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은 15일 중국 광저우대학타운 화궁체육관에서 열린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유도 남자 78㎏이하급 결승전에서 왼쪽 발목을 다친 아키모토 히로유키(일본)를 만났다. 왕기춘으로서는 아키모토의 발목만 집중공략해도 승리할 수 있었지만 외면했다. 경기후 왕기춘은 "아키모토가 다친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그 부위를 노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 말에 많은 스포츠팬들은 '정정당당한 왕기춘이 진정한 챔피언'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평소 왕기춘은 경기에서 지면 변명을 잘 하지 않는다. 이 날도 당초 "패배를 인정한다.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아키모토의 발목을 일부러 노리지 않았다"는 발언 자체가 왕기춘의 평소 성격과는 잘 맞지 않는다. 이 발언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바로 일본 취재진들의 도넘은 질문공세 때문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일본 취재진들은 왕기춘에게 집중 질문을 퍼부었다. 앞선 이틀동안 일본 유도계는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해있었다. 한국에 금메달수에서 3대 5로 밀렸다. 그러던 차에 아키모토가 왕기춘을 꺾었다. 그동안 괄시받았던 일본 취재진들은 이 기회에 울분을 풀고자 했다. 크게 실망해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나선 왕기춘은 이들 취재진들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한 일본 기자는 왕기춘에게 "2007년과 2009년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그런데 이제 아시안게임에서조차 은메달을 딴 이유가 뭔가"라며 하향세를 꼬집었다. 또 다른 기자는 "9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키모토에게 지고, 이번에도 졌다. 아키모토에게 당한 2연패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로 남지 않겠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왕기춘은 "열심히 하겠다"거나 "정신적인 부담은 있었다"며 짧게 답했다. 표정은 굳어있었다.
구마모토현에서 온 기자는 "아키모토의 부상을 알고 있었나. 만약 알고 있었다면 왜 약점을 공략하지 않았나"라고까지 물었다. 왕기춘은 일본 기자들의 질문 공세에 질린다듯이 정색한 표정으로 "다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굳이 공략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왕기춘이 당황하자 한국 취재진들 역시 단단히 화가 났다. 정정당당한 패배를 택한 왕기춘을 지킬 방안이 필요했다. 질문이 다 끝났지만 한국 취재진은 양해를 구했다. 타깃은 아키모토였다.
"방금 왕기춘이 당신의 다친 발목을 공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달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데 왕기춘의 선택은 어떤가."
아키모토는 "왕기춘이 이점을 가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펼치고자 일부러 외면한 것은 대단하다.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들이 술렁였다.
질문이 하나 더 날아갔다.
"오늘 경기에서 수비일변도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를 전혀 받지 않았다. 다른 선수라면 지도를 최소 2개는 받았을 텐데 지도를 받지 않은 비결이 무엇인가."
아키모토 역시 굳은 표정으로 "내가 경기를 잘 하지 못해 승부에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는 것 같다.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해서 다른 말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광저우=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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