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우연한 풍경은 없다

권영구 2012. 9. 27. 08:49

 

우연한 풍경은 없다
김연금 / 나무도시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시립대학교를 10년 동안 ...
우리 일상과 함께하는 풍경 : 우리를 둘러싼 익숙한 풍경 속에...
풍경은 자연과 우리네 삶, 그리고 다 함께 만들어 가는 새로운 공간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진 모습이다.시장 골목 파라솔이 햇빛에 비쳐 알록달록한 색깔을 만들고 공원의 나무는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광화문 광장에서 바라본 북악산은 경복궁, 광화문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풍경은 자연이다. 굽이굽이 이어진 높은 산기슭 계단이 정겹고, 마을 정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물을 다듬으며 우리네 사는 얘기를 나누시는 할머니들 모습 또한 정겹다. 풍경은 우리 삶이 깃든 모습이다. 동네 주민이 다 함께 나무를 깎아 공원 의자를 ...

 

 

◈ 원페이지북
1. 이야기가 있는 풍경
우리가 스쳐 지나는 수많은 풍경에는 저마다 스며 있는 이야기가 있다.

가파른 돌산 옥수동 고개. 이곳은 전쟁이 끝나고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판자촌을 이룬 산동네다. 국유지에 무단으로 지어지는 판잣집은 낮 동안 행정 단속으로 사라졌다가 밤이면 다시 지어졌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에겐 하늘이라도 가릴 수 있는 잠자리가 절실했다. 급한 경사의 옥수동 계단은 보기만 해도 숨차고 가파르다. 이곳의 삐뚤삐뚤한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다 보면 갸우뚱 서 있는 집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도 너울너울 춤을 춘다. 집과 집 사이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옥수동 계단은 폭도 높이도 모두 달라 지루함이 없다. 어려운 시절 많은 사람이 삶을 짊어지고 오르내리던 계단. 그곳에는 그들이 바라던 희망과 삶에 대한 노력, 소중한 땀이 배어 있다.

하루에 십여만 명이 찾는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은 6·25 전쟁 이후, 골동품 상인들이 임대료가 싼 이곳으로 상가를 옮기며 전통문화가 시작되었다. 전쟁으로 형편이 어려워진 안국동 인근 주민은 자신이 갖고 있던 물건을 골동품 가게에 내다 팔았다. 한옥 또한 전쟁 이후 양반들에 의해 지어졌다. 1970년대 이후, 인사동을 찾는 발길이 늘어나면서 인사동은 골동품과 고미술 관련 표구점, 필방 등이 생겨났고 현대미술을 다루는 화랑도 들어서게 되었다. 그 후 아시안게임을 기점으로 종로구의 문화정책에 따라 인사동은 ‘전통문화의 거리’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경제 불황 극복을 위한 판매 전략으로 인사동은 젊은이들의 거리로 변모했고, 대형건물이 들어서면서 옛것을 잃어가기도 했다. 결국 바람직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건축허가제한 지역이 되지만, 땅 주인이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결국 열두 개의 옛 가게 터에는 쌈지 건물이 들어섰다. 이러한 재건축과 함께 전통체험, 전통축제, 한식집, 전통찻집, 등 인사동 풍경도 변하고 있다. 한옥의 요소인 기와, 창살, 담장으로 장식된 현대식 건물을 흔히 볼 수 있고, 스타벅스조차 외장이나 내부 실내장식을 전통적 소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 모습들은 전통이라기보다는, 추상화된 전통에서 비롯된 시각적 요소들이라 할 수 있다.

아직도 인사동은 ‘전통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작은 가게 살리기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소비의 대상이라는 상징성이 지배하는 인사동과 전통을 잇는 인사동에 사이에서 전통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의 숙제로 남아있다.


2. 이웃의 삶이 담긴 풍경
풍경 속에는 지나온 삶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파고다 공원은 한때 노인 이용자가 하루 300여 명이었고, 나름대로 화려한 노인문화가 있던 곳이다. 만남, 강의, 고사성어, 붓글씨 등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즐겼었다. 그러나 기념공원으로 변모하면서 이용 시간을 제한했고 그늘막, 벤치 같은 휴식시설을 철거했다. 더군다나 종로 일대가 젊은이들의 거리가 된 후 심리적으로도 위축된 어르신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어르신네들에 대한 공간적 배려에 인색하다. 어린이 놀이터처럼 어르신들을 위한 놀이터를 선사해, 그분들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북한산 자락 길음동에서는 어디서나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마을 정자는 할머니들 대화의 장소이며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놀이터 벤치, 주차장 한 모퉁이, 길 가장자리에 모여 할머니들은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신다. 나물을 다듬고 화투를 치기도 하는 주변 공간들은 할머니들 쉼터이자 작업장인 셈이다. 여성들은 사적인 관계에서 중요한 배려, 보살핌, 사랑 같은 친밀성에 남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오늘도 즐거움을 찾아다니신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종교적 · 정치적 이유로 모국에서 추방된 이주민들을 말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신의 의지로 모국을 떠나 다른 국가에서 사는 외국인 공동 거주지의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원곡동과 차이나타운, 연변거리, 일본인 마을, 서래마을, 이슬람 마을 등이 있다. 디아스포라는 매혹적이면서도 두려운 공간이다. 우리와 다른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그 차이로 오해가 생겨 문제가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의 경우, ‘다문화 거리 특구’로 지정된 후 외관은 새로이 디자인되어 깔끔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쪽방이 존재하고 어려운 생활로 크고 작은 불화가 끊이지 않는다.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앞으로 많은 곳에서 디아스포라 같은 ‘제3의 공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우리가 가지는 매력과 두려움도 빈번해질 것이다. 따라서 외국인과 진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오해 없는 소통을 하기 위해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행동 양식, 가치관 등에 내재한 문화적 의미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맥락에 맞게 의미를 만들어 내는 ‘문화 번역’이 필요하다. 디아스포라는 외국인에게는 두고 온 삶의 풍경을 그리워하는 ‘향수의 공간’이다. 또 우리에게는 가보지 못한 외국에 대한 막연한 낭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려움보다는 향수와 낭만이 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디아스포라가 좋은 문화 번역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3. 함께 만들어가는 풍경
풍경은 우리 모두의 참여로 새롭게 꾸며진 공간과 옛것이 더해져 조화를 이룬다.

지하철이나 버스 창 너머로 보이는 한강의 저녁 노을빛, 반짝이는 수면은 우리의 일상 속 풍경이다. 수북이 쌓인 가을 낙엽 길은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하나의 그림 같은 풍경이다. 언제고 산이나 바다를 찾을 수 없는 우리는, 우리 일상과 도시를 아름답게 보는 마음과 눈을 가져야 한다. 은행나무 길을 보며 반 고흐의 작품이 공간화된 건 아닌가 생각해보고, 도시의 빨간 벽돌 사이 이끼에서 태고(太古)의 자연을 상상해보자. 우리의 감수성을 키워보자. 자연은 순환하며 소리 없이 존재를 드러낸다. 그 찰나의 풍경을 엿보는 건,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나는 원서동 한평공원을 마을 사람들과 새롭게 꾸몄다. 모두 함께 그림을 그리고 나무를 깎아 의자를 만들며 정성껏 꾸몄다. 음주(飮酒) 가무(歌舞)와 잦은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공원은 이제 아이들도 함께하는 밝은 공원이 되었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니 길가에 화분을 놓고 고추 모종을 심으시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어르신은 “여름엔 저기서 고추가 꽤 열릴 거야.”라고 말씀하신다. 어르신은 앞으로 몇 개월을 고추 모종과 함께 하면서 잎이 마르지 않았나, 얼마나 자랐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새로이 만들어 가는 공간, 새롭게 피어나는 생명이 있는 공간. 나는 많은 사람이 공간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일상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또 하나의 풍경을 볼 수 있길 바란다.

광화문 광장을 걸어 나오면 북악산이 우리 도시를 에워싸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북악산은 북쪽 북한산 백운대(白雲臺)와 정궁(正宮)인 경복궁, 남쪽 관악산 연주대(戀珠臺)를 잇는 축을 바탕으로, 광화문과 정궁이 세워지고 육조거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이 있는 세종로에서 북악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세종로가 왜 거기에 있는지, 경복궁이 왜 저렇게 자리 잡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우리 산과 옛것이 조화를 이룬 풍경이라는 것을.

선유도공원은 조경가가 만든 공원에 미술가들이 참여해 그 완성도를 더했다. 아름다운 풍경이 또 한 번 미술가의 시각으로 재구성되었다. 미술가들은 기존의 공간 질서와 풍경을 존중해 자신의 작품만을 돋보이게 하지 않고 풍경 속에 잘 녹아들도록 매력적인 색을 더했다. 이렇듯 풍경은 사람들의 참여로 덧쓰기를 거듭하며 재생산되었다. 많은 이가 풍경 만들기에 참여하고 풍경 그 자체로 소통되는 것은 조경가로서 기쁜 일이다. 이는 풍경을 만들고 논하는 일이 일부 전문가나 행정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풍경이 진정한 주체인 대중으로 확대돼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것이, 나는 한없이 기쁘다.




◈ 서평
우리 삶 일부인 풍경
일상 속 풍경은 삶의 이야기를 담아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데 그 의미가 있다.

“풍경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닙니다. 전문가의 손을 거친 도로와 가로수, 건축물 그리고 가게의 간판, 주인이 내놓은 화분······. 거기에 우리 이웃들이 어울려야 비로소 풍경이 되는 것이지요. 풍경은 삶과 의지가 오랜 시간 얽혀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담벼락의 낙서 하나도 우연이 아니라 의지에 의해 생겨난 것입니다.”

저자는 이처럼 많은 이가 우리 일상 속 풍경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사연이 있고, 의미가 있으며 풍경에 깃든 우리 이야기를 알아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풍경이 빛을 발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또한 지나온 옛이야기로 바라보는 풍경을 통해 그동안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조경가인 저자는 모든 공간을 전문가의 손으로 만드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 공간에서 살아갈 사람들과 대화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놀이터 하면 으레 어린이들만의 공간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편히 즐기실 곳 없는 어르신들을 위한 놀이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 공간 안에 생활하는 사람인 주민이 참여하는 게 좋다.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일에 자신의 의견을 담아 또 하나의 풍경이 만들어진다면 그 의미는 남다를 테니까.

이화마을을 비롯해 지방 곳곳에는 마치 동화 나라에 있는 듯 착각할 정도로 마을 전체를 예쁘게 꾸민 곳이 있다. 담벼락에 하늘을 담았고 층층 계단에 화단을 놓아 꽃을 심었다. 이 또한 우리 삶 일부인 풍경을 우리가 가꾸고 꾸미자는 취지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저자의 말처럼 우연하게 생겨난 풍경이란 없는 듯하다.

풍경에 담긴 의미를 알고 다시 보게 된 일상의 모습은 새롭게 느껴졌다. 또 어떤 모습은 더욱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 다른 공간에서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풍경 안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 삶은 그렇게 풍경 속에 스며 있다고 말이다.



◈ 저자소개
김연금 - 친근한 풍경을 표현하는 조경가
서울 옥수동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시립대학교를 10년 동안 다니면서 공학 박사학위(조경 전공)를 받았다. 그녀는 현재 약수동에서 ‘조경 작업소 울’을 운영하고 있다. 저자는 10년 이상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 디자인 센터’와의 인연으로 ‘조경과 삶의 공간’, ‘일상의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저서로는 『소통으로 장소 만들기』,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공저), 『커뮤니티 디자인을 하다』(공저)가 있다.

 

 

 

 

 

 

 

 

 

 

 

 

 

 

 

'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0) 2012.10.02
밥상머리의 작은기적  (0) 2012.09.28
청춘아 너만의 꿈의 지도를 그려라  (0) 2012.09.26
멀티플라이어  (0) 2012.09.25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8가지 비밀  (0) 2012.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