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해충박멸 전문업체 C사의 인사팀을 담당하는 김상무는 요즘 직원들 때문에 몇 달 째 끙끙대고 있다. 바퀴벌레며 모기며 온갖 험악한 해충을 잡는 일이라 그런지 직원들 분위기도 군대처럼 험하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비속어는 예사고, 현장에 나가서도 어찌나 불친절하게 행동했는지 고객들의 항의 전화가 일주일에 수십 통이나 올 정도다. 그 동안 인사팀에서는 회사 전체의 분위기를 개선하고자 평가 시스템도 바꿔보고 채용 면접도 강화해 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총무팀 박상무가 작은 아이디어를 하나 냈는데, 그것을 실천해 봤더니 한 달도 채 안되어 직원들의 태도가 확 달라진 것 아닌가? 대체 박상무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을까?
<해법>
조직의 변화 혁신을 시도하고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어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무덤덤한 직원들에게 가로막히기만 한다면? 맥킨지(McKinasey Quarterly)에서 전 세계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대부분의 기업들은 지금보다 더 위대한 기업이 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제 시간에, 처음에 목표했던 것만큼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단 4%에 불과했다. 게다가 직원들의 적극적 참여 없이는 대부분의 변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89%). 그렇다면 직원들의 참여를 쉽게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딜레마 속 상황은 실제 해충박멸 전문업체 세스코에서 있었던 일. 초기에 세스코는 해충박멸업의 특성상 더럽고 험하다는 인식이 강해 조직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해결한 것은 아주 간단하게도 제복 하나였다. 마치 경찰제복 같이 깔끔하고 전문적인 인상을 주는 블루톤 제복을 맞췄더니, 그 옷을 입고 일하는 직원들이 스스로를 해충박멸 전문가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말투도 행동도 자연스럽게 전문가답게 달라졌다.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도 확연히 개선됐다. 평가, 채용 등 제도를 통해 직원들의 행동방식을 바꾸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던 변화가 제복 하나로 쉽게 이뤄진 것이다.
이처럼 아주 작은 환경의 변화만으로도 사람들의 행동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카이저 사우스’ 병원에서는 한 해에 250번 정도 발생하는 간호사들의 투약 실수로 인해 의료 사고가 빈번했다. 의료사고는 확률상 1000분의 1 수준으로 발생했지만, 이는 환자의 생명이 걸린 심각한 문제였다. 투약 실수가 발생하는 원인을 살펴보니, 업무 중 간호사들의 집중력이 문제였다. 투약하고 있을 때에도 의사나 수간호사가 지나가면서 말을 걸거나 업무 지시를 하다 보니 까딱 잘못하는 사이에 간호사의 집중력이 흩어져 실수가 일어나는 것이었다. 해결책으로 카이저 사우스 병원은 간호사들의 업무 환경에 변화를 주었다. 투약을 할 때마다 간호사복 위에 눈에 잘 띄는 노란색 조끼를 의무적으로 입힌 것이다. 조끼에는 “나 지금 투약 중이니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있었다. 그 결과, 조끼를 입고 있는 간호사에게는 업무 지시를 하지 않았고, 결국 반 년 만에 투약 실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
2000년대 초반, 세계적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는 무분별한 사세 확장 및 패스트푸드에 대한 여론의 비난 등으로 경영실적이 쭉 떨어져 큰 위기를 겪었다. CEO인 레이 크록은 임원들에게 자리에만 앉아있지 말고 나가서 발로 뛰며 현장을 들여다보고 아이디어도 얻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임원들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지시만 내리고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맥도날드는 고민 끝에 의자를 바꿨다. 그동안 임원들이 써왔던 푹신한 의자 대신 등받이가 없어 한 시간 이상 앉기 힘든 불편한 의자로 바꾸어버린 것. 놀랍게도 의자를 바꾼 후 임원들은 스스로 현장에 나가 사람도 만나고 정보도 얻게 됐다. 그 결과 런치세트 등 수많은 개선 아이디어가 나왔고, 실적부진 문제도 곧 해결했다.
사람들은 인간의 의지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자. 대신, 변화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조직의 변화를 가장 확실하게 하는 쉽고 빠른 방법이다.
변화 속도 높이려면? 임원진 먼저 참여시키고 일정 빡빡하게 관리
조직변화를 주도했던 임원들에게 가장 후회되는 점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한결같이 “변화의 속도를 높였어야 했다”라고 대답한다. 그렇다면 변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조직 변화관리 전문가인 로버트 마일스(Robert H. Miles) Corporate Transformation Resource 회장이 짚은 네 가지 포인트를 잊지 말자.
1. 임원진이 먼저다! 현실을 인지시켜라 보수적인 기업 문화에서는 변화를 주도하려는 시도를 꺼린다. 우선 임원부터 한 명도 빠짐없이 변화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시켜야 한다. 임원들이 인지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변화를 시도해도 이내 예전의 방법대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제 3자를 대동해 현재 기업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의견을 받도록 하자.
2. 기존 업무 때문에 곤란? 빡빡하게 일정을 관리하라 임원들은 이미 일상 업무에 역량을 최대한 쏟고 있기에 ‘변화’라는 새로운 임무를 이끌어나갈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기존 업무와는 별개로, 짧은 기간 동안 빡빡하게 변화 일정을 관리해야 한다. 준비과정부터, 업무 프로세스를 갖추고 미팅과 사전작업을 짧은 시간에 끝내도록 한다.
3. 계획이 자꾸 정체된다면? 업무성과를 눈에 보이게 하라 성공한 일에는 누구나 이름을 올리고 싶어하지만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일에서는 빠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대개는 변화를 주도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계획이 자꾸 미뤄진다. 6시그마, 비주얼플래닝 등을 통해 성과를 보이게 하라. 이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업무인지 우선순위를 매겨 전사적으로 공유하면 더 효과적이다.
4. 느릿느릿하면 효과없다! 전사에 빠르게 공유하라 윗 선에서는 변화를 시도하더라도 조직 전체에 그 생각이 바로 퍼져나가지 못한다면 직원들이 변화에 동참할 수 있을까? 변화에 대한 기업의 방향이 장기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되는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다. 빠르게 생각을 공유해 조직 전체에 변화의 물결이 퍼지게 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빠른 공유가 직원들의 변화를 이끈다. |
문달주 IGM교수, 오지영 IGM주임연구원
* 위 칼럼은 조선일보 2011년 12월 08일자에 전문이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