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 갈색 눈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한겨레출판사 | 2012.06.15
<책소개>
제인 엘리어트는 인종차별주의로 어떻게 아이들의 마음이 불구가 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는가!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푸른 눈 갈색 눈』. 이 책은 교사인 제인 엘리어트가 학생들과 함께 한 ‘차별의 날’ 실험과 결과를 기록한 것으로,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신체적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게 했던 실험의 과정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갈색 눈의 학생과 푸른 눈의 학생으로 나누어 갈색 눈의 학생들이 우월하다고 선언하고 특혜를 주었던 첫째 날의 실험, 그리고 갈색 눈의 학생과 푸른 눈의 학생의 역할을 바꾸어 푸른 눈의 학생들이 갈색 눈의 아이들이 받은 특혜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게 하는 다음 날의 실험 등 다양한 차별 수업을 통해 제인 엘리어트는 아이들에게 눈의 색깔 때문에, 목에 두른 깃 때문에, 또는 피부색 때문에 다른 사람과 분리되고 격리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일깨워준다. 이와 같은 실험 내용을 통해 아이들이 차별에 따른 깊은 상처를 이해하고 경험하게 하여 증오의 학습에 맞설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목 차>
1부
2부
3부
4부
추천의 글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옮긴이 후기와 해설
<출판사 서평>
‘차별의 날’ 수업 이후, 교실에서 일어난 놀라운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가 쓰고, 김희경 씨가 옮긴 《푸른 눈, 갈색 눈》은 1960년대 말 미국에서 인종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던 시기, 제인 엘리어트 선생님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신체적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경험하게 했던 유명한 실험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968년 4월 5일 금요일. 전날인 목요일에 멤피스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살해되었다. 이 사건으로 교사 제인 엘리어트는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아이오와 주 라이스빌의 초등학교 3학년 교사 제인 엘리어트는 이틀간 학생들에게 신체적 차이에 대한 차별에 대해 가르치는 독특한 수업을 진행했다. 눈동자 색으로 학생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는데, 첫째 날 갈색 눈의 학생들이 푸른 눈의 학생들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하고 특혜를 주었다. 갈색 눈의 학생들은 쉬는 시간을 5분 더 가질 수 있었고, 점심을 먼저 먹으러 갔으며, 음식도 더 먹을 수 있었다. 교실 앞쪽에 앉는 것도, 줄반장을 하는 것도, 놀이 기구를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놀 수 있는 것도 갈색 눈의 아이들이었다. 또한 푸른 눈의 아이들은 갈색 눈의 아이들에게 초대받지 않으면 갈색 눈의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다.
다음 날, 푸른 눈의 학생들과 갈색 눈의 학생들의 역할은 뒤바뀌었다. 푸른 눈의 학생들은 전날 갈색 눈의 아이들이 받은 특혜를 받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은 학생과 교사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틀간 ‘열등하다’는 딱지가 붙은 아이들은 정말로 열등한 학생들의 태도와 행동을 보였고, 성적도 형편없었다. ‘우월한’ 학생들은 성적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친구였던 아이들을 차별하는 데 즐거움을 느꼈다.
제인 엘리어트는 읽기를 배우는 데 뒤쳐져서 특별지도가 필요하다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두 번째로 이 차별 실험 수업을 진행했으며, 세 번째 진행한 수업(학급 아이들의 여덟 명은 푸른 눈이었고, 또 다른 여덟 명은 갈색 눈이거나 녹색 눈이었다. 첫날 차별을 받는 갈색 눈의 아이들은 목에 깃을 하나씩 둘러 멀리서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했고, 다음 날에는 푸른 눈의 아이들이 목에 깃을 둘렀다.)은 저명한 상을 받은 ABC TV 다큐멘터리 〈폭풍의 눈(The Eye of the Storm)〉에 담겼다. 이 책 안에는 다큐멘터리를 찍을 당시의 제인 엘리어트와 아이들 모습, 촬영하는 모습, 동창회 모습 등이 담겨 있다.(94~105페이지)
다큐멘터리의 프로듀서이자 감독, 작가였던 윌리엄 피터스가 쓴 《푸른 눈, 갈색 눈》의 증보판인 이 책은 제인 엘리어트와 1970년에 그녀가 가르친 16명의 3학년 학생들, 그리고 1984년에 제인 엘리어트 선생님과의 미니동창회를 위해 라이스빌에 돌아온 11명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동창회에서 오갔던 이야기, 오래 전의 수업이 그들의 삶과 태도, 실제로 그들이 자신의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에 오래 지속되는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들을 자세히 전해준다. 또한 같은 차별 실험에 대해 아이오와 교정국 직원들과 다른 사람들이 보여준 놀라운 반응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1984년 엘리어트의 3학년 학생들의 미니동창회와 아이오와 교정국 직원들과의 실험은 다큐멘터리 〈분열된 교실(A Class Divided)〉에 담겼고, 이 다큐멘터리는 에미(Emmy) 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탔다. 한 평론가는 이 다큐멘터리를 두고 “눈을 뗄 수 없고, 아마도 당신의 삶을 바꿀 한 시간”이라고 칭찬했다.
우리 모두가 받아야 할 ‘차별 수업’과 ‘차별’에 관한 솔직한 이야기
-차별이란 피부색이나 눈동자의 색 또는 다니는 교회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차별이란 사람을 그가 한 일이 아닌 피부색으로 판단하는 때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그게 어떤 기분인지를 학교에서 배웠다.
-차별이란 행복한 것과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차별은 전혀 재미있지 않다. 나는 내가 흑인이 아니고 피부색으로 차별받지 않아서 좋다.
-나는 차별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별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평생 화난 채로 살고 싶지 않다.
-차별이란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 나는 선생님을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싶었다.
-마틴 루터 킹은 유색인종을 차별로부터 구하려다가 죽었다. 백인은 유색인을 최소한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
제인 엘리어트 선생님의 ‘차별의 날’ 첫 번째 수업 이후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하고 솔직하게 ‘차별’에 대해 정의하는 글짓기를 했다. 또한 이 실험 후에 제인 엘리어트는 편견은 차별의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인식했다. 혐오스럽긴 할지언정 둘 중 훨씬 덜 해로운 것은 편견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그녀는 편견은 주로 사람들의 삶을 그들이 살아가는 그대로 제한하고, 시야를 좁히며, 세계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반면에 차별은 다른 사람들의 삶, 수백만 명의 삶을 불구로 만든다. 마틴 루터 킹도 편견이 아니라 차별에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차별 수업을 통해서 그녀의 3학년 학생들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눈의 색깔 때문에, 목에 두른 깃 때문에, 또는 피부색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되고 격리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 교사인 제인 엘리어트가 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비록 일시적이나마 학생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끼칠 위험, 그리고 학부모와 동료 교사의 분노를 감수하는 데에는 대단한 용기와 헌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와 이후 일어난 일들은 그 모든 것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한 교사가 인종차별주의로 아이들의 마음이 불구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제인 엘리어트가 차별 실험 수업을 시작한 뒤 몇 년간, 그녀의 네 자녀는 한 번 혹은 그 이상 다른 학생들에게 다양한 종류의 폭력을 당하는 희생자가 되었다. 그녀의 3학년 학생들이 당했던 것처럼, 자녀 역시 종종 ‘깜둥이 애인들’이라고 불렸다. 결국 제인 엘리어트의 가족은 라이스빌을 떠나 가까운 마을로 이사를 갔고, 그녀의 아이들은 다른 학군에서 공립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엘리어트는 1970년대 중반 시카고에서 살해 협박을 당하는 바람에 한밤중에 흑인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을 탈출하기도 했고, 살해 위협도 여러 차례 받았고, 교육 도중 백인 남자에게 칼로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최근까지도 기업, 정부 기관, 대학에서 다양성 교육을 해오고 있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기
1940년대 케네스 클라크 부부는 흑인 아이들에게 백인 인형과 백인 인형을 갈색으로 칠한 인형(그 당시엔 흑인 인형이 없었으므로)을 보여주고 뭘 좋아하는지 선호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흑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흑인 인형 혐오와 백인 인형 선호가 압도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로부터 60년 후 2010년 CNN 방송의 의뢰로 진행된 시험도 백인에서 흑인까지 피부색만 다를 뿐 얼굴 생김새와 옷차림이 똑같은 다섯 명의 아이 그림을 보여주며 누가 착해 보이고 누가 나빠 보이는지 묻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백인 아이들은 두드러지게 백인 선호도를 보였고, 흑인 아이들도 정도는 덜했지만 백인을 선호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여전히 “피부가 검기 때문에” 아이들은 흑인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백인 아이들은 하얀 피부색을 긍정적 특징과 검은 피부색을 부정적 특징과 연결시켰다. 흑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네 다섯 살만 그런 게 아니라 열 살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한국의 경우에도 2012년 5월 현재 130만 명 이상의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고, 출생하는 아이 100명 가운데 4명은 다문화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다. 2010년 국내에서 결혼한 부부 열 쌍 중 한 쌍이 다문화가정일 정도로 이민자와 이주자 수가 늘어나고 있고, 2011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피부색, 인종, 민족, 종교, 출신 국가 등 다문화적 요소를 이유로 차별당했다며 진정을 제기한 사례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6년간 두 배로 급증했다. 또 2012년 4월 여성가족부가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다문화 수용성 조사’에서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36퍼센트였다. 이는 유럽 18개국의 평균 찬성 비율인 74퍼센트의 절반 이하다.
이런 한국의 실정과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번역자 김희경 씨가 해설 및 옮긴이 후기에서 자세하게 들려준다. 김희경 씨가 일하고 있는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비차별 연극 수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로자 파크스가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운전기사의 지시를 거부한 사건을 중심으로 <버스 사건, 차별은 노!노!노!>라는 연극을 만들었다. 또한 극단 사다리와 연계해 차별 방지를 위한 연극 수업을 진행했고, 그 수업에서 아이들이 보인 반응과 대사, 상황을 재료로 창작 과정을 거쳐 2011년 <엄마가 모르는 친구>라는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은 2012년 6월 28일~30일에 구로아트밸리에서 다시 공연된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문제는 세대가 거듭될 때마다 반복해서 교육하고 일부러 깨우쳐야 하는, 끝나지 않는 숙제와 같다는 것을.
“지금 당신의 손에 이 책이 들려 있게 된 사연은 열한 살 소녀가 서툰 솜씨로 그린 한 장의 그림에서 시작되었다. 도화지의 위쪽 절반에는 주먹만 한 글씨로 ‘다른 나라 사람을 차별하지 마세요’라고 쓰여 있다. 그 아래엔 덩치 큰 아이 세 명이 나란히 서서 혼자 동떨어진 작은 아이를 향해 소리친다, “저리 가! 너는 우리랑 달라!” 작은 아이는 이 세 명의 아이에게 맞서는 모양새로 이렇게 항변한다. “아니야! 나는 너희와 같아.” 작은 아이의 모델이자 그림을 그린 소녀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다. ‘다문화’라고 놀림 받는 게 얼마나 가슴에 맺혔던지 그림을 그리고도 모자라 도화지 오른쪽 위 귀퉁이에 별표를 치고 ‘중요’라고 적어놓았던 소녀가 맺어준 인연이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의 끈을 통해 다가온 당신에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제인 엘리어트의 실험이 21세기 한국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차별은 오로지 나쁜 환경의 영향에서 비롯된 삐뚤어진 마음일 뿐인가? 나는, 그리고 당신은 차별 따위 하지 않는 사람인데 왜 차별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걸까?” (옮긴이 후기 중에서)
■ 추천의 글
우리 안의 편견과 차별 의식을 드러내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인생 자체를 변화시킨 제인 엘리어트 교사의 차별 수업은 갈수록 차별 구조가 강화되는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한 수업이다. 차별당하는 처지의 사람도, 차별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이 책을 한 번 보면 폭풍과도 같은 충격과 함께 차별 구조에 익숙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박래군(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제인 엘리어트의 ‘차별의 날’ 실험, 그리고 그 결과를 기록한 윌리엄 피터스의 책 《푸른 눈, 갈색 눈》은 아이들이 차별에 따른 깊은 상처를 이해하고 경험하게 하여 증오의 학습에 맞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가장 의미가 있다. 이와 같은 이해는 아이들이 거부당하는 상황을 직접 겪으면서 얻을 수 있었는데, 이러한 경험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인간적 감수성을 키우는 데 필수적인 첫 번째 단계다. -케네스 B. 클라크
“대단히 잘 쓰인 이 책은 모든 교직 과목의 필독 도서 목록에 올라야 한다.”
- 존 I. 굿래드 (John I. Goodlad), 《학교라 불리는 곳 (A Place Called School)》의 저자
<책속으로 추가>
그러나 이날은 전날만큼 불쾌하지는 않았다. 갈색 눈의 아이들은 전날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기억하기 때문인지 푸른 눈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열성으로 그들을 차별하지는 않았다. 이날은 싸움이 없었다. 그러나 전날 우월하다는 대접을 받았던 푸른 눈의 아이들은 은총받은 지위에서 갑자기 추락하자 갈색 눈의 아이들이 그랬던 것과 같은 정도의 절망감과 긴장과 분노로 반응했다. 나중에 레이먼드 한센은 그때의 기분을 간결하게 표현했다. 첫날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왕이 된 것 같았어요. 제가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들보다 훨씬 나은 사람인 것 같았어요. 행복했어요.” 그러나 둘째 날에는 다른 감정이었다고 했다. “우울했고 불행했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 같았고, 묶여 있는데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117~118p)
남편과 함께 앉아 있던 돌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이,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걸 종종 듣게 돼요. 그들이 얼마나 우리와 다른지, 그들이 이 나라에서 떠났으면 좋겠다거나, 아프리카로 돌아가버렸으면 좋겠다거나, 뭐 그런 말요. 가끔 저는 주머니에 우리가 수업 시간에 썼던 그 깃을 갖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깃을 확 꺼내서 그들에게 둘러주며 말하고 싶어요. ‘이걸 둘러, 그리고 그들 처지에 서봐.’ 저는 그들이 제가 체험했던 것을 겪어봤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앞으로 계속 주머니에 그 깃을 가지고 다닐 거야?” 엘리어트가 물었다.
“글쎄요. 늘 그렇진 않겠지만 저는 단지 이렇게 말하고 싶을 뿐이에요. ‘내가 체험했던 걸 너도 해봐’라고.”
“하지만 정신적으로 너는 여전히 그 깃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거니?”
“그 깃이 제 주머니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죠.”
“저는 우리가 모두 각자 깃을 주머니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기저기서 그 말에 동의하며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건 우리가 우리 마음에, 느낌에 항상 가지고 다닐 어떤 것이에요. 누구도 우리에게서 그걸 빼앗을 순 없어요.”
“그 깃을 없애버리고 이 실험을 겪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하니?” 엘리어트가 물었다.
여러 명이 아니라고 대답했고, 다른 사람들도 이에 동의했다.
“만약 그랬다면 너희 삶이 좀 더 쉬워졌을까?” 엘리어트가 물었다.
다시 한 번, 그들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 수업이 고통을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 수업은 모든 것을 이전과 달라지게 만들었어요.” 로이 윌슨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가족이 될 수 있었어요. 심지어 집에서도 그랬어요. 저희에겐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죠. 어느 날 가장 친했던 친구가 다음 날엔 적이 된다면, 누구든 빨리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모든 학생이 이 수업을 받아야 할까, 아니면 모든 교사가 받아야 할까?” 엘리어트가 물었다.
“전부 다요.” 네다섯 명이 동시에 대답했다. (156~158p)
“모든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지닌 고유한 인격체인데, 단지 무엇을 하는지 혹은 어떻게 생겼는지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요.” 누군가가 덧붙였다.
“‘우리’ 그리고 ‘그들’로 분열되는 상황이 만들어지면 안 돼요.” 또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저는 여전히 흑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나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 ‘그래, 저게 흑인이지’ 하고 생각하는 제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어요.” 진더가 말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심지어 생각을 다 끝내지도 않았을 때, 저는 이렇게 말하죠. ‘웬걸, 나는 백인들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도 봤어. 다른 사람들이 저런 행동을 하는 것도 봤어. 흑인이라서가 아니야. 단지 다른 피부색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들어왔을 뿐이야.’ 그런 다음엔 제가 말한 대로, 이전 생각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제가 그 상황에 놓여 있던 시절로 생각을 되돌리곤 해요.”
다른 여성이 이어서 말했다. “만약 당신이 다르게 생긴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몰라요. ‘아, 싫어. 그들 가까이에 있기 싫어. 내가 이런 사람과 어울리는 걸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이 날 무시할 거야.’ 하지만 저는 상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열등한 처지에 놓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거든요. 저는 모든 사람과 우호적으로 지내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제게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니까요.” (160~161p)
엘리어트는 3학년 학생 열여섯 명이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들의 영향력을 깨닫기를 원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은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을 학생들이 단 하루라도 살아보길 바랐다. 그리고 그 하루의 고통이 그들로 하여금 이후 평생에 걸쳐 단 한 사람에게라도 비슷한 종류의 고통을 끼치기를 거부하도록 돕는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그 하루의 연습은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생각해요.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어요. 단순히 나이만 먹는 대신 성숙해졌어요. 부모보다, 또래보다 훨씬 더요. 그리고 그들 스스로 말한 대로, 그들이 오늘날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방식은 3학년 때 일어났던 일들 덕분이에요. 저는 3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마다 제가 가르친 것이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최소한 9년은 지속되기를 바랐어요. 이 경우에는 14년이에요. 저는 그 수업의 영향이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들은 수업을 단지 기억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이건 정말, 정말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에요.” (167~168p)
“오늘 아침의 실험에서 뭔가 배운 게 있나요?” 엘리어트가 로저에게 물었다.
로저는 검은 재킷을 벗고 이제 회의실 앞쪽에 앉아 있었다. “이 경험에서 나는 유리로 된 우리에 갇혀서 무기력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배웠다고 생각해요. 절망적이었어요. 화가 났어요.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를 지르면 공격받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가망이 없다는 느낌, 암울한 기분이었어요.” 로저가 말했다.
“전에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살면서 내가 그렇게 차별받아본 경험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 깨달았죠. 거의 없어요.”
“그리고 한 시간 반 동안 그토록 불편했다는 말이죠?”
“처음 15분 만에 기분이 얼마나 불편해지는지를 알고 나도 놀랐다니까요.”
“당신은 이 나라에서 흑인이나 소수 집단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나요?”
“전보다는 더 잘 공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치 독일의 비유를 들었던 푸른 눈의 남자인 데이비드 스톡스버리(David Stokesbury)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당신과 논쟁이라도 할라치면, 당신은 그 단순한 언쟁을 우리가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근거로 들이대죠. 그러니까, 이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에요.” ……
엘리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왜 여러분은 서로 돕지 않았죠?” 그러고는 회의실의 절반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 푸른 눈의 사람들은 그냥 앉아만 있었어요. 우리 터놓고 말해봅시다. 여러분은 그냥 몸을 사린 거잖아요. 그렇죠? 왜 그랬던 걸까요?”
조용히 앉아만 있었던 푸른 눈의 남자가 말을 받았다. “나는 그게 전반적인 문제를 보여주는 징후라고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우리는 사회에서 그런 현상이 일반적인 걸 보잖아요. 몇몇 사람이 소란을 피우면 나머지 대다수는 뒤에 앉아서 그들이 뭘 하는지 보면서 기다리죠.”
“내가 어떤 한 사람을 괴롭히고 있는 한 적어도 당신은 간섭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엘리어트가 말했다.
“맞아요.”
“많은 사람이 그러는 것 같아요.” 푸른 눈의 여자가 말했다. “일부 사람이 자신들을 위해 싸우게 하고 그들은 뒤로 물러서죠. 이렇게 그들 대신 싸우는 사람에게 승산이 있어 보이면 그제야 그의 편을 들겠죠. 하지만 만약 싸우던 사람이 질 것처럼 보이면 그들은 이쪽으로 다시 물러서겠죠. 그렇잖아요. 세상일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200~202p)
“당신이 앞으로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떨 거 같아요?” 엘리어트가 물었다.
K. R.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갈색 눈의 그룹에 속했던 흑인 여성 한 명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알았다. 그녀는 K. R.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매일 아침 내가 남들과 다르구나 생각하면서 눈을 뜨지는 않죠. 당신은 백인 여성으로 잠에서 깨어 8시든 언제든 일하러 가죠. 흑인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자기가 흑인이라는 걸 알아요.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을 보는 그 순간부터 말이죠. 그들은 어릴 때부터 씨름해온 문제와 매일 씨름해야 해요. 그러곤 깨닫게 되죠. ‘나는 남들과 다르구나, 나는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삶에 대처해야 해. 많은 일이 나한테는 다르게 벌어지니까.’”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차별을 느껴보았노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마 어떤 종류의 차별은 느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흑인 여성으로 사는 게 어떤지 당신은 몰라요. ‘내 말 좀 들어줘요. 내 견해도 들을 만한 거예요. 이봐요, 내가 지금 제공하려고 하는 것도 꽤 괜찮다고요’라고 날마다 주장하고 말해야 하는 삶이 어떤지 모른다고요. 그리고 누구도 우리말을 들으려 하지 않죠. 왜냐하면 늘 백인이 옳으니까요. 세상일이 그래요.”(204~205p)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제인 엘리어트가 스무 명 남짓한 아이를 대상으로 ‘차별의 날’ 수업을 준비하고 실행하면서 고심을 거듭하고 번민했던 흔적이었다. 스스로 여태까지 해본 일 중 가장 불쾌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면서도, 한 번의 실험이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의 태도를 바꿀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다면서도, 가족이 폭력을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텅 빈 교실에서 혼자 울지언정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삶을 아이들이 단 하루라도 살아보게 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한 집단을 향한 다른 집단의 무분별한 차별과 증오의 두터운 관념에 균열을 내고 싶었던 그녀의 의지가 놀라웠다. (227p)
<책속으로>
“전 간절히 바랐어요.” 그녀가 말했다.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단지 인종적 편견은 비합리적이고 인종차별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 이상으로 뭔가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우리는 모두 그런 말을 듣고 자라요.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적절한 때에 그 말들을 떠벌려요. 하지만 우리는 계속 스스로 누군가를 차별하거나 다른 사람이 차별하는 것을 용인하고, 차별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전날 밤 저는 제 학생들이 진짜로 차별이 무엇인지, 어떤 기분인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그들 스스로 개인적으로, 깊게 느끼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했어요. 이제 그 일을 해볼 때가 된 거죠.” 그 뒤 제인 엘리어트의 교실에서 벌어진 일은 그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었다. 그녀는 이전에 누가 비슷한 일을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게 좋은 생각인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오로지 아는 것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뿐이었고 이게 그녀가 하려는 일의 전부였다. (18p)
엘리어트는 숨을 깊게 들이쉰 뒤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나는 우리가 흑인 아이로 살아가는 게 어떤지 실제로는 모른다고 생각해. 그렇지 않니?” 그녀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 말은 우리가 정말 차별을 경험해보지 않으면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기 어려울 거라는 뜻이야. 그렇지 않을까?” 아이들은 건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 그렇다면 그걸 한번 알아보고 싶지 않아?”
그녀가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할 때까지 아이들의 얼굴엔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반을 푸른 눈과 갈색 눈 그룹으로 나누면 어떨까?” 그녀가 말했다. “오늘 남은 시간 동안 푸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열등한 그룹이 되는 거야. 그런 다음 월요일엔 서로 바꿔서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열등한 그룹이 되는 거지. 이렇게 해보면 차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니?”
아이들은 곧 열띤 반응을 보였다. 어떤 아이들에게 이 실험은 학교의 평범한 일정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했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아이들에게는 의심할 여지없이 게임을 해보자는 이야기처럼 들렸을 것이다. “한번 해볼래?” 엘리어트가 물었다. 아이들은 주저 없이 한목소리로 “예!” 하고 소리쳤다. (21~22p)
점심시간 즈음엔 엘리어트는 어떤 아이가 갈색 눈인지 푸른 눈인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구분할 수 있었다. 갈색 눈의 아이들은 행복했고, 눈이 초롱초롱했으며,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학업 능률도 전보다 크게 올랐다. 반면 푸른 눈의 아이들은 비참했다. 그들의 자세, 표정, 전체적인 태도는 그야말로 패배자의 것이었다. 학업 능률도 전날에 비해 급격히 떨어졌다. 한 시간쯤 지났을 때, 푸른 눈의 아이들은 정말로 열등한 사람처럼 보였고 그렇게 행동했다. 엘리어트는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경악한 것은 갈색 눈의 아이들이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친구였던 푸른 눈의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 단지 실험이라고 설명해준 것을 거의 즉각적으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는 방식이었어요. 한 시간가량이 지나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실제로 믿어버린 거죠. 월요일엔 역할을 바꿀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까맣게 잊었어요. 푸른 눈의 아이들은 갈색 눈의 아이들보다 열등하다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 앞에서 모든 걸 잊어버린 것이죠. 마치 누군가가 그들이 이전에 단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인 어떤 사실을 지적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에요. 푸른 눈의 아이들이 전보다 실수를 더 많이 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랬어요. 제가 푸른 눈을 가진 아이들의 실수만 찾아내지 않았느냐고요? 맞아요. 제가 갈색 눈을 가진 아이들을 편애한 게 분명하지 않았느냐고요? 물론이죠. 그러니 무슨 더 나은 증거가 필요했겠어요?” (27~28p)
<저자소개>
저자 : 윌리엄 피터스
저자 윌리엄 피터스(William Peters, 1921~2007)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1962년부터 미국의 CBS, ABC 방송, 예일 대학 필름(Yale Films) 등에서 일하면서 주로 미국 내 인종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제인 엘리어트의 차별 실험을 담은 다큐멘터리 〈폭풍의 눈〉 등으로 피바디 상을 네 차례 받았으며, 엘리어트의 실험 이후를 다룬 다큐멘터리 〈분열된 교실〉로 에미상을 탔다. 미국의 헌법 제정 회의를 다룬 《보다 완벽한 통합(A More Perfect Union)》(1987)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역자 : 김희경
역자 김희경은《흥행의 재구성》,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내 인생이다》를 썼고,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아시안 잉글리시》를 우리말로 옮겼다. 서울대 인류학과, 미국 로욜라 매리마운트 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18년간 <동아일보> 기자였고 지금은 국제개발 NGO인 '세이브더칠드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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