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권영구 2012. 10. 2. 09:33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지그문트 바우만 ,조은평 / 동녘
근대성에 대한 오랜 천착으로 잘 알려진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 저자는 편지글 형식으로 ...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문명 속에서 근대인은 자리 잡지 못한 채 점점 유동적이고 유연한 존재가 되어 간다. 과거 모든 것이 확실하고 견고하던 시절에 비교해서 오늘날 확실한 것은 없는 듯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직장도 주거 환경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술은 따라가기가 힘들게 새로워지고 있으며 확실한 지식 체계도 없다. 우리는 ‘유연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과거처럼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라는 식으로 서로에게 더 이상 충성을 맹세하지 않게 되었다. ...

 

 

◈ 원페이지북
1. 유동하는 근대
유동하는 근대에는 우리의 주변 환경과 함께 우리의 정체성도 유동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익사할지도 모른다는 위협감을 느끼고 있다. 과거 모든 것이 확실하고 견고하던 시절에 비교해서 오늘날 확실한 것은 없는 듯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안정적인 직장도 주거 환경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기술은 따라가기가 힘들게 새로워지고 있으며 확실한 지식 체계도 없다. 우리는 ‘유연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발맞추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이런 세계 속에서 우리는 혼자서 지낼 수 있는 기술을 배울 기회조차 가져보지 못한 게 사실이다. 트위터나, 카카오톡, 페이스북에 접속해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대화에서 빠져나오기도 하면서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누군가를, 자유자재로 접속을 차단하거나 추가할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나 또한 누군가에게 자유자재로 차단될 수 있고 폐기 처분 될 수 있다. 이렇게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편하고 쉬운 일이다. 어떠한 위험성도 없는 듯 느껴진다. 우리는 과거처럼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라는 식으로 서로에게 더 이상 충성을 맹세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신중하게 조사하고 의미를 탐구하는 일에 서툴다. 네이버 검색창에는 모든 지식이 망라되어 있고 인간 관계도 인터넷이라는 가상 세계에서 충분히 맺을 수 있다. 가상 세계에는 오프라인 생활에서 출몰하는 여러 모순과 충돌이 없다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하다. 맑스 베버의 말처럼 근대는 ‘가벼운 외투’ 같은 시대이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이때 매번 새로운 정체성을 마련해야 한다는 중압감도 있다. 이제 우리의 정체성은 언제든 처분가능한 것이 된 것이다. 확고한 정체성이 아니라 유동하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이다. 고정된 하나의 자기 정체성을 처분한다는 것은 어쩌면 자기를 부정하거나 부인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근대의 인간은 냉소주의에 빠져들기도 쉬워진다. 이들은 인간 관계 중에서 가장 긴밀하고 유대적인 관계인 사랑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과거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불확실하고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이렇게 소모적으로 사랑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인터넷으로 인스턴트 만남도 가능한 시대가 된 것이다.


2. 자기를 상실한 시대
이제 더 이상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구분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공적인 정보가 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우리는 비밀을 상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가장 나다운 것, 내밀한 것까지 빼앗겨 버린 시대에 우리는 더 무력해져간다. 유명 연예인이나 공인들도 텔레비전 프로에 나와서 자기 집을 공개하기도 하고 심지어 침실까지 공개한다. 사적인 영역까지 노출될 것을 대비해 철저하게 꾸며야 한다. 이제 정말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은 없는 듯하다. 인간의 고독하고 사유할 권리까지 빼앗긴 느낌이다. 휴대 전화의 발명으로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은 더욱 경계가 없어졌다. 집에서도 회사의 상사의 연락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쉴 공간도 외로울 틈도 없는 듯 보인다. 우리는 휴대 전화를 사용하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계속 일도 할 수 있고 멀리 떨어진 사람과도 우리 마음대로 연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그만큼 통제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용카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만 동시에 자유를 침해하거나 억압한다. 느닷없이 성인이 된 아이들은 신용카드 덕분에 무엇인가를 구입하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덕분에 많은 빚을 지닌 채 살아간다. 결국 그 빚을 갚기 위해 그들은 또 다른 신용카드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악순환은 끝나지 않는다. 신용카드는 부모 대신 그 물건을 사주는데 아직 반은 아이이고 반은 성인인 젊은이들은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한다. 신용카드를 통해서 얻은 자유는 새로운 구속으로 그들을 서서히 잠식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구입한 물건은 아이의 정체성을 구성하며 아이와 하나가 된다. 이제 인간은 물건과 일체가 되는 것이다. 물건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인 것이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것이 구분이 안 되듯이 외부와 내부, 물건과 나, 주체와 대상 사이에 구분이 사라져 버린 시대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유동하는 근대이다.


3. 불안한 미래
불확실한 시대에 자본주의는 인간의 불안까지 자본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불안정하다. 알지 못하기에 그렇고 모든 것이 유동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주변 환경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회사에 동료들 얼굴도 쉽게 바뀌어 버린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우리의 이러한 불안감을 잠재적인 자본으로 이용한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수요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불안 심리’를 조장하고 확산시키는 것이다. 생태 위기와 건강, 경제 위기, 테러 등의 위협으로부터 전 세계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유일한 대응이란 보험과 CCTV와 같은 것들을 장착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안전에 대한 수요의 대표적인 예인 보험 시장은 경제 위기에도 불구하고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람들의 불안이라는 심리를 이용해서 다시 자본주의는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여러 생태적, 경제적, 테러에 대한 불안 등을 조장하면서 또 그것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는데 위험이나 불안을 통해 자본주의는 계속 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 제약 회사들은 속쓰림이나, 생리통도 질병으로 규정해서 그에 해당하는 약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속쓰림은 ‘역류성 식도염’이라 부르고 수줍음은 ‘불안장애’로 부르면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이나 공포감을 조장한다. 신종플루에 대한 공포감 조장은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종플루나 끔찍한 범죄 등의 사건 사고보다 감기나 교통사고, 암 등으로 죽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소아마비 백신처럼 발견하고 무상으로 그 약을 처방했던 예도 있지만 많은 제약 회사들은 아직도 대부분의 질병에 대한 약에 특허를 내서 비싼 값을 매기고 있는 실정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치료비나 약값이 없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이익을 위해 이러한 일들을 끊임없이 일으킨다면 인류의 최소한의 윤리는 땅으로 추락할 것이다. 인간의 건강이나 수명이 지역마다 계급마다 불평등한 이유는 자본주의의 지칠 줄 모르는 이윤 추구의 논리 때문이다.




◈ 서평
스마트폰 시대
유동하는 근대는 이제 모든 사회적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한다.

우리는 스마트폰 노예다. 가족과 함께 있어도, 카페에서 연인과 함께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 갈 때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온라인상에서 누군가와 끊임없이 메시지를 주고받고 인터넷 서핑을 한다. 친구를 만나서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우리는 도대체 왜 만난 것일까? 트위터 팔로어가 늘어날수록 한편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은 왜일까? 실제 흐르는 시간과 같은 시간을 일컫는 실시간(實時間)은, 이런 의미에서 실시간(失時間)인지도 모르겠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한겨레 21, 2012. 8. 27)

유동하는 근대란 불확실한 시대를 말한다. 우리에게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다. 무엇이든지 일회용이다. 사랑도 일도, 우정도 말이다. 이제 부모님 장례식에 관 들어줄 친구가 없어 여러 가지 상조에 가입해야 하고 심지어 요즘엔 결혼식 하객도 아르바이트를 쓴다고 한다.

푸코가 말한 파놉티콘 일망감시도 유동하는 근대에는 들어맞지 않는다. 유동하는 근대에는 그런 감시 체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건 이미 낡은 방식이다. 요즘 회사에서는 오히려 회사를 철수한다거나 고용을 철회하겠다는 위협을 통해서 감시가 이루어진다. 이 방법이 노력도 시간도 덜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메카니즘의 문제는 모든 문제, 즉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든지 유지하는 책무를 완전히 지배받는 쪽에만 전가시킨다는 것이다. '너'가 일을 잘 못해서, '너'가 능력이 부족해서 라는 얘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응하지 못한다. 회사에서 해고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나없이 자기 능력을 개발시키려고 새벽 영어반부터 회사 끝나고도 무엇인가를 배우러가기 바쁘다. 이렇게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나면 사회적인 책임은 사라지고 만다. 개인과 사회는 상호 보완하면서 존재하는 것이다. 유동하는 근대에 부유하는(떠다니는) 개인들에게 사회는 삶의 터전이자 일부로서 개인들을 보호하고 돌볼 의무가 있다. 


 

◈ 저자소개
지그문트 바우만 - 유동하는 근대를 고민하는 사회학자
폴란드 출신 사회학자. 1925년 폴란드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가 소련군이 지휘하는 폴란드 의용군에 가담해 바르샤바로 귀환했다. 폴란드사회과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후에 바르샤바대학교에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1954년에 바르샤바대학교의 교수가 되었고 철학자 레셰크 코와코프스키 등과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