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일상스토리]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당신에게 보내는 시

권영구 2024. 7. 10. 07:23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져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 김수영 시,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