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6개월] ‘경선 룰’에 갇힌 與野…
후보·공약 검증없는 ‘묻지마 대선’ 될 판
대선 6개월 남았는데… 아직도 룰 싸움만 서울신문 입력 2012.06.19 02:41
[서울신문]12월 19일 실시되는 18대 대통령 선거가 19일로 불과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여야 모두 대선후보의 윤곽은커녕 후보를 어떤 방식으로 뽑을 것인지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런던올림픽(7월 27일~8월 12일) 기간은 가급적 대선 일정을 피한다는 여야의 내부 방침을 감안하면 여야 대선 후보가 가시화되는 시점은 9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민주통합당의 경우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의 당내 '원샷 경선'이 불발될 경우 2단계 후보 단일화까지 고려하면 11월에야 대선판이 명확해진다. 문제는 여야의 대선 후보 확정이 늦어질수록 '지각 대선'은 국민의 검증 기회를 박탈하는 등 부작용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7월까지 경선 룰을 확정하고 흥행을 고려해 런던올림픽 이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설 참이다. 200만~400만명의 국민선거인단이 참여하는 지역 순회 경선으로 할 경우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9월, 늦으면 10월이다. 경선 룰을 놓고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계가 반목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경선 시점도 런던올림픽 이후가 유력하다.
대선 일정이 순연되면 남은 6개월 중 3개월(6~8월)을 허송세월하게 된다. 여야 후보 간의 정책 대결은 뒷전이 되고 당내 주자 간 '그들만의 당심(黨心) 경쟁'으로 대선 폭도 제한된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군은 출마 선언을 한 손학규·문재인 상임고문과 조경태 의원, 오는 24일 대선 도전을 공표하는 정세균 상임고문, 다음 달 가시화될 정동영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지사, 박준영 전남지사, 김영환 의원 등으로 8명에 달한다. 여기에다 당권·대권 분리 규정의 향배에 따라 박영선·이인영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뚜렷한 대세론이 없는 만큼 혼전 양상이 9월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16대 대선의 경우 여야 후보들의 공약이 6월에 나왔는데도 신행정수도와 같은 공약으로 대선 정국이 요동쳤고 17대 대선 때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나 동남권 신공항 공약이 16대보다 훨씬 늦은 9월에 노출되면서 선거 과정에서 충분한 정책 검증조차 이뤄지지 못했던 선례가 있다."고 우려했다. '지각 대선'의 부작용을 온 국민이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9월에 후보가 선출된다고 해도 범여권 및 범야권의 후보 단일화 과정까지 고려하면 정책 비전을 언제 검증할 수 있겠느냐."며 "국가적으로 불행한 대선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는 11월 6일 대선을 치르는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맞대결 주자인 공화당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5월 말에 확정됐다. 롬니 전 주지사는 8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공식 지명된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은 이마저도 후보 확정이 늦어졌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2008년 대선 때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가 확정된 건 3월 초였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미국은 대선이 있는 해의 8월에 최종 후보를 지명하지만 실제로는 그 전해 11월부터 시작해 3~4월이면 후보가 확정된다."며 "당에서 후보를 솎아내는 과정에서 충분히 검증되고 TV 토론이 활성화돼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검증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후보 선출 시기가 늦어질 수록 언론이 만들어 준 이미지에 좌우되거나 성향에 따른 투표 행태가 반복된다."고 우려했다.
지난 1월 총통 선거를 치른 타이완의 경우 선거일 1년 전부터 여야는 후보 검증팀을 출범해 최종 주자 선정에 나섰다. 우리의 역대 대선도 최소 6개월 안팎의 기간을 후보 검증에 할애했다. 올해처럼 총선과 대선이 겹친 1992년 14대 대선의 경우 5월에 여당인 민자당은 김영삼, 야당인 민주당은 김대중을 대통령 후보로 확정했다. 1997년 15대 때는 야당인 새정치국민회의는 5월에 김대중 후보를, 여당인 신한국당은 7월에 이회창 후보를 확정했다. 반면 정치학자들이 유권자들의 후보검증 기회 차원에서 최악의 선거로 꼽는 17대 대선은 10월에야 여당의 정동영 후보가 확정됐고, 이후에도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의 최종 단일화 협상으로 정치적 혼전이 이어졌다. 2007년 당시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낸 양승함 연세대 교수는 "당시 대선 후보 정책 검증을 시도했지만 후보 확정이 늦어지면서 결국 포기해야 했다."며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처럼 촉박하게 대선 후보를 확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안동환·최지숙·송수연기자
ipsofac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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