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깜깜한 니치마켓, 징검다리 생각하면 훤히 보인다

권영구 2011. 11. 28. 09:55

깜깜한 니치마켓, 징검다리 생각하면 훤히 보인다
시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6편>

선택이 귀찮은 고객을 겨냥한 비즈니스 모델들

#1. 10~20대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일본 시부야(澁谷)역 구내. 개찰구를 나오자 젊은 여성들이 북적이는 가게가 보인다. 이름이 ‘랭킹 랭퀸(ranKing ranQueen)’이다. 가게 이름대로 이곳은 CD•서적•화장품•다이어트 식음료•일용품 등 약 300가지 품목의 랭킹 1~5위 물건만 모아놓고 판다. 순위는 3~4주에 한번씩 인근의 대형 일용품 백화점 ‘도큐핸즈’와 도매상 등의 판매실적을 토대로 매긴다. 판매순위가 바뀌면 상품이 즉시 교체된다. 그러다 보니 점포 안에는 늘 유행을 선도하는 상품으로 가득하다. 이용객의 80~90%가 10~30대 젊은 여성이라고 한다.

물건만 잔뜩 진열해놔 봐야 바쁜 비즈니스맨에겐 버거울 뿐이다. 이들은 물건을 천천히 고를 시간이 없고, 일일이 따지고 사는 것도 피곤해 한다. 이럴 때 남들이 많이 사는 상품을 보여줌으로써 ‘가장 잘 팔리는 물건이니 안심하고 사 가시라’고 웅변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이른바 ‘선택의 효율’이다. 시부야 1호점을 시작으로 일본 전국에 7개 점포가 성업 중이다. 점포당 평균 내방객은 하루 4000명이다.

#2. 일본에서는 백화점이나 상점이 1월 1일이나 2일의 첫 영업 개시를 기념해 복주머니를 판다. 하나의 봉투에 여러 가지 물건을 넣고 밀봉해 ‘복주머니(福袋)’란 이름으로 고객에게 판다. 복주머니는 ‘1만엔짜리’ ‘3만엔짜리’가 대부분이다. 내용물을 보면 철 지난 물건이 섞여 있긴 하지만 실제 값어치가 구입가의 두 배 가량이라고 한다. 구매자는 어떤 상품이 있는지 모르지만, 복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상품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비슷한 게 미국에도 있다. 랜덤쇼핑몰 ‘섬싱스토어’가 그것이다. 10달러에 한 상품을 배달해주는데 내용물은 알 수가 없다. 예기치 않은 즐거움과 놀라움을 준다는 것이 세일즈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3. 도쿄 시나가와(品川)의 JR(Japan Railways: 일본에서 가장 큰 철도)역 개찰구를 들어가 50m 가량 지나면 네모난 광고 간판 같은 것이 나타난다. 상품광고 화면들이 속속 바뀌는, 지하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모니터다. 그런데 그 화면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광고 모니터가 다양한 음료수가 진열된 화면으로 바뀐다. 음료 자동판매기로의 전환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광고 모니터였다가, 손님이 오면 자동판매기로 변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일반적인 자동판매기와 달리 상품 샘플이 없다. 손님이 다가가 얼굴을 자동판매기 쪽으로 돌리면 윗부분에 달려 있는 카메라 센서가 손님의 얼굴을 자동 분석해 특정 음료를 표시해 준다. 모니터에 있는 음료 중에 추천된 음료 밑에는 ‘오스스메(추천)’란 빨간 표시가 붙어있다. ‘뭘 마실까’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자동판매기가 추천한 음료를 터치하면 된다. 나에게 맞는 음료라니 왠지 입맛에 맞을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원하는 음료를 손수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고객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선택을 도와주는 이 친절한 자동판매기는 2010년 8월 일본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어떤 레드오션에도 틈새는 꼭 있다

이들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다. 뭘까. 틈새(niche)다. 말하자면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든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귀찮은 일들을 대신하는 틈새 공략이다. 그동안 상품은 생산자에서 중간 유통자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따라서 소비자는 중간유통자인 백화점이나 마트 혹은 작은 가게에서 어느 것을 살 것인지 고민해 선택을 했다. 이것이 고정화된 생산자와 소비자의 연결고리였다. 이미 너무나 오랫동안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 더 이상 발 디딜 틈이 없다고 생각하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랭킹 랭퀸’ ‘랜덤쇼핑몰’ ‘대리선택기’는 단단해 보이는 기존 시장에도 얼마든지 파고들어갈 틈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기택 시인의 <틈>이라는 시를 보라.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
숨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
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
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
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 온 것인가
그 느리고 질긴 힘은
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
다리 없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
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
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
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
그러나 어느 구속에서든 천연덕스러운 꼬리가 보일
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김기택, <틈>

이 시에 따르면 틈은 약한 부분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다. 틈은 튼튼하다고 믿는데서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숨쉬고 돌아다닐’ 틈은 있다. 또한 완벽하다고 믿는 곳에도 틈은 있다.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고 생각되는 곳에도 ‘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한 것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고 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벽과 벽을 타고’ 다닐 만큼 ‘우글거리고 있다’.


틈새는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문제는 틈이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틈새 공략으로 성공한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아, 그렇구나’ 하면서도 실제 자신이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해답은 ‘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수십년의 시간(정확히 말하면 시각이다), 분, 초로 나누어본다’라는 시구에 있다.

이 시구는 ‘미세하고 작은 폭을 세밀하게 나누면 틈이 생긴다’는 말이다. 매우 의미심장하다. 틈은 찾는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주 천천히 수십년간 찾아야 한다.

사실 세상 모든 이야기는 이런 방법으로 형성된다. 이야기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시작과 끝을 종이에 써보자. 시작이라고 왼편에 쓰고, 끝이라고 오른편에 쓴다. 그러면 시작과 끝이라는 글자 사이에 공간이 생긴다. 이것이 틈이다. 이런 틈은 존재는 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의미 없는 틈이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이 바로 틈새 전략의 통찰이다.

어떻게 할까. 시인처럼 시작과 끝 사이에 시, 분, 초라는 단어를 적어보자. 이것이 틈새를 찾는 징검다리다. 그러면 ‘시작-시-분-초-끝’의 구조가 된다. 이처럼 기존의 연결고리를 세밀히 조각내어 징검다리를 놓고 작은 이야기를 넣는다. 그러면 커다란 한편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때 징검다리마다 틈새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시작-시’사이에 또 다른 징검다리를 놓을 수 있게 되고, ‘분-초’ 과정과 ‘초-끝’의 과정에도 또 다른 징검다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

예시된 시에서도 시인은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는 첫 시구와 맨 마지막 시구인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사이에 세 개의 징검다리가 있다. 첫 번째가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으로, 틈에 대한 설명이다. 다음은 ‘수십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볼 만큼의 오래된 틈의 생명력과 생존력이다. 이것이 두 번째 징검다리다. 그 다음 시인은 틈의 진정한 정체가 사실은 매우 약한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징검다리다. 그러니까 틈이 강해서 철근이나 시멘트 벽 사이를 뚫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부드럽기 때문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징검다리 사고를 통해 발견하는 틈새

자, 그러면 일본에 있는 ‘랭킹 랭퀸(ranKing ranQueen)’ ‘랜덤 자동판매기’ ‘대리선택기’에 적용해보자. 기업에서 제품을 만들면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이것이 시작과 끝이다. 그러면 시작 부분에 제품을 적고, 끝부분에 소비자라고 쓴다.

그 다음, 제품이 소비자에게 가는 과정을 징검다리식으로 적어놓는다. 어떻게 전달되나. 제품-매장-소비자의 순이다. 여기에 하나의 징검다리를 더 놓아보자. 제품-매장-판매순위 1~5위 인기 상품-소비자가 된다.

판매순위 1~5위 인기 상품을 모아놓은 매장은 어떤 통찰의 결과인가. 김기택 시인이 ‘시, 분, 초’로 나누듯 제품과 소비자와의 관계를 세세하게 조각내 틈을 벌려보자. 물건을 사러 매장에 간다. 매장을 조각내 보라. 기존 매장에는 모든 제품이 들어 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이 있는 매장은 각각의 제품을 만드는 생산 공장에서 들어온다. 과자만 파는 매장, 음료수만 파는 매장, 옷만 파는 매장, 등이 있을 수 있다. 나아가 다른 곳에서 많이 팔리는 물건만 있는 매장, 일정한 돈만 내면 아무것이나 집어 복불복을 맛보게 하는 매장, 기계가 대신 상품을 선택해주는 매장, 선택과 동시에 곧 바로 배달해주는 매장 등 얼마든지 세밀한 조각이 가능하다. 이 모두가 새로운 징검다리다.

이 징검다리 중 ‘랭킹 랭퀸’은 쉽게 선택하게 해주는 매장에 속하고, ‘랜덤 자동판매기’는 포장돼 내용이 궁금한 상품 판매 매장, 그리고 ‘대리선택기’는 대신 상품을 선택해주는 매장에 해당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아기들이 먹는 분유와 분유를 뗀 아이들이 먹는 밥 사이에 새로 징검다리를 놓으면 뭐가 될까. 바로 이유식 ‘아기밀’이다. 지금은 일동제약에 인수돼 일동 후디스가 된 남양산업에서 1970년 ‘남양 아기밀’을 출시해 당시 분유시장의 1등 기업이자 형제기업인 남양유업을 한때 고생시키기도 했다. 아기들이 태어나 돌이 될 때까지 주로 먹는 것은 분유인데, 남양산업은 남양 아기밀이라는 제품으로 분유와 밥 사이에 이유식을 끼워 넣었고, 결국 분유시장을 크게 잠식했던 것이다. 물론 남양유업은 82년 점프를 출시하면서 이유식 시장에 뛰어들어 다시 시장을 제압한 이후 우유, 요구르트, 유산균 음료 등을 출시하며 사업을 다각화했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떤가. 1984년 마이클 델 회장이 자본금 1,000달러로 시작한 델컴퓨터의 예다. 소비자가 원하는 컴퓨터를 조립해서 판매한다는 컴퓨터 주문제작의 첫 사례인 이 기업은 1996년부터 델스토어를 개설해 기존 PC업체의 유통 과정에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판매를 시도했다. 기존 PC업체는 유통 시장을 거쳐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지만 델컴퓨터는 유통시장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으로 소비자에게 직접 주문을 받아 판매했던 것이다. 이는 제품-유통(오픈 도매상)-소비자의 과정을, 제품-유통(온라인)-소비자의 과정으로 징검다리를 다시 놓은 예다. 이로 인해 소비자가 원하는 맞춤형 제품으로 불필요한 기능을 제거해 가격을 합리화했다. 또 신속하고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해 줌으로써 고객가치(customer value)를 높였다. 덕분에 결국 PC업체의 왕좌를 차지하게 됐다.

이 모두 틈새전략의 지혜로 가능한 것들이다. 기업에서도 시를 알고, 시 창작법과 같은 방법으로 전략을 세우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황인원은…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시 전공)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6시조문학(시조)’, 1990민족문학선집()’으로 등단했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거쳐 현재 경기대 국문과 대우 교수이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의 뼈’, ‘한국 서정시의 자연의식’, ‘두엄 속에서, 시여’, ‘문학’, ‘CEO 시를 알면 성공한다’,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