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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칼럼] 시스템과 개인

권영구 2011. 3. 16. 08:55

[장하준 칼럼] 시스템과 개인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 조선일보 입력 : 2011.03.14 23:32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지진 피해 최소화하는 일본 防災체제 돋보여…
日은 천재는 많지 않지만 혁신 시스템 잘 갖춘 덕분에
기업 창의성은 세계 최고… 시스템이 경쟁력이다

이번 일본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리히터 규모 9로, 일본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지진이고, 세계 역사상 5번째로 강한 지진이다. 보통 규모 7 정도 되면 강력한 지진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작년 1월 1000만 국민 중 2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의 지진이 규모 7이었다. 리히터 규모의 구조상 규모 9의 지진이면 규모 7의 지진보다 100배 더 강한 것이다.

물론 수만 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된 것이 확실하고 사망자 수가 10만명 이상이 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번 일본의 경우, 지진의 강도에 비해 사망자 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 국제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지진뿐이 아니다. 일본은 태풍도 많이 오고, 화산 폭발도 잦고, 북부에는 눈도 많이 오는 나라임에도 자연재해에 따른 피해가 적다. 지진에 대비해 건물 기초에 용수철이나 고무를 사용하는 등 발달한 건설 기술이 있기도 하지만, 건축물 안전 규제를 잘하고, 필요한 하부구조에 투자를 하며(도쿄 지하에는 대규모의 배수로망이 깔려 있어 홍수의 위험을 현격하게 줄인다), 국민에게 안전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키는 등, 방재(防災) 시스템을 잘 갖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강점은 사실 이런 시스템에서 나온다. 개인적으로만 보면 대단히 창의적인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기업들의 창의성은 세계 최고를 다툰다. 국민 하나하나는, 세계적 기준으로 별로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영어를 못하는 것 같은데, 나라 전체는 외국의 지식을 흡수하는 데 우리나라보다 뛰어나다.

천재적인 개인들이 많지 않아도 일본 기업들이 창의성이 뛰어난 것은 기업의 혁신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업 연구소들이 잘 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많은 일본 기업은 소위 '도요타 생산방식'을 사용하여 말단 생산직 직원들의 창의성까지 이용하는 생산체제를 만들었다.

국민 개개인은 대부분 영어를 지독히도 못하지만 일본이 외국 지식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잘 흡수해 온 것은, 일본 통역사나 번역가들의 질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소수의 통역사나 번역가뿐 아니라 모든 개인이 영어를 잘하려고 하니 시간과 자원의 낭비가 엄청나다.

일본의 예는, 복잡한 분업에 기초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데에서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시스템이 뛰어나면, 개인들의 능력은 좀 떨어지더라도 전체는 강해질 수 있다. 시스템의 중요성을 인식하면, 개개인의 생산성도 개인의 재능과 노력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이 시스템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과 비교하면 개인에 더 많이 의존하지만, 미국도 사실은 개인보다는 시스템으로 승부하는 나라이다. 개개인만 놓고 보면, 대부분의 미국 국민은 우리 국민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사는 것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다. 법적인 제도도 잘 되어 있는 것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도 잘 만들어져 있다. 기본적인 질서 교육부터 시작하여, 군대에서 쓰는 '야전 교범'까지 그 예는 무수하다. 그에 더해, 지식을 기계에 체화(體化)함으로써, 개개인들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큰일을 할 수 있게 한다. 바코드 인식기를 만들어서, 가게 종업원이 덧셈 뺄셈도 못해도 물건을 팔고 재고를 관리할 수 있게 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 및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相生) 문제 등에 대한 논쟁에서, 많은 사람이 '자기가 잘나서 돈을 더 잘 버는데 사회적 책임이 무슨 소리냐' 하는 논리를 편다. 그러나 이는 개인, 그리고 개별 기업의 생산성을 결정하는 데에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이다.

미국의 유명한 투자가 워런 버핏이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준 것이라 생각합니다"라는 얼핏 들으면 이해하기 힘든 말을 한 것은, 바로 그가 현대 자본주의에서 시스템의 중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