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관 문을 여는 순간, 특유의 매트 냄새가 먼저 코끝에 닿았습니다. 바닥을 더듬는 발걸음 소리, 도복이 스치는 바스락거림, 그리고 짧게 숨을 고르는 기합.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눈 대신, 더 또렷한 감각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사람들이 그 안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에는 김일근 경북시각장애인복지관 관장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권투 세계 챔피언을 꿈꾸던 소년이었지만, 예기치 못한 병으로 시력을 잃고 삶이 한순간에 멈춰 섰습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꼈던 시간. 그 절망의 바닥에서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권투 대신 유도를 선택했고, 넘어뜨리는 기술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웠습니다.
1996년 애틀랜타 장애인 올림픽에서의 동메달, 1998년 방콕 장애인아시안게임 은메달, 2002년 부산 장애인아시안게임 동메달. 기록만 놓고 보면 화려한 성취입니다. 하지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메달의 색이 아니라, 매트 위에서 수없이 넘어졌던 시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은퇴 후 그는 자신의 기술을 혼자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20대, 30대의 청년 시각장애인들을 모아 도복 끈을 묶어주었습니다. 같은 상실을 겪어본 사람만이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있다고 합니다. 그는 동정을 건네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 판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쓰러지면 다시 잡아 일으켜 세웠고, 이기면 함께 웃었습니다. 그 청년들 중 일부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고, 일부는 사회복지사가 되어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는 ‘오뚝이 관장님’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분이었습니다. 몇 번의 실패에도 장애인체육회를 세우기 위해 뛰어다녔고, 예산이 없다는 말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편견에 가장 단호하게 맞섰습니다. 그에게 체육은 단지 운동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는 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대학 강의실에 앉아 사회복지를 배웠습니다. 스스로 길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안마사라는 좁은 직업의 틀 안에만 머물지 않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능력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김일근 관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모두 각자의 어둠을 하나씩 품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핑계로 멈춰 서고, 누군가는 그것을 디딤돌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한 의지를 갖고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미래가 앞에 와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매트 위에서, 오늘도 누군가는 다시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삶은 거창한 승리가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한 번의 몸짓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몸짓이 또 다른 누군가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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