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뉴스

‘한국적인 것’ 이 홀대받는 한국사회

권영구 2011. 4. 14. 14:49

 

‘한국적인 것’ 이 홀대받는 한국사회

드레스코드 내세우다 말바꿔
"트레이닝도 되는데…" 비난
"식재료·인건비 등 부담된다"
서울특급호텔 한식당 4곳뿐

헤럴드경제 | 입력 2011.04.14 11:28 | 수정 2011.04.14 11:42

 


"한복 입은 고객을 제한한다는 건 금시초문이라 우리 호텔 직원 모두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14일 서울시내 한 특급호텔 관계자가 전한 업계 분위기는 대체로 일치했다.

지난 12일 장충동 서울신라호텔 뷔페식당 '더 파크뷰'에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입장하지 못한 한복디자이너(이혜순 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 파장이 안팎으로 매우 크다. 기준이 모호할 뿐 아니라 한국적인 것에 대한 배타가 심했다는 질타의 목소리까지 끊이지 않는다.

▶ "트레이닝복도 되는데 한복이? " =

호텔신라 관계자는 이번 사태에 대해 "품이 넓은 한복의 특성상 옷이 밟히거나 넓은 소매에 음식물이 닿아 고객의 불만 목소리가 수차례 답지함에 따라 작년부터 한복 착용 고객에게 주의사항을 안내하도록 지침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당일 근무직원의 안내 미숙으로 고객의 화를 돋웠지만 입장을 제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초 '부피감이 큰 한복은 호텔의 드레스코드 규정상 식당 출입이 안된다'며 입장을 저지했던 것과 크게 달라, 호텔 측이 파문이 커지자 이를 서둘러 무마하기 위한 변명이란 지적이 팽배하다. 문제가 일었을 당시 파크뷰 지배인까지 나서서 '곤란하다'고 했던 것과 사뭇 다른 설명이다.

더구나 이건희 회장 칠순연 등에 홍라희 리움 관장과 이부진 사장 등이 한복을 입고 참석했던 사진이 일제히 공개되며 "신라호텔에서 한복 입고 식사할 수 있는 사람은 삼성 로열패밀리 뿐이냐"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게다가 호텔업계에서는 이 같은 관행이 의아하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다.

서울시내의 한 특급호텔 관계자는 14일 "피트니스센터 이용고객이나 투숙객이 많아 트레이닝복을 입고도 뷔페 식당 등에 입장하는 예가 많다"며 "한복에 대한 안내 지침이 있다는 것조차 금시초문이어서 깜짝 놀란 상태"라고 전했다.

다른 호텔 관계자도 "우리 호텔 한식당에선 한복 입은 직원이 서빙도 하는데 한복을 차별하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날 본지가 확인한 시내 특급호텔에선 고객 복장과 관련한 입장지침이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서울시내 한식당 운영 특급호텔, 4곳 뿐… "한국적인 것은 대접 못 받아" =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에서 '한국적인 것'이 배척당했다는 것에 적잖은 상징성을 부여하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신라'라는 호텔명에서부터 기왓장을 올린 영빈관을 전면에 내세운 신라호텔에서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이로니컬하다는 것.

일례로 20개에 달하는 서울시내 특급호텔 중 한식당이 있는 곳은 소공동 롯데호텔서울과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등 네 곳에 불과하다. 신라호텔은 2005년 한식당을 없앴다.

한식당을 보유한 시내 특급호텔 관계자는 "한식당은 식재료값과 인건비가 더 많이 들어 운영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한식을 세계인에 알리는 등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부진 사장의 사과를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우리 문화가 이런 대접을 받는 게 가슴 아프다"고 한 이혜순 씨의 말처럼, 한식과 한복 등 우리 것을 앞장서 알려도 시원찮을 대표호텔의 '한복 홀대'는 이래저래 입맛을 씁쓸하게 하고 있다.

임희윤 기자/im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