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중 칼럼] '국민이 대통령 박근혜와 함께 가는 세상'
조선 입력 : 2013.08.16 03:01
개성공단 사태 해결, 기업비리 엄단… 성과 불구, 권위주의적 모습 우려돼
국민 공감 이끌지 못해 稅制개편 좌초, 원칙·신뢰 강조하며 국정원사태 방치
대통령이 국민을 다스리는 세상 아닌 국민과 함께 가는 세상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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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평중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박근혜 대통령 취임 6개월이 되어간다. 대통령 지지도는 60% 선을 넘나드는 중이다. 개성공단 문제가 14일 전격 타결되면서 북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낸 박 대통령의 뚝심과 원칙론이 돋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외교 안보와 대북(對北) 분야에서 잘하고 있다는 여론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앞으로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현안이 풀린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순항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나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당시 후보의 집권 후 전망을 '대통령 박근혜가 다스리는 세상'으로 명명한 바 있다(2012년 10월 5일자 윤평중 칼럼). 경제 부문에서 박근혜 정부의 운신 폭이 넓지 않고, 정치 영역에서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일 개연성이 높으며, 국가 안보와 외교 분야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고, 주변의 낡은 인적 자원과 연계된 권력 상층부의 부정부패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정권 출범 6개월을 뒤돌아보면 박근혜 정부가 서있는 곳과 가야 할 길이 훨씬 선명해진다.
외교 안보 영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걱정은 기우(杞憂)로 드러났다. 탄탄한 내공을 입증한 박 대통령이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각각의 편향을 넘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길을 국민과 함께 한 걸음씩 차분히 내디딜 것으로 기대해 본다. 권력 상층부의 부패를 제어하려는 대통령의 노력도 인상적이다. 기득권층 특별사면을 금지하고 실정법을 위반한 재벌 총수가 실형을 살며 천하에 악취가 진동하는 전두환 일가에게 5공(共) 당시 전두환 자신이 공약한 '정의 사회 구현'을 그대로 돌려주는 검찰 수사는 한국 사회를 업그레이드한다.
전 지구적 경제 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경제 민주화 공약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예상대로다. 경제 살리기와 경제 민주화를 잘 조화시켜 민생을 살리는 과업은 앞으로도 난제(難題) 중의 난제다. 가장 정확한 예측은 '대통령 박근혜가 다스리는 세상'이 상징하는 박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모습이다. 세제 개편안을 둘러싼 논란이 지금처럼 증폭된 것도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기인한 바 크다. 박 대통령 특유의 만기친람(萬機親覽) 리더십 아래 심부름꾼 역할에 충실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보다 대통령에게 책임의 직격탄(直擊彈)이 돌아가는 건 지금의 권력 체계에선 불가피한 일이다. 대통령이 그 시스템을 만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책임 총리 공약과 달리 총리의 자취는 희미하고 책임 장관은커녕 눈에 안 보이는 투명 장관을 운위하는 상황에서 창조경제와 창조 행정이 들어설 여지는 척박하기만 하다. 국정원 사태를 방치하는 것도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인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어울리지 않는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핵심인 현대 민주정치에서 선거라는 절차야말로 국민주권의 요체다. 어떤 수준이든 국정원 대선 개입이 국기 문란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 이유다. 대통령이 이 원칙을 외면할 때 사회적 신뢰는 형성되기 어렵다.
박근혜 리더십의 최대 문제는 대통령이 공공성(公共性)에 대한 해석과 집행을 독점하는 데 있다. '국가와 결혼했다'고 한 박 대통령의 공공성에 대한 헌신은 이 염천(炎天)에 청와대와 공공 기관 냉방 금지라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만성적으로 결여된 한국적 현실에서 서늘한 충격이다. 그러나 어떤 장관과 수석도 공공을 위한다는 대통령에게 감히 이의를 제기 못하는 청와대와 내각의 얼어붙은 분위기는 독주하는 대통령이 다스리는 세상의 축도(縮圖)다. 윤창중 전(前) 대변인이나 김기춘 비서실장 임명처럼 사적 인연으로 공공성을 침식(侵蝕)하는 대통령의 인사(人事)는 공공을 위한 고언(苦言)과 직언(直言)을 대통령 곁에서 멸종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오늘의 한국 사회는 소통과 공감의 리더십 없이 작동 불가능하다. 국민적 소통과 공감 형성을 건너뛴 탓에 박근혜 정부의 6개월 노력을 집약한 세제 개편안이 일거에 좌초하는 것을 보라. 국민과 관료를 소외시키는 '대통령 박근혜가 다스리는 세상'은 암울한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정통성을 지닌 모든 민주 정부가 그렇듯 정치적 책임 윤리 차원에서 박근혜 정부도 성공해야만 한다. '정치인 박근혜'의 궁극적 꿈은 국민 행복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그 꿈은 대통령이 국민을 다스리는 세상이 아니라, 공동체의 주인인 '국민이 대통령과 함께 가는 세상'에서만 실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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