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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이 관계자의 연이은 폭로로 갈수록 파문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 사건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 사찰을 자행하면서 시작되었고, 2010년 6월 21일 한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이 사실을 폭로하고 같은 달 29일 MBC < PD수첩 >이 그 피해자 사례를 보도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한마디로 말해, 암행어사 박문수가 탐관오리는 제쳐두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는 백성들을 색출해 인생을 망가뜨린 사건이다.
KBS의 새 노조가 만든 <리셋KBS뉴스9>이 30일 새벽 폭로한 바에 따르면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은 대단히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사찰 대상자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KBS 등 방송사 내부동향과 노조의 성향, 주요인물 평가까지 다루고 있어 정권 차원의 사찰을 통한 언론장악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만 놓고 봐도 이것은 국가기관이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행위로서 대단히 심각한 위법사항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커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번 사건의 실체가 민간인 사찰→사건 은폐 및 증거인멸→수사축소→회유 및 재판조율로 이어지는 이른바 '4단 콤보'의 권력형 국가범죄행위라는 것이고 둘째는 청와대와 검찰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전모는 총리실의 가장 말단에서 상부의 지시로 하드디스크를 직접 파기(디가우징)한 장진수 전 주무관이 재판과정에서 양심선언을 함으로써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장진수씨의 증언과 밝혀진 사실을 바탕으로 각 단계별 핵심사항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관계자들의 의견다툼이 있다).
[1단계] 민간인 사찰
이 사건의 일차적인 핵심은 대체 누가 민간인 사찰을 기획하고 지시했나, 하는 점이다. 이른바 윗선 혹은 몸통이 누구인지 확인하는 한 가지 방법은 총리실에서 모은 사찰자료가 어떤 라인으로 보고되었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지난 20일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은 기자회견을 열어 민간인 사찰 사건은 청와대나 민정수석실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공식적인 상부지휘라인은 민정수석실이다. 따라서 지원관실이 민정수석실 몰래 단독으로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자행했는지 혹은 그것을 민정수석실이 알고 있었는지가 관건이다.
이에 대해 <서울신문>은 지난해 1월 10일 보도( '민간인사찰' 민정수석실 보고 확인 )에서 "9일 서울신문이 단독 입수한 '정무위(국회) 제기 민간인 내사 의혹 해명' 문건에 따르면 지원관실은 김 전 대표(김종익) 사찰 결과를 동향보고 형식의 문서로 작성해 2008년 9월 민정수석실에 보고했다. A4 용지 13장 분량으로 된 이 문건은 ▲착수 배경 ▲사건 개요 ▲진행 경과 ▲쟁점사안 등 4개 항목으로 돼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니까 적어도 민정수석실(당시 수석비서관은 정동기 현 법무법인 바른 고문)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사실을 (지휘여부는 불분명하지만) 인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 자체도 위법한 행위다.
<서울신문>은 같은 기사에서 "또 권재진 민정수석(현 법무장관) 때는 검찰이 김 전 대표의 사법처리와 관련해 민정수석실을 통해 지원관실의 의견을 구했고, 지원관실은 민정수석실을 통해 검찰에 기소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는데 이로 미루어 민정수석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민간인 사찰에 개입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2단계] 사건의 은폐 및 증거인멸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와 이영호 비서관이 기자회견 때 한 자백 등을 종합하면, 적어도 이영호(혹은 그 윗선)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인 최종석을 통해 장진수로 하여금 하드디스크를 영구파기하도록 했으며 이 과정에서 이영호의 대포폰이 최종석을 통해 장진수에게 전달되었다.
이와 함께 장진수의 증거인멸은 "검찰에서 문제 안 삼기로 민정수석실에서 얘기된" 상태였다. 그리고 이때에 즈음하여 진경락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이 작성한 김종익 비리혐의 문건이 최종석을 통해 당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에게 전달되었고, 조전혁 의원은 이를 국회에서 폭로하여 여론반전을 꾀했다.
[3단계] 수사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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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수 전 주무관에 따르면 최종석 행정관은 검찰의 총리실 압수수색 날짜를 미리 알고 있었고 검찰은 서류나 특히 이영호 관련 자료도 챙기지 않았다. 텅 빈 압수물 박스는 신문지로 채우기도 했다고 한다. <서울신문>이 입수해서 보도한 지원관실의 문건은 검찰이 이미 확보한 문건으로써, 사찰의 윗선을 밝히지 못한 검찰의 수사는 의도적으로 축소된 것이라는 의혹을 갖게 한다.
그리고 '2단계'에서 이미 밝힌 대로 검찰은 처음부터 하드디스크 파기를 문제 삼지 않기로 민정수석과 얘기가 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검찰은 대포폰의 존재는 물론 통화내역도 알고 있었고 최종석의 존재도 알고 있었으나, 장진수 전 주무관에 의하면 자신을 수사한 검사는 대포폰 관련 신문조서를 법원에 제출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약속과 달리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는 증거인멸의 책임이 지워졌다).
검찰의 수사는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동기, 사찰 및 증거인멸의 윗선 등 이 사건의 핵심쟁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총리실 직원 일곱 명을 구속 불구속 기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4단계] 회유 및 재판조율
장진수 전 주무관에 따르면 민정수석실에서 이번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7명을 특별관리 했다. 법무법인 바른(사찰 당시의 민정수석이 이곳 고문)의 변호사들은 이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했고 장진수에게 진실 은폐를 종용하였다. 청와대는 재판 과정 전체를 모니터링(주심판사와 배석판사의 의견 차이까지 인지) 하고 있었으며 형량에 대한 조율(벌금형이 가능하다는 식으로)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장진수 전 주무관의 소송비용까지 대 주었다. 최종석 행정관은 "평생 먹여 살리겠다", "캐시로 당겨 주겠다"는 식의 회유를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끊임없이 시도했다. 실제로 2011년 4월 청와대 장석명 공직기강 비서관이 총리실 류충렬 국장을 통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5천만 원이, 8월에는 이영호 쪽에서 2천만 원이 전달되었다.
이 밖에도 장진수 전 주무관의 아내 일자리 알선(총리실 류충렬 국장, 진경락 전 과장의 후임자), 장진수 전 주무관 본인의 일자리 알선(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장석명→청와대 인사행정관→가스안전공사 사장→가스안전공사 안전관리이사 채충근→경동나비엔 사장→경동나비엔 인사팀장 : 2012년 2월)도 있었다.
요컨대 형량조절, 소송비용 조달, 재판 모니터링, 금품제공, 직장 알선, 그 외 회유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청와대가 장진수를 '케어'했음을 알 수 있다.
민간인사찰, 대한민국 자체를 공격한 반국가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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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4단 콤보' 범죄과정을 들여다보면 적어도 청와대의 민정수석실과 사회정책수석실이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여기에 구속자들에게 금일봉을 건넨 임태희 대통령실장까지 보태면 청와대의 핵심라인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기구가 아니라 조직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죄조직'을 구성한 셈이다. 이제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으나, 이 범죄조직의 '행동대장'은 바로 범죄를 소탕할 책임을 맡은 검찰이었다. 현 정권과 관련된 큰 소송을 도맡아 온 법률법인 바른은 역시나 이번에도 법정에서 충실한 방패막이 역할을 수행했다.
청와대와 검찰을 아우르는 '권력형 국가범죄조직'이 구성되어 국민을 핍박하고 증거를 인멸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주요 국가기능이 무력화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민간인 사찰 사건은 MB 정권 하의 다른 어느 사안과도 구별되는,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예컨대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건이 권력을 이용해 개인의 이익을 탐했던 범죄에 '불과'하다면, 민간인 사찰 사건은 주요 국가기관을 졸지에 범죄조직으로 둔갑시켜 주권자를 공격하고 증거를 인멸한, 말하자면 대한민국 자체를 공격한 반국가적 범죄사건이다(집권당이 선거관리위원회를 테러한 이른바 10·26 부정선거 의혹사건도 성격상 이와 비슷하나, 아직 그 사건의 전말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 역시 검찰은 윗선을 밝히지 못했다). 특히 그 범죄행위가 4단계에 걸쳐 대단히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무릇 모든 범죄조직에는 그 수괴가 있는 법이다. 민간인 사찰이라는 권력형 국가범죄조직 사건의 수괴는 누구일까? 일단 검찰의 재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이미 살펴보았듯이 검찰은 이 범죄조직의 행동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실제로 사건의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던 권재진 전 민정수석이 지금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장관의 자리에 있으니, 재수사에서 새로운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명박 대통령, 몰랐더라도 사과해야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복수의 수석비서관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수괴의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수석비서관 이상의 선에 진짜 몸통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본인들은 부정하고 있지만, 항간에는 박영준 '왕 차관'과 그 뒤의 이상득 의원의 이름도 오르내리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라인이 망라된 점을 생각해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전혀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장진수 전 주무관은 자신과 관련된 문제가 'VIP'에게 보고되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는 지극히 상식에 부합한다. 대통령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사후에 소극적으로 추인하는 형식 정도는 거치지 않았겠느냐는 의혹을 떨칠 수가 없다. 그렇지 않고서 그 막강한 권력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고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에 대통령이 몰랐다면 그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적어도 둘 이상의 수석비서실이 연루되어 검찰까지 끼고 그렇게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도 대통령이 몰랐다면, 이는 환관들이 황제의 눈과 귀를 막고 국정을 농락하다가 곧 멸망해 버린 고대 중국 어느 나라의 꼴과 다르지 않다. 나는 적어도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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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멀다 하고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청와대는 여전히 침묵으로 혹은 단답형 오리발로 일관하고 있으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국가의 핵심권력기관에 의해 인생을 망친 한 국민에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명백하게 사실로 밝혀진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과 그에 따른 피해사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떳떳하고 청와대가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국민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은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항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정말로 '국민의 머슴'이라면 이것은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청와대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국민들 사이에서는 '혹시 대통령이 정말로 이 범죄조직의 수괴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순한 의혹만 커져갈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진심으로 바란다. 검찰의 공정한 재수사를 위해 최소한 권재진 현 법무장관은 해임해야 한다. 그것이 사건해결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다. 그와 함께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국민들에게 재발방지를 약속하라. 그리고 자신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솔직하게 공개하라.
박근혜는 왜 이번 사건에 대응하지 않는가
사찰 대상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도 포함돼 있었다는데, 박 위원장이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평소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그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 위원장과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 행여 이번 사건이 'MB 심판론'과 연결돼서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하지나 않을까 하는 선거공학적인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기 어렵다.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대한민국의 국기를 뒤흔든 사건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이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보다 박근혜 위원장 자신의 개인적인 권력을 위한 치밀한 이해타산이 앞섰기 때문이라는 비판을 과연 피할 수 있을까?
장진수 전 주무관은 지금 어려운 싸움을 혼자 벌이고 있다. 추한 권력의 거악에 맞선 그가 가진 것이라고는 녹음파일과 기억의 조각들, 그리고 정의와 진실을 갈망하는 국민에 대한 믿음뿐이다. 지금 이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을 공익제보자들은 이번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장진수 전 주무관은 결국 어떻게 될 것인지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건을 끝까지 추적해서 범죄자들을 발본색원하고 합당한 처벌을 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의와 진실이 결국은 이긴다는 사례를 만들지 못한다면 다시는 장진수 전 주무관 같은 공익제보자가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렇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항상은 아니지만 어쩌다 가끔 한 번은 정의가 이길 때가 있다면, 지금이 그 '어쩌다 한 번', 가끔은 정의가 승리하는 그 '어쩌다 한 번'이 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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