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어머니와 자장면

권영구 2005. 10. 11. 11:40

 

   어머니와 자장면   

 




    지금은 간식으로나 즐기던 라면이 예전에는
    참 귀한 음식이었다.
    20여 년 전 자장라면이 처음 나올 땐 더욱 그랬다.
    자장면도 특별한 날이면 먹곤 했다.
    그 당시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큰형은 주말이면 집에 왔는데,
    그 때마다 동생들 간식거리를 꼭 사 오곤 했다.
    어느 가을쯤엔가... 형이 말로만 듣던
    그 귀한 자장라면을 사 왔다.
    막내였던 난 너무 좋아 뛸 듯이 기뻐했다.

    어머니께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자장라면을 끓이셨다.
    (그 땐 가스렌지도 석유곤로도 없었다)
    그날따라 왜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시간이 지나 어머니께서 자장라면을 상에
    차려서 방으로 가져오셨다.
    그리고 한참동안 자장라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릇 가득 까만 국물에 굵은 면발이 둥둥 떠 있었다.
    난 원래 자장라면이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큰형은 어머니에게 라면도 제대로
    못 끓이느냐고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 버렸고
    그때까지 영문도 모르는 난 국물 가득한
    자장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싱겁긴 했다.
    작은형이랑 누나가 자장라면 봉지에 써 있는
    조리법을 보고 어머니께 설명을 해주자
    어머니는 그제야 잘못 끓였다는 걸 아셨고
    큰형에게 미안해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하긴 큰형도 부모님하고 동생들 주려고
    용돈 아껴서 큰 맘 먹고 사온 건데
    그렇게 돼서 속상했을 것이다.

    그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서
    끓여 주신 물자장면을 배 터지게, 원 없이 먹었다.
    그날이후로 아버지는 자주 자장라면을
    어머니께 사다 주셨고 어머니는 조리법대로
    아주 잘 끓이셨다. 너무 맛있게...

    지금은 아직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손자를 위해
    자장라면을 자주 해주시는 어머니가
    이제는 많이 늙으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 부디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 서 문 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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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자장면이면 어떻고 그냥 라면이면 또 어떻습니까?
어머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이면
어떤 것이든 기막히게 맛있습니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도 효도입니다.





-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모두 꿀맛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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