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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혜의 트렌드 돋보기] 삭은 靑春, 성난 中年

권영구 2013. 8. 15. 16:54

김수혜의 트렌드 돋보기] 삭은 靑春, 성난 中年

  • 김수혜 사회정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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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3.08.15 03:06

    
	김수혜 사회정책부
    김수혜 사회정책부
    취재하러 돌아다니며 20대 젊은이를 심심찮게 만난다. 그런데 화끈하게 반항하는 20대와 마주치는 일은 좀처럼 없다. 대다수가 맥 빠질 만큼 다소곳하다. 부모와 학교와 사회가 시키는 대로 공부에 목매고 취업에 목맨다. 입사하면 회사 말도 잘 듣는다. 무슨 일 있을 때 SNS로 좀 떠들긴 한다. 그러나 투덜대는 수준이지 "갈아엎자"고 정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불온하지가 않다.

    반면 50대 이상은 골이 잔뜩 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그만하면 괜찮다 싶은 계층도 "앞날이 불투명하고, 매일 피곤하고, 세상에 화가 난다"고 한다. '불안·피로·분노' 3종 세트다.

    나처럼 중간에 낀 세대가 보기에 이 구도는 건강하지가 않다. 고전적인 세대 구도는 역시 '배부른 중년 대(對) 성난 청춘'이다. 배부른 중년이 "이만하면 좋은 세상이지 뭐가 불만이냐"고 호통친다. 성난 청춘이 "좋긴 뭐가 좋으냐. 진짜 좋은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맞받아친다. 그러면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자기네 나름대로 인생 실험을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나간다.

    그런데 요즘 한국은 살아보기도 전에 푹 삭은 청춘이 득실거린다. 코가 쑥 빠져서 "죄송해요. 저도 얼른 취업하고 싶어요" 한다. 차라리 "기성세대처럼 살지 않겠다"고 대들면 좋겠다. "빨리 기성세대처럼 살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고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 '죄송할 일'은 계속한다. 결혼할 때 죄송하고, 애 키울 때 죄송하다. 부모들 기성세대는 "내가 그랬듯이 너도 알아서 살라"고 과감하게 젊은이를 팽개치지 못한다. 자기 코도 석 자면서 다 큰 자식을 속절없이 업고 간다. 50년 넘게 있는 힘껏 다해 뛰었는데 왜 '숙제'가 끝나질 않나 울컥한다.

    요컨대 힘 빠진 중년이 푹 삭은 청춘을 업고 가며 부글부글 끓는다. 이런 구도가 나타난 원인은 수백 가지다. 뾰족한 해법은 없다. 한국은 평범하게 사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5~6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엔 "집값은 오르고 회사는 커지고 수출은 늘어난다"는 기대가 팽배했다. 자기가 뒤처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괜히 망설이다 더 많이 뒤처지기보다 지금이라도 무리해서 쫓아가자"고 판단했다. 많은 사람이 수입을 웃돌게 과외비를 썼다. 자기 살림살이를 넘어 집값 대출을 받았다. 어느 날 풍선이 꺼지듯 성장동력에서 힘이 빠졌다. 집집마다 큰일이 났다. 일찌감치 많이 당겨썼다가 갑자기 중간정산을 하게 됐다.

    지금 한국은 중산층마저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키우고 연금 붓는 삶의 모든 단계를 '미션 임파서블'처럼 버거워한다. "그러니 어쩌자는 얘기냐?"고 되묻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답이 없다. 그래도 최소한 그걸 인정해야 시간이 걸려도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이 길고 긴 수렁에 빠졌던 것처럼, 우리 앞에도 길고 긴 수렁이 있다. 우리는 쟁여놓은 것도 없이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좋든 싫든 각자 또는 다 함께 이 수렁을 견뎌나가야 한다. 그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데 대통령도, 여야도, 정부도 그런 말은 안 한다. 전부 딴소리만 하니까 사기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