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매일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커플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꾸준히 연애 중이다. 비결이 뭘까? 영국의 심리학자 던컨 크레이머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답이 나온다. 던컨 교수가 연애 중인 대학생 199명에게 물었다. ‘싸우는 횟수가 연애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예상과 달리 상관 관계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싸움을 해결하는 방식은 연애 만족도에 영향을 미치는가?’ 그러자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연애 만족도를 결정하는 건 싸움 횟수가 아니었다. 문제는 ‘싸운 뒤에 어떻게 해결하느냐’였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이런 저런 갈등 때문에 고민인가? 갈등해결의 해법을 알아보자.
#1. 부부싸움 뒤 나가려는 남편 vs. 붙잡으려는 부인 “또 어디 도망가? 나랑 얘기 좀 하자니까!” 부인의 외침을 뒤로 하고 박 부장은 오늘도 사우나로 향한다. 부인과의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변해 버렸다. 이렇게 화가 날 때는 서로 한 발짝 떨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하는 박 부장. 사우나는 그에게 부부싸움으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반면 부인은 지금 당장 얘기하고 싶어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남편을 집안에 일단은 잡아두려 안달이다. 나가려는 자와 잡아두려는 자의 갈등! 이 부부,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
Solutions) 갈등 해결의 궁합을 맞춰라!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이를 대처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이 대처 방식을 토마스(Kenneth W. Thomas)와 킬만(Ralph H. Kilmann) 박사는 5가지 유형으로 구분했다. 회피형, 호의형, 경쟁형, 타협형, 협력형이 그것이다.
문제는 서로 상극인 갈등 대처 유형이 만났을 때 일어난다. 회피형은 일단 피하고 보는 사람이다. 반면 타협형은 자기 것을 양보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갈등의 순간 타협형은 회피형을 만나면 기분이 매우 상한다. 나는 양보와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고 싶은데 상대는 나를 외면하기 때문이다. 급기가 상대가 날 무시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앞에서 본 박 부장(회피형)과 부인(타협형)이 이런 예다. 이럴 땐 서로 상대의 대처 유형을 미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의 유형을 인정해야 한다. 박 부장은 부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여보, 난 당신을 무시하는 게 아냐. 단지 혼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그래.” 부인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보, 난 당신이 그렇게 휙 하니 나가버리면 내가 아주 하찮은 사람처럼 느껴져 화가나.”
사람관계에는 ‘궁합’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결혼 궁합만 맞춰보지 말고 갈등대처의 궁합에 신경 써보는 건 어떨까. 타고나는 갈등대처 궁합은 없다. 서로 맞춰갈 뿐이다.
#2. “매립장은 산업 폐기물도 받아라” vs. “생활 쓰레기만 처리해라” 유 사무관은 고민에 빠졌다. 관할 지역의 쓰레기 매립장 때문에 시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 산업체들이 ‘쓰레기 매립장에 산업 폐기물도 반입해 달라’며 냈다.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지 못해 공장 운영이 안 된다는 주장. 그러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애초에 생활 쓰레기만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산업 폐기물 반입은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맞섰다. 산업체와 주민들 사이의 갈등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유 사무관. 묘안이 없을까? |
Solutions) 갈등의 원인을 분해하라!
이 사례는 90년대 초 김포에서 실제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이 갈등은 ‘분해’ 해법으로 해결됐다.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최대한 잘게 쪼개는 것이 분해 해법의 핵심이다. 산업 폐기물 처리 문제로 주민들의 반발이 컸던 김포 쓰레기 매립장. 지자체는 고심 끝에 ‘산업 쓰레기’를 분해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지역 주민들이 산업 쓰레기 반입을 반대한 것은 ‘산업 쓰레기에서 배출되는 유해 물질’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유해 물질’이 문제지, ‘산업 쓰레기’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던 셈. 결국 이 갈등은 ‘유해 물질이 포함된 산업 폐기물은 절대 반입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넣어 해결됐다. 실제 산업체에서 나오는 산업 폐기물 중 유해 물질이 포함된 것은 30%도 채 되지 않았다.
분해 해법은 다양한 갈등 해결에 사용된다. 대표적 사례가 AIDS 예방 교육을 놓고 미국에서 벌어진 갈등이다. 주 정부에선 AIDS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와 공공 장소 등에 전면적인 예방 운동을 계획했다. 하지만 보수 단체에서 반대 운동을 벌였다. AIDS 예방 교육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성애’, ‘성관계’ 등의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부모 입장에선 자녀들이 그런 얘기에 노출되는 게 싫었던 것이다. 고민하던 주정부는 AIDS 예방 교육을 ‘분해’해 문제를 풀었다. 학교 등 아이들의 생활 공간엔 ‘공중 보건’에만 초점을 맞춘 AIDS 예방 포스터를 붙이기로 했다.
상대와 갈등하고 있는가? 그러면 갈등 이슈를 최대한 잘게 쪼개라. 그리고 그 작은 조각 속에서 갈등의 불씨를 끄집어 내라. 그 불씨를 꺼트리면 갈등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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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FT를 위해 인력 차출” vs. “우리 팀 업무도 빡빡한데….” 회사 업무 혁신을 위한 테스크포스팀(TFT)을 맡은 견 팀장. 하지만 일주일째 멤버도 제대로 못 꾸리고 있다. 다른 팀장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 견 팀장이 인력 차출을 위해 마케팅 팀의 원 팀장을 찾아갔다. “원 팀장님, TFT에 마케팅 팀의 유 과장이 꼭 필요합니다. 협조 부탁 드릴께요.” 하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대답. “마케팅 팀 일이 많아서 지금 인력으로도 팀 운영 빡빡한 거 아시죠? 그런데 저희 팀 핵심 인재인 유 과장을 내 놓으라뇨? 절대 안 됩니다. 대신, 최 대리 보내 드릴께요.”
모든 팀이 이런 식이다. TFT에 꼭 필요한 인재는 팀에서도 중요하다는 핑계로 절대 내 놓지 않는다. 핵심 인재를 서로 갖겠다고 벌어진 갈등. 견 팀장과 원 팀장은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
Solutions) 갈등의 지점에서 통합하라!
“이것 좀 해 주세요.” “안 됩니다.” 조직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갈등이다. 한쪽이 통 크게 양보하지 않으면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이럴 때 유용한 방법은 ‘통합’이다. 양 측이 원하는 것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 TFT 구성을 위한 인력 차출로 다투고 있는 견 팀장과 원 팀장. 둘 모두 자신의 팀이 더 많은 성과를 내길 원한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 TFT의 업무에 마케팅 팀의 성과를 높여줄 수 있는 일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케팅 팀의 원 팀장은 유능한 유 과장을 일부러 TFT 로 보낼 수도 있다. TFT에서 나오는 성과가 좋아지면 자신이 맡고 있는 마케팅 팀의 성과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견 팀장과 원 팀장 모두 만족하는 결과를 얻는다.
이것이 통합 해법이다. 통합 해법에 집중하면 기발한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일본에서 있었던 사례를 보자. 오사카의 오피스 타운에 한 건설사가 건물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시에서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건물이 들어서려는 곳은 고속도로 건설 예정지였기 때문이다. 건물을 올리려는 측과 안 된다는 입장이 맞선 상황. 이 갈등은 건물의 5~7층에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형태로 해결됐다. ‘입체고속도로’라는 새로운 대안으로 양 측 모두 원하는 것을 얻게 됐다. 이 방식은 토지 효율성을 극대화한 사례로 평가 받고 있다. 서울시도 이를 벤치마킹, 하나의 땅을 복합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들기도 했다. 통합하라! 고정관념을 깨면 된다.
#4. 일 맡기고 계속 체크하는 상사 vs. 참견이 미워 일도 대충하고픈 부하 “오 대리, 잠깐 볼까?” 오늘만 벌써 세 번째 호출이다. ‘아니, 일을 맡겼으면 좀 믿고 기다려 주시지. 왜 자꾸 사람을 불러서 했던 얘기 또 하고, 일의 진척사항을 체크하시는지’ 오 대리의 기분이 상한다. 강 부장의 일장 연설이 시작된다. “오 대리, 아까 말한 대로 이 기획서를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하지만 오 대리의 귀는 이미 닫혀 있다. ‘아니, 아무리 사장님께 올리는 기획서라지만, 너무 참견이 심하시네. 강 부장님은 나를 못 믿는 게 분명해’ 상사가 미워진다. 자존심도 상한다. 시킨 일도 대충하게 된다. 기회만 되면 이 회사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구직 사이트도 뒤적인다. 오 대리의 갈등. 해법은 뭘까? |
Solutions) 갈등 자체를 리스토리(Re-Story) 하라!
인간 관계에서 갈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대부분 다음의 4단계를 거친다. 1단계, 상대가 어떤 행동(Action)을 한다. 2단계, 상대의 행동에 대한 나의 해석(Interpretation)이 내려진다. 3단계, 해석에 따라 나의 감정(Feeling)이 생긴다. 4단계, 감정에 따라 나의 대응(Reaction)이 결정된다. 무슨 말인지 위의 사례로 풀어보자.
오 대리와 강 부장의 갈등은 이런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 우선 강 부장이 하루에 3번이나 오 대리를 불러 업무를 체크했다. 이 행동에 대해 오 대리는 상사가 나를 믿지 못한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렇게 해석하고 나니 자존심이 상하고 일하기 싫은 감정까지 생겼다. 결국, 시킨 일도 대충하고 구직 사이트도 뒤져 보는 등 ‘소심한’ 대응에 나섰다.
어디부터 문제인가? 그렇다. 바로 ‘해석’이 문제다. 만약 하루에 3번씩이나 오 대리를 호출한 강 부장의 행동을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 ‘강 부장은 지금 사장님께 보고 드릴 기획서 작성을 가장 유능한 부하에게 맡기고 싶어할 것이다. 워낙 중요한 일이기에 꼼꼼히 피드백하며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도와주고 싶어 한다’ 만약 오 대리가 이런 해석을 내렸다면 다음 단계인 감정과 대응은 어땠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기획서 작성에 매달렸을 것이다.
이처럼 해석을 나의 부정적 관점이 아닌 상대의 긍정적 관점에서 새롭게 하는 것을 갈등학에선 ‘Re-Story (스토리를 다시 쓴다)’라 부른다. 내가 미워하는 상대를 떠올려 보자. 상대의 행동에 대해 내가 그 동안 써왔던 스토리를 점검해 보자. 이제 ‘Re-Story’ 할 차례다. 상대 입장에서…… 스토리를 다시 쓰는 것은 내 마음의 평안을 위한 자기합리화도, 상대를 위한 맹목적인 배려도 아니다. 내 인식의 확장일 뿐이다.
<에필로그>
나와 상대가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 갈등이 없다면, 행복해 보일 지 모른다. 하지만 경영학의 대가 톰 피터스는 말한다. “두 사람이 업무에 대해 항상 같은 의견을 갖고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불필요한 사람이다.” 다르다는 것, 그래서 갈등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인간관계는 더 깊어지고, 조직의 창조적 생산성은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 이제 선택해야 한다. 갈등을 지배할 것인가? 갈등에 지배당할 것인가?
* 위 기사는 조선 Weekly Biz 2011년 5월 14일자에 전문이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