰레기가 수북했다. 들춰봤더니 벌레·지렁이가 우글댔다. 1년 이상 묵은 쓰레기로 보였다. 역한 냄새가 보통 아니었다. 두고 볼 수가 없어 100L짜리 종량제 봉투 10장을 사 왔다. 봉투 8장을 쓰고서야 쓰레기를 모두 담았다. 남은 봉투로 골목의 다른 쓰레기들도 치워냈다.
송씨 집 골목 양편으로 12채의 빌라가 있다. 다 합쳐 100가구 정도 사는 골목이다. 자세히 보니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내는 사람은 절반밖에 안 됐다. 빌라 단지라서 마트 비닐봉지에 음식찌꺼기·재활용쓰레기·일반쓰레기를 아무렇게나 섞어 내놔도 누구 집 건지 알 수가 없다. 미화원들은 규격 봉투 아니면 치워가지 않는다. 쓰레기는 쌓여갈 수밖에 없다. 송씨네 골목만 아니라 동네 골목길마다 무단투기한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송씨는 우선 자기네 골목 무단투기 쓰레기에서 재활용품을 골라낸 뒤 종량제 봉투에 담아 내놓기 시작했다.
두 달쯤 그렇게 하니까 주민들이 눈인사하며 아는 체하기 시작했다. 넉 달 지난 다음엔 "수고하신다"며 밭에서 딴 호박 주는 사람, 바지락 젓갈을 건네주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래도 한 곳 빌라에선 계속 누군가 냄새 나는 쓰레기를 검은 봉지에 담아 버렸다. 송씨는 그 빌라의 8가구 모든 현관문에 '분리수거를 잘 해주세요'라는 편지를 붙여 봤다. 그 후 송씨네 골목에선 무단투기가 사라졌다.
송씨는 동네 초등학교에서 열리는 가드닝 스쿨 프로그램에 다녔다. 어느 날 수강생끼리 저녁 먹던 자리에서 쓰레기 치우는 모임을 만들자는 데 의기가 투합했다. 첫 모임이 작년 11월 첫째 주 수요일 성사됐다. 처음엔 14명이었다. 모임 명칭은 '오이도 사랑 모임'으로 정했다. 그때부터 '오사모' 회원들은 매달 1·3주 수요일 오전 10시면 나와 각자 맡은 구역을 치우고 있다. 종량제 봉투는 회원인 시청 직원의 주선으로 시에서 대줬다. 한 번 청소하면 보통 50L짜리 봉투 40~50장을 치운다. 2·4주 수요일엔 동네 문화센터에서 단합 모임을 가진다. 회원은 48명까지 늘었다. 제일 나이가 젊은 동네 통장이 회장을 맡았고 송씨가 총무 일을 한다. 4개 구역별로 구역장도 뒀다. 치워도 치워도 무단투기가 없어지지 않는 골목엔 호소 편지를 붙였다.
송씨는 1년 사이 자기가 불러온 변화에 뿌듯해했다. 동네엔 선사 유적지도 있고 해변가 쪽으론 낙조(落照)로 명소가 된 '빨간 등대'도 있다. 내년부터는 골목 공터마다 꽃밭 일구기에 나설 작정이다. 송씨는 지중해 오밀조밀한 마을 같은 아름다운 해안 마을을 가꿔보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그 꿈이 실현되기에 앞서 그의 은퇴 인생 자체가 아름다운 꽃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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