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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D -7 아프리카, 그리고 축구 ①

권영구 2010. 6. 10. 11:15

월드컵 D -7 아프리카, 그리고 축구 ① [중앙일보]

2010.06.04 00:48 입력 / 2010.06.04 00:56 수정

축구로 통합 꾀하는 검은 대륙, 월드컵은 희망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개막(6월 11일)이 꼭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남아공 월드컵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벌어지는 첫 번째 월드컵이다. 전 세계의 이목이 아프리카에 몰리는 최초의 대형 이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아공 월드컵=아프리카 월드컵’으로 받아들여진다. 국내에서 아프리카는 여전히 미지의 대륙이다. 본지는 국내 아프리카 전문가들을 인터뷰, 아프리카의 정치·축구·문화·역사를 샅샅이 살펴본다. 남아공 월드컵은 아프리카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남서쪽 소웨토에서 3일(한국시간) 남아공 어린이들이 축구를 즐기고 있다. 소웨토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시절 흑인 집단거주 지역이다. 이들에게 축구는 신분 상승의 주된 수단이다. [소웨토 AP=연합뉴스]
“남아공 월드컵은 ‘국제사회에서 아프리카의 제자리 찾기’입니다.”

이한규 박사
프랑스와 카메룬에서 아프리카 정치를 연구한 이한규(숭실대 정치외교학과 아프리카지역 전문가) 박사는 ‘남아공 월드컵을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아프리카는 지금까지 세계의 주변국이었다. 그러나 월드컵을 통해 ‘인류의 기원지’라는 제자리를 회복하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아프리카는 식민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884년 비스마르크가 주도한 베를린 회의에서 오늘날 국경과 거의 비슷한 강제 국경선이 그어졌다. 아프리카는 매우 많은 종족으로 구성돼 있다. 예를 들어 카메룬에는 210개, 나이지리아에는 250개 종족이 있다. 강제 국경선으로 인해 같은 종족이면서도 국가가 다른 경우도 생겼다. 국가 의식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1960년에 독립한 이후에도 국가보다는 종족이 우선이었다. 통치자들은 국민 통합을 위해 중앙집권제를 했으나 독재라는 부작용만 심해졌다. 90년대 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 등 아프리카를 지원하는 서방 단체에 의한 민주화 열풍이 불었다. 의식이 따라주지 않은 민주화는 소수 종족들의 반정부 운동과 내전으로 확대됐다. 90년부터 20년간 아프리카에서 일어난 분쟁이 60년대에서 30년간 일어난 분쟁의 거의 두 배였다. 국민 통합이 화두였으나 지금까지 그럴 모티브가 없었다. 그 모티브를 남아공 월드컵이 던져줄 것으로 기대한다.”

-남아공 월드컵이 아프리카에선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나.

“희망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문제는 종족 분쟁이지만 남아공은 흑백 갈등이다. 남아공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곳도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남아공을 부추겨서 상징성을 부여하면 다른 곳도 자극을 받을 것이다. 남아공 월드컵의 성공은 아프리카에서도 세계 규모의 행사를 치를 수 있다는 이미지를 세계에 심어줄 것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행사를 치른 적이 없었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할 수 있는 세계적인 행사는 스포츠, 특히 축구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 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축구는 식민 시대에 아프리카에 들어왔다. 선교사들도 축구를 활용했다. 종족들을 뒤섞어 한 팀으로 만들었다. 종족 갈등을 희석하려는 의도였다. 독립 후 지도자들도 정치에 축구를 이용했다. 갈등하고 있는 수백 개의 종족을 묶어줄 수 있는 건 축구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지도자들은 곳곳에 대규모 군중이 모일 수 있는 스타디움을 지었다. 선교사들이 썼던 방법 그대로 종족을 섞어서 팀을 만들었고, 자체 경기보다 아프리카 국가 대항전에 힘을 쏟았다. 이건 우리도 느끼는 거지만 매우 효과가 크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전통 축제와 춤을 매우 즐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일반 사람들이 단체로 즐길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한국의 사물놀이를 생각해보라. 사물놀이를 모두가 즐기는 것은 아니다. 축구는 공 하나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축구의 단순성, 그리고 승패가 명확히 갈리는 명료성이 아프리카인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신분 상승의 주요 수단이 축구와 육상이다. 둘 다 돈이 안 드는 것이다.”

-유럽에 진출한 아프리카 출신 축구 선수가 많다. 이를 두고 ‘축구 이민’ ‘제2의 노예 수출’이라고까지 비판하는 이유는.

“유럽 진출 선수 대부분은 나이지리아·코트디부아르·카메룬 등 서부 아프리카 지역 출신이다. 아프리카의 지형은 동고서저(東高西低)다. 서쪽은 땅이 비옥하고, 토템 신앙이 강해 축제가 발달했다. 다이내믹한 활동이 많아 육체적으로 강인하고 유연성도 좋다. 축구를 즐길 여건이 잘 발달된 데다 지배자였던 프랑스의 이민 정책이 맞아떨어졌다. 프랑스는 재능 있는 식민지령 사람들을 불러왔다. 축구도 마찬가지다. 열 살 안팎의 유소년들을 데려와 훈련시켜 비싼 값에 판다. 그런데 이게 제도적이 아니라 에이전트들에 의해 진행되기에 문제가 생긴다. 아프리카는 유럽의 선수 공급 기지로 전락했다. 그래서 또 다른 노예 수출이라는 극한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아프리카 축구의 장래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텐데.

“그렇다. 단기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성공한 소수의 선수들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롤 모델이 된다. 긍정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장래의 선수들’이 더 크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아프리카 축구의 장래가 불투명하다. 아프리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정책적으로 이뤄져야만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소수의 선수만 선택받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도 발견된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철저히 개인플레이다. 개인기나 슈팅능력은 뛰어나지만 패스나 협력 플레이에는 약점을 보인다.”

-남아공 월드컵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아프리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리카는 미지의 세계다. 아프리카를 어떻게 봐야 하나.

“먼저 문화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아프리카에 53개국이나 있지만 우리나라에 아프리카 문화원 하나 없다. 방송에서 나오는 아프리카의 모습은 많이 왜곡돼 있다. 정글만 생각하는데 도시에 가보면 우리와 똑같다. 발전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 그들의 관습·문화·종교를 잘 모르면서 교류하긴 어렵다. 아프리카와는 너무 오래 떨어져 있었다. 교류를 한다 해도 주로 북아프리카였다. 서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으로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53개국 모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일본은 국가 지원으로 많은 학자가 아프리카를 연구하고 있다. 우리는 손에 꼽을 정도다.”

-아프리카는 원유·원석 등 자원의 보고다. 우리 정부도 자원외교라고 해서 아프리카에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자원외교 한다고 곧바로 경제 분야로 뛰어든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이미 70년대부터 소련을 대신해 아프리카에 투자해 왔다. 몇십 년간 유전 채굴권도 따냈다. 우리가 중국·일본과 맞대결해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 80년대에 전두환 전 대통령이,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했지만 이후 달라진 건 별로 없다. 2006년 제1회 한-아프리카 포럼도 형식적이었다. 올 초 열린 2회 포럼은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꾸준히 관심을 확대해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강점이 있다. 바로 식민 시대를 함께 겪었다는 동질성이다. 그런데 한국은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사실에 아프리카가 주목하고 있다. 아프리카가 호기심을 갖고 한국을 롤 모델로 삼는 사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방문할 때 르완다와 세네갈을 꼭 들르라고 추천하고 싶다. 두 국가 모두 우리에게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국가지만 르완다는 종족 분쟁으로, 세네갈은 노예무역으로 상징되는 국가다. 이 대통령이 이들을 방문한다면 아프리카를 이해하고, 아프리카의 아픔을 나눈다는 메시지를 아프리카 전체에 던져줄 수 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제일 먼저 방문한 아프리카 국가도 르완다였다.”

글=손장환 선임기자, 사진=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