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감독의 월드컵 첫 승리'라는 새로운 역사는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선수를 보는 허 감독의 안목과 함께 허 감독이 내세웠던 자율·소통, 그리고 뚝심의 리더십이 이뤄낸 달콤한 열매였다.
- ▲ 한국인 감독으로는 처음 월드컵 승리의 영광을 안은 허정무 감독은 유연하면서도 뚝심 있는 리더십을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허 감독이 그리스전에서 2대0으로 승리한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고 있다. /포트 엘리자베스(남아공)=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허 감독은 2007년 12월 한국대표팀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부드러운 지도자는 아니었다. '진돗개'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고집이 세고 엄격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허 감독은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에 대해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던 2008년 말부터 자신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 대표팀 관계자의 얘기이다.
허 감독은 2008년 10월 박지성에게 주장을 맡기면서 "경기장에서는 박지성이 감독"이라며 대표팀의 자율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대 간 벽도 허물어갔다. "젊은 선수들은 음악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박지성의 제안에 따라 대표팀의 버스 안은 늘 신나는 음악이 울렸다. 훈련 및 식사 시간 조절 건의도 주장을 통해 들어오면 두말 않고 받아들였다. 물론 허 감독 자신도 훈련 때마다 젊은 선수들과의 볼 뺏기 게임을 하는 등 소통을 위해 몸을 던졌다. 이원재 대표팀 미디어 담당관은 "지난달 30일 벨라루스에 0대1로 패하고 허 감독은 박지성의 제안에 따라 선수들을 하루 쉬게 하며 '보약 먹었다고 생각하자'고 다독였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허 감독이 '뚝심'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믿는 선수를 끝까지 껴안고 갔다. 이청용, 기성용을 비롯해 그리스전에서 맹활약한 중앙수비수 조용형, 측면 공격수 염기훈 등은 주위의 비난에도 허 감독이 소신 있게 밀고 나갔던 선수들이었다. 이승렬, 김보경 등 21세 어린 선수들을 과감하게 합류시킨 것도 허 감독의 뜻이었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KBS 해설위원)는 "월드컵에 처음 서는 정성룡을 첫 경기의 주전으로 내보낸 것은 허 감독의 뚝심이 아니고는 어렵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지난 1월 신년 좌우명을 '호시우보(虎視牛步)'라고 밝혔다.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목표를 노리고 소처럼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뜻이었다. 그리스전은 허 감독이 우직하게 내디딘 첫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