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수웅 문화부 차장대우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고향은 고베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6300명 넘는 사람이 숨졌을 때, 하루키는 몇 년 동안 머물러 있던 외국에서 바로 귀국했다. 그가 지진에 대한 소설을 쓴 것은 5년이 흐른 2000년. 자의식 세계에 빠져 있던 작가가 현실의 재난에 대해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닷새 동안 그녀는 온종일 텔레비전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은행이나 병원 같은 큰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상점가가 불길에 휩싸이고, 철도나 고속도로가 끊어져 내린 풍경을 그냥 잠자코 노려보고만 있었다.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무라가 얘기를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중에서)
한국 작가 정이현의 문학적 고향은 삼풍백화점이다. 1994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리기 10여분 전까지 그녀는 비운의 백화점 안에 있었다. 이 고백을 문학으로 풀어낸 것은 10년 뒤 문예계간지 문학동네에 자전소설을 발표하면서였다.
"그날 에어컨디셔너는 작동되지 않았고 실내는 무척 더웠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언제 여름이 되어버린 거지. 5시 40분, 일층 로비를 걸으면서 나는 중얼거렸다. 5시 43분, 정문을 빠져나왔다. 5시 48분, 집에 도착했다. 5시 53분, 얼룩말무늬 일기장을 펼쳤다. 나는 오늘, 이라고 썼을 때 쾅, 소리가 들렸다. 5시 55분이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다. 한 층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1초에 지나지 않았다."('삼풍백화점' 중에서)
신문·방송·인터넷이 거의 빛의 속도로 일본 대지진을 생중계하고 피해와 관련된 숫자들을 쏟아내고 있는 지금, 문학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실 우리는 재난이 일상화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이를 '파국의 매너리즘'이라 불렀다. 매일처럼 반복되는 사건사고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는 자연재해가 이전의 숫자를 덮어버린다. 미디어는 24시간 생중계를 계속하지만 그때뿐이다. 지금은 이 가공할 숫자에 압도되어 있지만, 어느새 불감증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루키 소설에서 지진의 직접 피해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은 그 참혹한 지진에 마음이 뻥 뚫려버린 사람들이다. 집이 무너진 사람뿐 아니라, 마음이 무너진 사람도 삶을 버틸 힘이 필요하다. 삼풍백화점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내린 한국인들도 정이현의 문학을 통해 치유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날, 미국 대통령 오바마의 위로에는 남다른 표현 하나가 있었다. 그 메시지에는 다른 나라 대통령들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문학적 표현이 들어 있다. "오늘의 재앙은 우리의 삶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깨닫게 해줍니다(Today's events remind us of just how fragile life can be)."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의 육하(六何)가 아니라 공감과 위로의 언어인 문학은 다친 사람을 낫게 하고 건물을 다시 짓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삶을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