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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일본 대지진]몰려드는 영웅들 "죽을 준비 됐다, 원자로와 싸우겠다"

권영구 2011. 3. 17. 09:16

 

[3·11 일본 대지진] 땅에선 몰려드는 영웅들…

"죽을 준비 됐다, 원자로와 싸우겠다"

은퇴 앞둔 원전 기술자도 현장으로

"인생에 후회 안 남기겠다" 피폭 공포 떨치고 지원
부인도 "힘내세요" 배웅

조선일보 | 차학봉 특파원 | 입력 2011.03.17 03:15 | 수정 2011.03.17 03:55

 

 

 

16일 오전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원자로 건물에서 불꽃이 튀어 오르고 하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방사성물질 농도가 급상승했으니 대피하라는 비명 같은 외침이 울려 퍼졌다. 온도가 치솟는 원자로를 냉각하기 위해 바닷물을 주입하던 작업원들이 '방사선 방지 시설'로 황급히 달려갔다. 후쿠시마 원전 은 아수라장이 됐다. 건물들은 폭탄을 맞은 듯 허물어져 있고 녹아내린 철근들이 나뒹굴고 있다.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도로 곳곳을 막고 있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고농도의 방사선이 포함된 수증기가 언제 치솟을지 모른다는 것. 하루에도 두세 번씩 폭발사고와 화재가 발생, 작업원 수십명이 부상을 입고 피폭당했다.

↑ [조선일보]

 

하지만 이런 '죽음의 현장'을 향해 스스로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후쿠시마 원자로의 냉각작업 성공 여부에 ' 일본 의 운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방 원전 회사에서 오는 9월 정년퇴직하는 시마네(島根)현의 59세 남성이 원자로 냉각작업에 자원했다고 지지(時事)통신이 전했다. 이 남성은 "지금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며 자원했다고 한다. 18세부터 원전에서 근무한 그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인생에 후회를 남기지 않기지 않기 위해 결정했다"고 했다. 부인은 남편에게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힘내세요"라며 배웅했다.

폭발사고 이후 원전에서 철수했던 도호쿠(東北) 엔터프라이즈의 회사 직원 3명도 안전지대에서 다시 원전으로 달려갔다고 오키나와(沖繩) 타임스가 전했다. 도호쿠엔터프라이즈사의 유키데루 사장은 "직원들을 보내달라는 도쿄전력의 요청을 받고 직원들을 여진과 피폭의 공포가 있는 원전으로 되돌려 보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베테랑 직원 3명이 가족들의 만류에도 가족 지역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원전 현장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16일 이들 자원자를 중심으로 108명을 원전 현장에 추가투입했다. 17일에는 경찰 기동대자위대도 투입된다. 후쿠시마 원전에는 그동안 73명이 남아 외로운 사투를 벌였다. 방사선 누출 사고가 나자 현장 근무자 800여명 중 750명이 철수하고 자원자를 중심으로 현장 필수요원만 잔류한 것이다. 미국 조지아대학 참 달라스 교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에 남아 있는 일본인 친구가 이메일을 통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일본을 대참사로부터 지키고 있는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이들은 6일째 계속된 사투로 체력과 정신력에서 모두 한계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이들은 방사선 오염을 막는 '방사선 방지 시설'에서 대기하며 번갈아가며 냉각작업과 원자로 수증기 배출 작업을 벌여왔다. 원전시설은 전기가 끊겨 모두 수작업을 해야 한다. 각종 전자제어 장치도 모두 작동불능 상태에 빠져 한 치의 오차라도 있으면 폭발과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위험한 작업은 원자로 수증기 배출. 기압이 치솟은 원자로에서 수증기를 빼내지 못하면 원자로가 터져 대재앙이 발생한다. 원자로 수증기에는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수증기 배출작업을 하다 피폭돼 병원으로 후송된 작업원들도 있다.

작업원들은 방사선을 방지하는 특수복과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 한도의 수천배에 달하는 양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원전의 방사선 농도가 점점 높아지자 근로허용 방사선 수치를 두배 이상 올렸다. 사실상 죽음을 각오하고 원전 폭발을 막으라는 것이다. 간 나오토 (菅直人) 총리는 "절대로 (작업원들의)철수는 없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