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병사들의 뒷이야기 -
에티오피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왕조의 역사를 가진 왕국이었다. 에티오피아 왕조의 시조는 구약에 나오는 솔로몬 왕과 시바의 여왕 사이에서 태어난 메넬리크 1세다. 1974년 셀라시에 황제를 마지막으로 왕조의 막을 내릴 때까지 거의 3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나라다. 아프리카 나라들 중 유럽의 지배를 받지 않은 거의 유일한 나라이며 역시 아프리카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아마도 솔로몬 왕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기독교를 받아들인 강한 동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1935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군대가 전격적으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외국의 지원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셀라시에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했고, 5년 뒤인 1941년 영-에티오피아 연합군이 이탈리아군을 몰아내고 다시 왕정을 회복했다. 그때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던 셀라시에 황제는 2차 세계대전 후 유엔이 창설되자, 유엔 연설에서 "우리가 힘들 때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지만 모두가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
유엔이 창설되고 나서 발발한 첫 번째 전쟁이 한국전이었다. 여기서 셀라시에 황제는 에티오피아 최강인 황실 근위대를 한국으로 보냈다. 자신의 군대를 한국으로 보내면서 황제는 이렇게 연설했다.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그리하여 5차에 걸쳐 6천여 명이 참전했다. 로마 올림픽과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딴 맨발의 아베베 선수도 한국전 참전용사였다. 이들 중 121명이 사망하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지만 포로는 한 명도 없었다. 싸워서 이기거나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황제의 명령을 지킨 것이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병사들은 용감히 싸웠고 전과도 훌륭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조국으로 돌아간 참전용사들에게는 가혹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1974년에 소련이 지원하는 공산 쿠테타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셀라시에 황제가 축출되고 공산당 정권이 들어섰고, 셀라시에 황제는 감옥에서 독살되었다. 한국전 참전용사들도 공산군과 싸웠다는 이유로 재산을 빼앗기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연금도 박탈당했다. 일부는 감옥으로 갔고 일부는 이름을 바꾸어 참전 사실을 숨긴 채 살았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지금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에서도 가장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했는지 부끄럽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다. 일부 단체와 언론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후손들을 돕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여겨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