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세상에 알리려고 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비웃음과 가혹한 형벌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겐리히 알트슐러(Genrich Altshuller)고 그가 목숨을 걸고 세상에 전하려 한 것은 트리즈(TRIZ)다. 알트슐러는 어려서부터 발명에 재능을 드러내며 해군 특허부서에 발탁돼 장교로 근무했다. 거기서도 혁혁한 성과를 보여 당시 KGB의 수장인 베리야까지 만나게 된다.
출세가도를 달리던 그가 곤경에 처한 것은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그는 구소련의 혁신과 발명에 대한 무지함을 지적하고 이를 보완할 자신의 이론을 소개했다. 다른 발명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쓴 편지였지만 답장은 냉혹했다. 그는 모스크바 감옥에 갇혀 조작된 자백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받으며 온갖 종류의 고문을 당했다. 시베리아 수용소로 이송된 다음에도 굴하지 않고 거기서 만난 다양한 지식인들에게 전문지식을 배우며 자신의 이론을 갈고 닦았다.
스탈린이 죽어 겨우 풀려났지만 세상은 여전히 트리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소련의 최고 특허기관에 9년 동안 수백 통의 편지를 쓰면서 버텼다. 그는 싸구려 공상과학소설을 쓰면서 연명했고 소설을 통해서라도 트리즈를 알리려 노력했다. 마침내 1968년 그루지아에서 트리즈를 발표할 기회를 얻었고 이때부터 수많은 동조자가 생겼다. 알트슐러의 이론에 열광한 사람들이 자신의 도시로 돌아가 트리즈 학교를 세웠다. 그는 1969년 출판한 책에서 창의적인 문제해결원리를 40가지로 정리해 공개하면서 “당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백년을 기다릴 수 있고, 아니면 이러한 원리들을 가지고 15분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고 단언했다. 당시 앵글린(Anglin)이라는 저명한 발명가가 있었는데 40가지 원리에 대해 알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한 거야. 트리즈를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하며 탄식했다고 한다.
인형들이 포개져 있는 러시아의 마트료시카
알트슐러가 수용소 생활을 하는 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다 지친 홀어머니가 자살했다. 러시아 전통인형인 마트료시카(Matryoshka)에는 어머니 모습을 그린 인형이 많다. 마트료시카는 마치 어머니가 자식들을 감싸듯 인형 안에 작은 인형이, 작은 인형 안에 더 작은 인형이 들어있다. 알트슐러는 해결원리 7번에 마트료시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말로는 포개기(Nesting)라고 한다. 이렇게 하나의 물체 안에 작은 물체를 넣으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뿐더러 휴대도 간편해진다. 접으면 손바닥 길이로 줄어드는 망원경, 지시봉, 안테나 등은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들었다.
포개기 원리가 적용된 제품에는 주부와 관련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게 그릇, 접시, 컵 등 주방용품이다. 크기를 조금씩 작게 만들면 탑처럼 쌓기 쉽기 때문에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기자기한 느낌을 줘서 펼쳐놓았을 때 모양도예쁘다. 최근에는 포개기를 활용한 독특한 와인 잔과 주방용 칼도 나왔다. 와인 잔은 목 부분을 분리해 받침이 입구를 막은 상태로 운반할 수 있고, 주방용 칼은 큰 칼 안에 작은 칼이 들어있는 식으로 모두 네 개의 칼이 있어 각기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유아용 그림책과 블록을 합친 네스팅 블록(Nesting Block)도 인기를 끌고 있다. 상자 형태로 돼있는데 가운데 그림책이 있고 그 곁을 점차 커지는 블록들이 감싸고 있어 이것을 뽑으면 입체적인 모양이 돼 아이들이 좋아한다. 가구에도 포개기 원리를 적용한 제품이 많다. 포개놓을 수 있는 의자, 책상에서부터 크기 별로 다른 책을 정리할 수 있는 선반, 책장 등의 제품들이 나와있다.
휴대가 간편해야 하는 여행용품은 대부분 포개기 원리를 적용해 만든다. 코펠을 비롯해 가방, 텐트 등 대부분 이 원리를 활용해 부피를 줄였다. 포개기라고 해서 꼭 제품 크기를 달리할 이유는 없다. 같은 크기의 제품에도 포개기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 마트에서 사용하는 카트나, 좁은 자판기 안에 쌓아야 하는 일회용 컵 등이 그런 제품들이다. 동전을 이용한 자물쇠를 단 카트나 빼기 쉽도록 윗부분을 만 종이컵처럼, 사용방식을 고려해 아이디어를 조금 가미하면 더 훌륭한 제품이 만들어진다. 같은 종류의 제품만으로 포개기를 할 이유도 없다. 6편 다용도에서 소개한 지고 리더(Zigo Leader)처럼 짐받이, 유모차, 자전거 등 필요한 부품들을 크기에 따라 포개 한 세트로 만들면 된다.
제품뿐만 아니라 공간에도 적용
건물에 이 원리를 활용하면 효율적인 공간 활용 외에도 쓰임새가 넓어지는 이점이 생긴다. 찜질방에 마사지센터나 피부치료실을 두거나, 부티크 가게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특별 전시하는 식이다. 미국의 너티가이즈(Nutty guys)라는 견과류업체는 상점 안에 자신의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으로 ‘식료품점 안의 식료품점’이라 불리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호텔은 화장실을 갈 때도 게임 장소를 통과하도록 해서 게임을 더 많이 하도록 유도한다. 놀이공원도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놀이를 마치고 나오는 고객이 상품판매점을 통과하도록 해서 상품을 사게 유도한다. 이처럼 포개기에는 ‘하나의 객체가 다른 객체를 통과’하도록 하는 원리가 숨어있다. 에스컬레이터 계단 광고처럼 고객들의 동선을 생각해 적절히 활용하면 같은 크기의 공간으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IT 공간은 포개기 원리가 일상적으로 적용되는 곳이다. 폴더 안에 폴더가 있고, 그 폴더 안에 더 작은 폴더가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IT제품 구조는 포개기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컴퓨터 구성 방식(Architecture)뿐만 아니라 응용프로그램도 같은 원리를 적용해 만들었다. 인터넷 안에 페이스북이 있고 페이스북 안에 게임업체가 들어있다. 발달된 IT기술을 포개기에 적절히 활용하면 ‘은행 내의 작은 은행 ATM기’처럼 좁은 공간을 더 넓게 활용할 수 있다.
한호택은ㆍㆍㆍ 서울대 미학과 졸업, 삼성화재 6시그마MBB, 교육센터장을 거쳐 현재 IGM 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하루만에 배우는 6시그마>, <트리즈, 천재들의 생각패턴을 훔치다> 등 다수가 있다. |
* <IGM 비즈니스 리뷰>는 포스코와 삼성 등이 도입해서 큰 성과를 보이고 있는 창의적 문제해결 기법 트리즈(Triz)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서 ‘난해한 트리즈 쉽게 배우자’란 코너로 연재합니다. IGM의 한호택 교수가 재미있게 쓴 트리즈의 40가지 해결원리를 매달 2편씩 만나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