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알파벳을 알고 한두 줄을 겨우 따라 읽는 상태에서 미국에 도착했다. 하지만 1년 6개월 후 돌아올 때는 해리포터를 읽을 수 있었고, 초등 3학년인 큰 아이의 영어 리딩은 우리나라 중2에 해당하는 수준이 되었다. 아이들의 성취가 놀라워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의 한글 독서가 튼튼했던 것이 밑바탕이 되었고, 미국에서 엄청난 몰입으로 영어의 바다에 푹 빠졌기에 가능했다.
미국에서 아이들을 방과 후 교실에 보내는 문제를 결정할 때였다. 영어를 배우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지만 학교에 오래 머물러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아침 8시에 가서 저녁 6시에 돌아오는 일정은 아이들에게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에서는 돈 주고도 일부러 영어환경에 놓기 위해 기를 쓰는데, 그럴 수 있는 상황에 있으면서 활용하지 않는 건 바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고생한다는 생각, 엄마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고 학교에 맡겨놓는다는 죄책감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버릴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에 가서 엄마랑 붙어있을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 1년이라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고 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크게 반발했다. 온종일 학교의 시멘트 바닥에서 뒹굴어서 그런지 바지에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문화 때문인지 3개월도 못가 신발 바닥이 찢어지곤 했다. 하지만 점점 아이들은 많은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아는 선생님들이 많아졌다. 한국 아이들 중에는 방과 후를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미국 아이들과 어울렸다. 처음에는 학교에 데려다줄 때마다 오늘은 언제 데리러 오냐고 물었다. “엄마, 오늘은 몇 시에 올 거야? 일찍 데리러 오면 안 돼?” “아빠, 꼭 4시에는 와야 해. 늦으면 안 돼.” 이랬던 아이들이 시간이 지나고 적응이 되자 변하기 시작했다. “오늘 오후는 스토리 타임 있으니까 6시에 오면 돼, 빨리 오지 마.”
학교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의 영어 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됐다. 6시에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을 먹고 7시면 뛰어나가 밤 9시가 넘도록 놀다 들어오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놀이터에서 단짝처럼 어울려 놀던 미국 친구가 서너 명 있었기에 말하기가 많이 늘었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점점 유창해졌다. 읽는 책의 수준도 덩달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스스로 영어를 잘한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됐고, 영어책 읽기나 영어방송 듣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일정 부분 밀고 나가는 결단이 필요하다. 나약한 마음에 무너지면 이도 저도 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는 있지만 무조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만 하는 것도 옳지 않다. 특히 학습적인 부분에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꾸준하게 임계량을 채워나가야 한다. 아이들이 단기간에 큰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몰입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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