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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개성공단 합의, 남북 관계 정상화 출발점 돼야

권영구 2013. 8. 15. 16:35

[사설] 개성공단 합의, 남북 관계 정상화 출발점 돼야

 

입력 : 2013.08.15 03:06

 

남북한이 14일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5개 항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번 합의로 북한이 '최고 존엄(김일성-정일-정은) 모독'이라는 엉뚱한 문제를 들고나와 일방적으로 폐쇄한 개성공단이 133일 만에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됐다.

남북은 합의문에서 "남과 북은 개성공단 중단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 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했다. 북은 '외국 기업 유치' '남북 공동 해외 투자설명회 추진' 등 박근혜 정부가 제시했던 개성공단 국제화 방안도 받아들였다. 정부는 그간 북측에 개성공단 재가동의 전제 조건으로 공단 폐쇄의 책임을 인정하고, 확실한 재발 방지책을 약속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합의문에 북측의 사과 또는 책임을 인정하는 명시적 표현은 들어 있지 않지만 북은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지 않으며, 공단의 정상적 운영 보장'이란 문구에 동의해 우리 측의 재발 방지 요구를 사실상 수용했다.

북이 이번 합의에 응한 까닭은 개성공단 폐쇄로 북 근로자 5만3000명이 실업자가 되고 북이 개성공단을 통해 벌어들이던 연간 9000만달러 안팎의 돈줄이 끊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함께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중국이 실질적으로 보조(步調)를 같이해 정치·경제적 고립이 깊어지고,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북이 기대했던 남쪽의 남남(南南) 갈등이 빚어지지 않고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 지지가 더 높아지는 등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개성공단 사태를 통해 앞으로 자신들의 활로(活路)가 어디에 있고, 자신들이 기댈 언덕이 어디에 있는가를 바로 봐야 한다. 세계에서 북한이 원할 때 북이 필요로 하는 만큼 북을 도울 의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우리 경제 규모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북의 경제에서 개성공단이 차지하는 비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남측이 전기와 용수(用水)까지 대 가면서 개성공단을 운영해 온 것은 남북 경협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 북의 경제 발전을 돕고 남북 관계 정상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다. 북한에 이런 우호적 투자와 지원을 할 나라가 온 세계에 한국 말고 또 있겠는가.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북한을 돕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면서도, 남북 관계에서 세계의 상식이 통하는 새 틀을 짜겠다고 해 왔다. 이번 합의는 이런 노력의 첫 결실이다. 정부는 이번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가 남북 관계 전체를 정상화해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 현안과 북핵 해결의 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