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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大 강의실의 高卒 할아버지

권영구 2013. 10. 31. 09:26

명문大 강의실의 高卒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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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10.31 03:01 | 수정 : 2013.10.31 03:18

    영어 독학한 75세 권봉운씨, 고려대의 개방 강의에 지원… 외국인 교수 腦공학 수업 들어
    "형편 어려워 대학 못가서 恨… 죽기 전 꼭 경험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꼭 한번 대학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이 나이에도 가슴이 떨리네요."
    29일 오후 서울 고려대 미래융합기술관. 상기된 표정의 권봉운(75)씨는 강의실에 들어서자마자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양복 아래로 새 구두가 반짝거렸다. 와인색 넥타이를 맨 그는 "고려대를 상징하는 색이 붉은색인지 지금에야 알았는데, 우연히 비슷한 색 넥타이를 매고 와 기분이 좋다"며 천진하게 웃었다.
    
	지난 29일 오후 5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 미래융합기술관 6층 강당에서 열린 공개 수업에서 권봉운씨가 강의 내용을 노트에 필기하고 있다. 고졸이지만 독학으로 영어 실력을 키워 온 권씨는 “꼭 한 번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후 5시 서울 안암동 고려대 미래융합기술관 6층 강당에서 열린 공개 수업에서 권봉운씨가 강의 내용을 노트에 필기하고 있다. 고졸이지만 독학으로 영어 실력을 키워 온 권씨는 “꼭 한 번 대학에서 영어 강의를 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려대 제공
    고려대는 재학생들이 수강하는 정규 강의를 국내 대학 최초로 일반에 공개하기로 하고, 지난 28일부터 시범적으로 몇몇 강의에 외부 수강생들을 초대했다.〈본지 10월 15일자 A11면 참조〉 온라인으로 간단한 학업계획서를 제출해야 하지만 인터넷이 익숙지 않은 권씨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혹시 나도 강의를 들을 수 있겠느냐"고 문의해 신청을 완료했다. 권씨는 '특별한' 조건 하나를 덧붙였다. "어느 과목이든 영어 강의를 모두 들을 수 있게 꼭 도와주세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가지 못한 권씨는 제조업에 종사하다 2003년 은퇴했다. 은퇴 5년 전 서점에서 우연히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프로필을 보고 깜짝 놀랐다.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헤밍웨이도 저처럼 고졸이었어요. '나도 뭐든 할 수 있겠구나' 용기를 얻었죠." 이때부터 독학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권씨는 6년 만에 독해·작문을 능숙하게 할 정도로 발전했다. 헤밍웨이 관련 책을 120권 정도 독파했고 지난 1월엔 '헤밍웨이의 재발견'이라는 책까지 냈다.

    이날 권씨는 고려대 뇌공학과 크리스티안 월러븐(Wallraven) 교수가 강의하는 'A journey into perception(인식으로의 여행)' 수업을 들었다. 그는 굳이 대학 강의를 들으려 한 데 대해 "독학으로 공부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꼭 알아보고 싶었다"며 미소를 지었다.

    강의가 끝나자 권씨는 벅찬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권씨 바로 뒷자리에서 역시 일반인 초대 수강생으로 강의를 들었던 김요셉(13·광릉중1)군은 "배움에 나이는 관련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겠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려대의 이번 정규 강의 공개 프로그램엔 약 500명의 외부 수강생이 참여했다. 이들은 13개 정규 전공·교양 강의 중 일부를 선택해 다음 달 1일까지 수업을 들을 예정이다. 고려대는 기간, 과목 수를 점차 확대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