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숟가락 경영이 절실한 시대

권영구 2011. 5. 30. 09:57

전성철 칼럼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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숟가락 경영이 절실한 시대
기사입력: 11-05-26 11:25   조회849      별점: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시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3편
목표 향해 내달리는 직선적 사고와 함께, 주변 아우르는 유연성 갖춰야

#중국의 어느 외진 시골. 이 지역 사람들에게 세탁기는 참으로 고약하기 그지없는 제품이다. 이유는 잦은 고장 때문이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세탁기가 고장 나고, 고치면 얼마 못가 또 고장이 나곤했다. 그러다 보니 ‘제품을 이 따위로 만든다’면서 세탁기 생산회사에 대한 불만이 심했다.

고장이 잦은 이유를 현장 수리기사들은 잘 알고 있었다. 고장 신고를 받고 세탁기를 고쳐주기 위해 출동을 해보면 세탁기 안에 채소찌꺼기가 쌓여 있곤 했다. 기사들은 ‘세탁기는 빨래하는 것이지, 채소를 씻는 게 아니다’면서 ‘세탁기에서 채소를 씻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하지만 농부들은 계속 채소를 씻었고, 걸핏하면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았다.

가전 회사들은 이를 어떻게 대처했을까. 대다수 가전 회사 기사는 ‘무식한 농부들’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한 업체의 기사들은 달랐다. 본사에 농부들의 현상을 보고하고, 보고를 받은 본사에서는 생산부서에 ‘세탁기로 채소도 씻을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 결과 엔지니어들은 야채 껍질이 잘 빠지도록 배수관을 넓히고 필터의 구멍을 크게 만들었다. 이 새로운 세탁기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중국 최대의 가전회사 하이얼(Haier)의 얘기다.

 

#서울 강남 청담동 63번지. 동네에서 소규모로 운영되던 미장원 혹은 미용실을 기업으로 일군 한 사람이 있는 곳이다. 강윤선 대표. 그는 현재 가족 2200명과 함께 본점과 전국에 71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준오라는 이름의 행복점포 2500개, 연수입 1억원 직원 300명 만들기(현재 26명이라고 한다)다. 여기에 세계 최고 헤어 아카데미 강사 100명 만들기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멈춤 없는 전진이 필요하다. 이는 강 대표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그 주인공이 될 직원들의 목표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 그 실행 방법으로 독서교육을 한다. 과거 어떤 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든지 간에 준오헤어에 입사하면 무조건 ‘준오아카데미’에서 2년간 공부해야 한다. 여기서 독서교육이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독서는 인문학적 사고력, 경영학적 안목을 위한 공부다.

웃기지 않은가. 헤어 디자이너들에게 머리 모양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기술만 있으면 됐지 인문학과 경영학이 왜 필요한가.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다르다. 경영을 알아야 고객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인문학을 알아야 상상력을 동원해 고객에 맞는 헤어 디자인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덕분에 여기를 졸업하면 머리만 만질 줄 아는 미용사가 아니라 상상하고 꿈꾸고, 자신의 일을 즐길 수 있는 헤어디자이너로 재탄생한다.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져야 하는 이유
최근 곡선적 삶과 곡선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작은 변화는 가능해도 글로벌 기업으로의 성공은 힘들다. 세계적으로 우뚝 서는 기업은 직선적 추진력과 곡선적 아우름이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가능하다. 사실 변화는 언제든지 가능하다. 마음먹고 행동하는 순간 이미 변화는 시작된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한다. 변화가 시속 20km라면 진화는 시속 100km다. 그러니 진화하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결코 직선적 삶과 사고를 버릴 수 없다.

문제는 곡선만으로 진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앞서 나아가기 힘들듯 직선만으로도 안 된다. 21세기 진화는 사물과 대화를 할 줄 알아야 가능하다. 사물과 대화하려면 우선 사물에 대한 돌아봄이 필요하다. ‘사물을 돌아본다’함은 ‘주변을 돌아보며 아우른다’는 의미다. 직선과는 다른 곡선적 사고이자 삶이다.

하이얼과 준오헤어가 그런 기업이다. 두 기업 모두 목표가 있다. 하이얼은 더욱 글로벌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고, 준오헤어는 앞서 얘기한대로 행복 점포, 부자 직원, 최고 강사 배출 등이 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 기업은 직선적 흐름으로 나아가야 한다. 목표를 향해 나아감이 직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직선적인 목표와 동시에 주변의 모든 상황이나 환경을 아우르며,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수 있는 사고의 곡선적 탄력성이 내재해 있다. 하이얼의 수리 기사들은 매뉴얼대로만 하면 됐다. 하지만 이들은 매뉴얼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관찰해 보고하고, 보고받은 본사에서는 이런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도록 했다. 유연한 사고 덕분이다. 매뉴얼이 직선이라면 유연한 사고는 곡선이다. 준오헤어 역시 기술적 미용사가 아니라 인문학과 경영학적 사고를 가진 ‘생각하는 헤어디자이너’가 되도록 했다. 기술이 직선이라면 인문학과 경영학적 사고는 곡선이다. 즉 이들 기업은 직선과 곡선을 잘 조화시키고 아우르는 경영을 통해 생각이 고착화되지 않은, 그로 인해 폭넓은 사고를 가진 직원을 양성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하이얼은 주변의 상황을 충분히 습득하고 인정할 뿐 아니라, 그에 맞는 대처 방법까지 익혀 새로운 세탁기 개발에 성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또 준오헤어는 국내 대표 헤어기업으로 성장했음은 물론이고, 이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이것이 곡선 경영의 결과다.

 

숟가락 경영의 효용
‘숟가락’. 이들 기업처럼 직선적 목표와 곡선적 다양성, 포용성이 조화를 이루는 경영방식을 ‘숟가락 경영’이라고 이름한다. 왜 숟가락이냐고? 물음표 모양인 숟가락은 직선과 곡선, 그리고 굴곡의 결합체다. 물음표가 다양한 답을 창출하듯 숟가락은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 목표를 향해 달려가되 주변의 상황을 흡수해 곡선의 모양을 만든 하이얼이나 준오헤어의 경영태도와 닮았다.

숟가락의 용도는 목표를 떠올리는 것인데 손 전체를 사용한다. 손가락을 모아 팔로 움직여 입으로 가져간다. 집단적이고 집합적이다. 이는 포용성으로 연결된다. 서로 배려하고 각각 손가락의 의미와 활동을 인정하는 포용성에서 비롯된 집단이고 집합이다.

숟가락과 가장 쉽게 비교되는 것이 젓가락이다. 젓가락은 직선 하나로만 연결돼 단조롭다. 하지만 젓가락은 목표를 집어낸다. 그래서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힘이 강하고 빠르다. 반면 젓가락은 손가락을 벌렸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며 사용한다. 숟가락에 비하면 대단히 개별적 사용인 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숟가락의 다양성과 포용력을 가진 집합적 특징 앞에 고개를 숙인다. 숟가락을 사용할 때 우리는 대부분 고개를 숙이게 된다. 물론 음식물을 먹다가 흘리지 않기 위한 행동이지만 세상 누구나 숟가락을 사용할 때는 적당히 머리를 숙인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사용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김선우 시인도 “숟가락은 경건함이 스며있다”면서 “손을 오므려 산에서 내려오는 자연의 물인 약수를 먹을 때처럼 공경이 내포돼 있다”고 했다.

마침 글자도 이와 같은 활용성에서 나온 것처럼 생기기도 했다. 젓가락과 숟가락의 앞 발음은 모두 [젇]과 [숟]으로 받침에 ㄷ발음이 나오는데 표기는 각각 ㅅ과 ㄷ으로 다르다. ㅅ은 집는 도구이고, ㄷ은 공간이 있어 뜰 수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 보면 기업에서 ‘숟가락 경영’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최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큰 이슈가 됐듯 ㅅ의 개별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ㄷ처럼 함께 떠지는, 함께 가는 사고가 언제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기업 자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젓가락 경영으로도 얼마든지 운영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 여건이 많이 달라졌다. 지속성장이나 사회적 책임을 비롯한 내, 외부적 환경 등 수많은 사안과 함께 가야 한다. 어떤 기업이라도 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젓가락의 직선적 경영방식과 ‘함께, 그리고 동시에’ 곡선적 특징이 담긴 숟가락 경영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게 된 것이다.

 

‘부드러운 직선’으로 리드하라
이제 직선이되 부드러운 곡선적 직선이고, 곡선이되 직선적 특징을 동반해야 한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시가 있다. 도종환 시인의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시다.

높은 구름이 지나가는 쪽빛 하늘 아래
사뿐히 추켜세운 추녀를 보라 한다
뒷산의 너그러운 능선과 조화를 이룬
지붕의 부드러운 선을 보라 한다
어깨를 두드리며 그는 내게
이제 다시 부드러워지라 한다
몇 발짝 물러서서 흐르듯 이어지는 처마를 보며
나도 웃음으로 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
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들이
있어야 할 곳마다 자리 잡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걸 본다
사철 푸른 홍송 숲에 묻혀 모나지 않게
담백하게 뒷산 품에 들어 있는 절집이
굽은 나무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본다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
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이 시에서 주인공은 누구인가. 시 첫머리에 나오는 ‘높은 구름’이다. 시인은 신의 존재 같은 ‘높은 구름’이 하는 말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준다. ‘높은 구름’이 뭐라고 했나. 추녀를 보라고 한단다. 한옥을 보자면 추녀는 쭉 뻗은 직선으로 내려오다 끝에서 살짝 올라가는, 이 시에 의하면 ‘살짝 추켜세운’ 곡선의 미학을 보여준다. 영락없이 숟가락 모양새를 닮았다.

한옥은 지을 때 한 공간에 아무렇게나 짓는 게 아니라 주변과 조화를 우선으로 한다. 어느 지역에나 있는 뒷산의 흐름과 조화를 이뤄야 진정한 한옥의 미학을 얻게 된다. 말하자면 주변을 아우르는 미학 속에서 한옥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붕의 곡선적 아름다움을 받쳐주는 게 기둥이다. 기둥은 보통 직선으로 뻗어있다. 대부분의 기둥은 직선이지만 둥근 둘레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둥근 직선인 셈이다. 둥근 직선이라는 말은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말과 같다. 휘어지지 않는 정신을 가진 곡선인 것이다. 그래서 한옥의 소재가 되는 모든 사물이 서로 다양성을 포용하면서 ‘모나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

이 때문에 시인은 ‘한 생애를 곧게 산 나무의 직선이 모여/가장 부드러운 자태로 앉아 있는’ 한옥이 ‘부드러운 직선’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직선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곡선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우리 민족의 절묘한 사고가 한옥에 담겨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 시의 중심 시구는 ‘저 유려한 곡선의 집 한 채가/곧게 다듬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것을 본다’다. ‘곡선의 집 한 채+곧게(직선) 다듬은 나무=한옥(부드러운 직선)’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직선과 곡선이 합쳐진 ‘숟가락 경영’의 사고를 가져야 하는 게 ‘높은 구름’ 같은 존재, 리더들이다.

황인원은ㆍㆍㆍ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시 전공) 박사 졸업. 1986년 <시조문학>(시조), 1990년 <민족문학선집>(시)으로 등단했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기자생활을 거쳐 현재 경기대 국문과 대우 교수이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생각의 뼈>, <한국 서정시의 자연의식>, <두엄 속에서, 시여>, <문학>, <CEO 시를 알면 성공한다>,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등이 있다.


 * <시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코너는 4월부터 매달 연재됩니다. 창의성과 상상력의 보고(寶庫)인 詩의 영역을 활용해 경영을 통섭적 시각으로 풀어낼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지원 부탁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