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시나리오 개발? 셸처럼 5단계 거쳐라! | |
시나리오 씽킹하라 <2편> 로열 더치 셸 사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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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투자의 불확실성이 큰 석유산업 셸 그룹이 왜 최초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채택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석유, 에너지 산업의 특징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투자 규모와 긴 투자 기간을 고려할 때 에너지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아닌 사업 환경의 불연속성이다. 석유 산업의 경우 시추 플랫폼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석유 또는 천연가스의 매장 여부를 확인하는 데 수년, 경제성이 확인되면 건설 계획을 세우는 데 수년, 실제적인 건설 기간 수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 한번의 투자 결정이 시추 플랫폼의 운영 기간까지 고려하면 수십 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 투자 일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고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유가가 폭락하면 말 그대로 수억, 수십억 달러의 투자비를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석유산업의 특성 속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벌어진 세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셸 그룹은 처음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민감성의 가치를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재무적 자료에 바탕을 둔 확률적인 평가 방식의 기획은 한계를 드러내게 되면서, 본사 기획부서 중심의 매출액 추정에 의존하던 기획방식에서 벗어나 현업 실무진의 밑으로부터의 기획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실무 부서와 분리되었던 기획 업무에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의 의견이 반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목표관리(MBO)로 발전하게 되지만 여전히 내부 정보에만 의존하고 외부로부터의 정보는 거의 반영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UPM이라는 최신 기법을 동원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결과가 시기가 급변할 때, 그래서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할 때면 언제나 틀렸다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셸 그룹의 예측에 기반한 계획법의 실패 횟수가 잦아지면서, 좀 더 탄력적인 개념으로서의 시나리오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셸 그룹에 시나리오 기법을 도입한 피에르 왁은 예측 가능한 것과 불확실한 것을 구분하는 접근법을 취하였다. 예측 가능한 요소 즉 트렌드와 같은 선결변수(predetermineds)는 똑같이 모든 시나리오에 반영되고 반면 불확실한 요소는 여러 시나리오에서 다르게 쓰인다는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초기의 시나리오는 모든 사람이 예측할 수 없다고 보는 것들은 예측하지 않은 채 계획을 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초 시나리오 기획에서 가장 주된 항목은 석유가격이었다. 셸 그룹의 시나리오 플래닝 팀은 석유가격에 관해 예측 가능한 것과 불확실한 것을 구분하여 사업 환경의 동인과 전후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는 석유가격을 결정하는 것, 즉 전체적인 수급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는 싼 가격의 석유가 무한정 공급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는데 셸 그룹 시나리오 팀은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석유 생산국이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공급을 통제하는 상황을 설정한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1973년 석유 파동이 실제로 일어나자, 시나리오 플래닝이 기업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예측으로는 할 수 없었던 사고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1973년 10월 중동지역의 사태를 접하고 셸 그룹은 위기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으로 판단하고 재빨리 투자를 변경할 수 있었다. 업계가 진짜 근본적인 뭔가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수년이 걸린 데 반해, 셸 그룹은 석유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를 기초 설비의 확장에서 정유 제품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옮겼다. 관성에 젖은 정유 업계들은 정제 설비의 과잉으로 수익이 악화되는 참혹한 결과를 맞아야 했다. 그러나 셸 그룹은 초기부터 새로운 정책에 적응함으로써 과잉 설비로 인한 고통을 덜 받았으며, 장기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업체들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셸 그룹은 격변기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위기를 극복하고 7대 석유 메이저 기업의 막내에서 둘째로 도약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성과를 통하여 시나리오 플래닝은 셸 그룹의 구성원들에게 현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고의 확장, 정신 모델의 변경을 가져다 주었다. 셸 그룹은 예전에 사용하던 예측 기법보다 시나리오 기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생각해본 “미래에 대한 기억”은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주변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여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즉, 만일 어떤 기획이 시나리오 ‘갑’ 상황에서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 ‘을’ 상황에서는 성과가 형편없을 경우, 해당 기획이 거부되거나 보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획 담당자는 비록 시나리오 ‘갑’ 상황하에서 성과가 감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나리오 ‘을’ 상황에서 성과가 개선되도록 기획을 수정하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 이 기획은 좀더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와 같이 시나리오 플래닝은 셸 그룹의 의사결정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한발 더 나아가 셸 그룹은 시나리오를 조직문화를 바꾸는 리더십 도구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셸 그룹 경영진은 회사 구성원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태도가 너무 방어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바꾸기 위하여 시나리오를 이용하였다. 그 결과 1989년에 작성된 시나리오들 중 환경 요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그려 놓았다. 이로 인해 환경 문제는 기획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되었고 구성원들의 환경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은 셸 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셸 그룹의 독특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셸 그룹은 원래 네덜란드 회사인 로열 더치 석유회사(Royal Dutch Petroleum, 60%의 지분)와 영국 회사인 셸 무역운송 회사(Shell Transport and Trading Company, 40%의 지분) 간의 ‘신사 협정’으로 생겨난 지극히 다문화적인 기업이다. 이 두 개의 다른 모회사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 상호 연계되어 있고, 서로 다른 법체계(성문법, 불문법)를 가진 두 나라에 따로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회사에서 분쟁이 생길 경우 조정할 법정이 없기 때문에 두 모기업들은 서로 잘 협조해야만 한다. 두 회사의 전체 이사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며 이 회의를 “컨퍼런스(Conference)”라고 한다. 이 회의에서는 양측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으며 양 회사의 최고 경영자들은 양측의 합의된 결정들을 법제화하기 위해 각자 별도의 회의를 열어야 한다. 또한 셸 그룹은 내부에 갈등을 해결하는 전통적인 장치가 없다. CEO도 없으며 중역회의(CMD: Committee of Managing Directors)의 의장은 동료들 중의 제1인자가 맡는다. 중요 결정들은 중역회의의 구성원들과 두 이사회 이사들이 모두 받아들이는 안들로 채택해야 한다. 실제로 항상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결정 기준은 외견상 만장일치 방식인 ‘합의에 의한 관리’라는 독특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대화와 합의에 의한 의사 결정 방식은 시나리오라는 틀을 통하여 사고를 확장하고 의사 결정의 정신 모델을 바꾸는 방식과 잘 맞는, 시너지 효과를 내는 조합이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셸 그룹은 어떻게 시나리오를 개발할까? 셸의 시나리오 작성은 다섯 단계가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으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나리오 작성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시나리오 작성 과정은 하나의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관점의 의견이 드러나도록 하고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자리 잡도록 디자인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첫 단계는 준비(Preparation) 단계로 시나리오 작성 프로젝트의 목적과 활용 자원을 명확히 하고 프로젝트 팀을 꾸리는 단계이다. 프로젝트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질문이나 주제에 맞게 팀의 역할과 일정, 조사 우선 순위를 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인터뷰에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두 번째는 탐색(Pioneering) 단계로 다양한 분야와 관점의 전문가로 팀을 구성하여 기존의 가정을 검토해보고 빠진 분야가 없는지 점검하면서 이전 인터뷰에서 제기된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이 단계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확실한 요소들과 불확실한 요소들을 분리, 탐구하고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얼개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주로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교환하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이 된다. 세 번째는 지도 작성(Map-making) 단계로 잘 짜인 이야기 세트인 실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단계이다. 시나리오는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구성하여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너무 세세한 사항을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미래에 대한 생생한 개념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시나리오는 어떻게 대응하라는 지시가 아닌 가능한 미래의 이미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성 있는 사건과 이것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다이나믹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 단계가 실질적인 시나리오 작성의 마지막 단계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후 시나리오 설명회나 워크숍 등을 통하여 셸의 전 조직에 전달되게 된다. 네 번째는 네비게이션(Navigation) 단계. 작성된 시나리오를 현업에서 활용하는 단계이다. 지속적으로 조직이 직면한 가정을 점검하고, 복잡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가면서 사업 계획과 전략 수립 등에 활용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글로벌 시나리오에서 다루지 못한 국가나 사업 전략 단위의 집중화된 시나리오가 작성되기도 한다.
아무도 미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성공 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 40여 년 동안 시나리오 방법을 사용하면서 개발해온 셸의 기본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셸의 사례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시나리오 방법은 미래에 대한 좀더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이며, 잠재적 가능성의 미래와 실재적 선택의 현재를 이어주는 전략적 대화(strategic conversation)의 도구이며, 잠재적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미래에 대한 정신적 지도(mental map)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그 유용성이 크다 할 것이다.
<이명호 iODC (변화경영연구원) 대표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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