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中 소비자法이 무서워…

 

[오늘의 세상] 中 소비자法이 무서워…

 

삼성도 애플도 두 손 들었다

베이징=안용현 특파원

 

입력 : 2013.10.25 02:59 | 수정 : 2013.10.25 03:40

[삼성, 中 CCTV가 휴대전화 문제점 보도하자 이틀만에 사과… 애플도 3월 AS문제 사과]

-더 강화되는 소비자법
작은 결함도 제품값 4배 배상, 구입 일주일 내엔 언제든 반품… 악덕 소비자 활개칠까 우려
-反독점법으로 압박도
외국계 LCD·분유업체 등 가격 담합 혐의 등으로 과징금

삼성전자 중국 법인이 23일 오후 홈페이지를 통해 휴대전화 품질 문제와 관련해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삼성 측은 성명에서 "(중국) 소비자에게 불편을 끼쳐 죄송하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 CCTV가 21일 밤 삼성 휴대전화의 문제점을 30분에 걸쳐 집중적으로 보도한 이후 이틀 만에 고개를 숙인 모양새다. 또 CCTV가 '먹통 현상' 및 애프터서비스(AS)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갤럭시S3와 갤럭시노트2 제품은 무상 수리나 교환을 해주기로 했다.

◇중국, 외국 기업 때리기

삼성이 신속한 사과를 통해 사태 진화에 나선 것은 최근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대해 소비자권익보호법(소비자법)을 대폭 강화하는 상황과 관련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관영 매체 보도를 계기로 중국 당국이나 소비자단체가 소비자법을 적용하겠다고 나서면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빨리 털고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올 들어 중국은 소비자법 외에도 반(反)독점법을 통해 외국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올 1월에는 삼성·LG 등 한국 기업과 대만 치메이 등 6개 LCD(액정 모니터) 업체가 가격 담합 혐의로 과징금 3억5300만위안(약 615억원) 부과 처분을 받았다. 7월에는 미국의 미드존슨·애보트, 프랑스 다농, 뉴질랜드 폰테라 등 외국계 분유 기업 6곳이 가격 담합과 불공정 거래 혐의로 과징금을 총 6억7000만위안(약 1167억원) 물어야 했다. 2008년 반독점법 제정 이후 최고 금액이었다. 현재는 폭리 의혹이 제기된 독일 폴크스바겐 등 수입 자동차 업체가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기자

중국의 외국 기업 비판은 보통 관영 매체의 보도에서 시작된다. CCTV나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가 일제히 비판했는데도 해당 기업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중국 당국이 직접 조사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CCTV는 1991년부터 소비자의 날(3월 15일)이면 주로 외국계 기업의 제품 및 서비스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2011년 3월 "재활용 고무 사용량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CCTV 보도가 나온 이후 대규모 리콜 및 공장 가동 중단 사태를 겪었다. 애플은 올 3월 "애프터서비스에서 중국 소비자가 차별받는다"는 CCTV 보도 때문에 팀 쿡 CEO(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 사과를 해야 했다. 2012년에는 맥도널드와 카르푸가 CCTV의 도마에 올랐다.

◇악덕 소비자 활개 칠 우려도

외국계 기업은 중국이 최근 소비자법을 강화하면서 '중국판 블랙 컨슈머(악덕 소비자)'라고도 하는 '왕하이(王海) 현상'이 창궐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1993년 10월 '소비자권익보호법'을 시행하면서 허위·과장 광고나 위조품으로 피해를 당한 소비자에게 기업이 해당 물건값의 두 배를 배상하도록 규정했다. 1000원짜리 물건에 문제가 있으면 2000원을 물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한 사람이 바로 산둥(山東)성에 살던 무직 청년 왕하이(王海)였다. 그는 1995년 이 규정(소비자법 49조)을 교묘히 이용, 제품이 광고와 살짝 다르거나 작은 문제만 있어도 무조건 기업을 상대로 줄소송을 걸어 짭짤한 배상금을 타냈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이런 소비자법을 더욱 강화한 개정안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배상액은 현재 두 배에서 네 배로 늘어난다. 1000원짜리 제품이면 4000원을 물어줘야 한다. 베이징의 외국 기업 관계자는 "배상액이 늘어난 만큼 '왕하이 현상'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외국 기업이 '왕하이'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소비자법 개정안은 제품에 문제가 없어도 구매 후 일주일 안에는 언제든 반품할 수 있는 '후회권(後悔權)'까지 신설했다. 베이징의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9월 1일부터 자동차 교환·환불 규정도 엄격해졌다"며 "예를 들어 내비게이션에 똑같은 고장이 3번 반복되면 차량 자체를 바꿔줘야 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중국 당국이 자국 기업을 편들기 위해 점유율이 높은 외국 기업을 견제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며 "소비자 보호는 중요하지만 국제 기준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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