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막막한 시나리오 개발? 셸처럼 5단계 거쳐라!

권영구 2011. 11. 30. 08:56

막막한 시나리오 개발? 셸처럼 5단계 거쳐라!
시나리오 씽킹하라 <2편> 로열 더치 셸 사례


지난 시나리오 씽킹 <1편>의 글에서는 시나리오의 의미와 시나리오 플래닝의 개념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번 <2편>에서는 1970년대 석유위기를 미리 대비하여 세계 7대 석유회사의 막내에서 2번째로 도약한 로열 더치 셸이 40여년 동안 기업 환경에 적용하면서 발전시켜온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에 대하여 알아보자. <편집자주>

장기 투자의 불확실성이 큰 석유산업
셸 그룹은 에너지 및 석유화학 회사들로 구성된 글로벌 그룹으로 본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다. 셸 그룹의 모회사는 로열 더치 셸 (Royal Dutch Shell plc)로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적을 두고 있는 유한회사이다.

셸 그룹이 왜 최초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중요한 전략적 도구로 채택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석유, 에너지 산업의 특징에 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대규모 투자 규모와 긴 투자 기간을 고려할 때 에너지 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다름아닌 사업 환경의 불연속성이다.

석유 산업의 경우 시추 플랫폼 하나를 짓기 위해서는 석유 또는 천연가스의 매장 여부를 확인하는 데 수년, 경제성이 확인되면 건설 계획을 세우는 데 수년, 실제적인 건설 기간 수년이 걸리는 장기적인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 한번의 투자 결정이 시추 플랫폼의 운영 기간까지 고려하면 수십 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 투자 일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게 되고 잘못된 투자 결정을 내리거나 유가가 폭락하면 말 그대로 수억, 수십억 달러의 투자비를 회수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석유산업의 특성 속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벌어진 세 번의 위기를 거치면서 셸 그룹은 처음으로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민감성의 가치를 이해하게 됐다.


70년대 석유파동을 극복한 셸의 시나리오 플래닝
기업들이 미래를 체계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최초의 시도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래를 예측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일련의 방법들이 기획(planning)이라는 이름 하에 개발되었다. 이러한 예측을 통해 불확실성을 줄여보려는 작업은 주로 숙련된 전문가들, 특히 재무부서나 회계부서의 몫이었다.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를 바탕으로 내년에 회사가 얼마의 이익을 낼 것인지 손실을 볼 것인지를 산정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이르러 재무적 자료에 바탕을 둔 확률적인 평가 방식의 기획은 한계를 드러내게 되면서, 본사 기획부서 중심의 매출액 추정에 의존하던 기획방식에서 벗어나 현업 실무진의 밑으로부터의 기획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실무 부서와 분리되었던 기획 업무에 실제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진들의 의견이 반영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목표관리(MBO)로 발전하게 되지만 여전히 내부 정보에만 의존하고 외부로부터의 정보는 거의 반영이 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 셸 그룹도 이와 같은 예측기법들을 발전시키면서 1967년에 재무예측 시스템의 최신 기법들을 총망라한 ‘통합기획장치(UPM: Unified Planning Machinary)’ 라는 전문화된 기획 방법을 확립하였다. UPM은 미래 사업활동에 대한 추정치를 매년 제시하고 그룹 전체는 이러한 추정치에 기초해서 투자계획을 결정하고 집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UPM이라는 최신 기법을 동원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얻어낸 결과가 시기가 급변할 때, 그래서 미래를 예상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등장할 때면 언제나 틀렸다는 것이다. 1960년대 중반 셸 그룹의 예측에 기반한 계획법의 실패 횟수가 잦아지면서, 좀 더 탄력적인 개념으로서의 시나리오에 대한 관심이 생겨났다. 셸 그룹에 시나리오 기법을 도입한 피에르 왁은 예측 가능한 것과 불확실한 것을 구분하는 접근법을 취하였다. 예측 가능한 요소 즉 트렌드와 같은 선결변수(predetermineds)는 똑같이 모든 시나리오에 반영되고 반면 불확실한 요소는 여러 시나리오에서 다르게 쓰인다는 개념을 정립한 것이다. 초기의 시나리오는 모든 사람이 예측할 수 없다고 보는 것들은 예측하지 않은 채 계획을 하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초 시나리오 기획에서 가장 주된 항목은 석유가격이었다. 셸 그룹의 시나리오 플래닝 팀은 석유가격에 관해 예측 가능한 것과 불확실한 것을 구분하여 사업 환경의 동인과 전후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이는 석유가격을 결정하는 것, 즉 전체적인 수급 문제를 점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에는 싼 가격의 석유가 무한정 공급될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하였는데 셸 그룹 시나리오 팀은 이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석유 생산국이 생산량을 늘리지 않고 공급을 통제하는 상황을 설정한 위기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1973년 석유 파동이 실제로 일어나자, 시나리오 플래닝이 기업으로 하여금 전통적인 예측으로는 할 수 없었던 사고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1973년 10월 중동지역의 사태를 접하고 셸 그룹은 위기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것으로 판단하고 재빨리 투자를 변경할 수 있었다. 업계가 진짜 근본적인 뭔가가 벌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수년이 걸린 데 반해, 셸 그룹은 석유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를 기초 설비의 확장에서 정유 제품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옮겼다. 관성에 젖은 정유 업계들은 정제 설비의 과잉으로 수익이 악화되는 참혹한 결과를 맞아야 했다. 그러나 셸 그룹은 초기부터 새로운 정책에 적응함으로써 과잉 설비로 인한 고통을 덜 받았으며, 장기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업체들보다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셸 그룹은 격변기였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의 위기를 극복하고 7대 석유 메이저 기업의 막내에서 둘째로 도약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성과를 통하여 시나리오 플래닝은 셸 그룹의 구성원들에게 현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사고의 확장, 정신 모델의 변경을 가져다 주었다. 셸 그룹은 예전에 사용하던 예측 기법보다 시나리오 기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생각하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미리 생각해본 “미래에 대한 기억”은 계획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주변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하여 대응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것도 알게 된다.


셸 그룹의 조직문화 혁신을 불러오다
1980년대 초에 들어서면서 셸 그룹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역할을 더욱 확대하여 제안 단계에서 주요 기획에 대한 타당성을 여러 시나리오 상황 아래에서 검증하도록 하였다. 해당 기획에 대한 단선적인 환경 예측 아래 예산이 정당화되곤 했던 통상적인 절차가 바뀐 것이다. 이는 의사결정 방식과 경영진들을 포함한 구성원들의 사고 모델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가져왔다.

즉, 만일 어떤 기획이 시나리오 ‘갑’ 상황에서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시나리오 ‘을’ 상황에서는 성과가 형편없을 경우, 해당 기획이 거부되거나 보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획 담당자는 비록 시나리오 ‘갑’ 상황하에서 성과가 감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시나리오 ‘을’ 상황에서 성과가 개선되도록 기획을 수정하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 이 기획은 좀더 다양한 상황 속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와 같이 시나리오 플래닝은 셸 그룹의 의사결정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한발 더 나아가 셸 그룹은 시나리오를 조직문화를 바꾸는 리더십 도구로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셸 그룹 경영진은 회사 구성원들이 환경 문제에 대한 태도가 너무 방어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를 바꾸기 위하여 시나리오를 이용하였다. 그 결과 1989년에 작성된 시나리오들 중 환경 요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한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그려 놓았다. 이로 인해 환경 문제는 기획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되었고 구성원들의 환경에 대한 태도가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은 셸 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셸 그룹의 독특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셸 그룹은 원래 네덜란드 회사인 로열 더치 석유회사(Royal Dutch Petroleum, 60%의 지분)와 영국 회사인 셸 무역운송 회사(Shell Transport and Trading Company, 40%의 지분) 간의 ‘신사 협정’으로 생겨난 지극히 다문화적인 기업이다. 이 두 개의 다른 모회사들은 서로 독립되어 있으면서 상호 연계되어 있고, 서로 다른 법체계(성문법, 불문법)를 가진 두 나라에 따로 거주하고 있다. 따라서 이 두 회사에서 분쟁이 생길 경우 조정할 법정이 없기 때문에 두 모기업들은 서로 잘 협조해야만 한다. 두 회사의 전체 이사회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며 이 회의를 “컨퍼런스(Conference)”라고 한다. 이 회의에서는 양측에 대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않으며 양 회사의 최고 경영자들은 양측의 합의된 결정들을 법제화하기 위해 각자 별도의 회의를 열어야 한다.

또한 셸 그룹은 내부에 갈등을 해결하는 전통적인 장치가 없다. CEO도 없으며 중역회의(CMD: Committee of Managing Directors)의 의장은 동료들 중의 제1인자가 맡는다. 중요 결정들은 중역회의의 구성원들과 두 이사회 이사들이 모두 받아들이는 안들로 채택해야 한다. 실제로 항상 만장일치는 아니지만 최소한으로 요구되는 결정 기준은 외견상 만장일치 방식인 ‘합의에 의한 관리’라는 독특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대화와 합의에 의한 의사 결정 방식은 시나리오라는 틀을 통하여 사고를 확장하고 의사 결정의 정신 모델을 바꾸는 방식과 잘 맞는, 시너지 효과를 내는 조합이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셸 그룹은 어떻게 시나리오를 개발할까?
셸 그룹의 시나리오 개발 과정에 대한 것은 셸 그룹에서 2008년에 발간한 “시나리오: 탐색 가이드 (Scenarios: An Explorer’s Guide)”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자료는 셸 그룹이 2005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글로벌 시나리오 사례를 발표한 이후 셸의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셸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에 대해 공식적으로 설명한 소책자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료는 셸에서 1999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 진행한 글로벌 시나리오 “사람들과 연결: 2020년 글로벌 시나리오 (People and connections: Global Scenarios to 2020)” 작성 프로젝트를 예로 들면서 시나리오 작성 방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년 넘게 수 십 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어 20년 앞을 내다본 글로벌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그룹 차원의 프로젝트였다. 셸 그룹이 시나리오를 비즈니스에 적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세가지 수준에서 이루어 지는데 그 첫 수준이 글로벌 차원의 전략이나 일반적인 트렌드를 기술하기 위한 글로벌 시나리오(Global Scenarios) 작성단계이며, 둘째 수준이 개별 국가나 사업 전략수준의 관점에서 작성하는 집중화된 시나리오(Focused Scenarios), 마지막으로 리얼 옵션(Real Option) 방법과 함께 투자 결정 수준에서 작성하는 프로젝트 시나리오 (Project Scenarios)이다.

셸의 시나리오 작성은 다섯 단계가 순환적으로 반복되는 과정으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나리오 작성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시나리오 작성 과정은 하나의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폭넓고 다양한 관점의 의견이 드러나도록 하고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자리 잡도록 디자인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첫 단계는 준비(Preparation) 단계로 시나리오 작성 프로젝트의 목적과 활용 자원을 명확히 하고 프로젝트 팀을 꾸리는 단계이다. 프로젝트에서 규명하고자 하는 질문이나 주제에 맞게 팀의 역할과 일정, 조사 우선 순위를 정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인터뷰에서부터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두 번째는 탐색(Pioneering) 단계로 다양한 분야와 관점의 전문가로 팀을 구성하여 기존의 가정을 검토해보고 빠진 분야가 없는지 점검하면서 이전 인터뷰에서 제기된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이 단계는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확실한 요소들과 불확실한 요소들을 분리, 탐구하고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얼개를 구성하는 과정이다. 주로 다양한 관점의 의견을 교환하는 워크숍 형태로 진행이 된다.

세 번째는 지도 작성(Map-making) 단계로 잘 짜인 이야기 세트인 실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단계이다. 시나리오는 창조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구성하여 독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는 너무 세세한 사항을 포함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미래에 대한 생생한 개념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시나리오는 어떻게 대응하라는 지시가 아닌 가능한 미래의 이미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성 있는 사건과 이것이 사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다이나믹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 단계가 실질적인 시나리오 작성의 마지막 단계로 작성된 시나리오는 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후 시나리오 설명회나 워크숍 등을 통하여 셸의 전 조직에 전달되게 된다.

네 번째는 네비게이션(Navigation) 단계. 작성된 시나리오를 현업에서 활용하는 단계이다. 지속적으로 조직이 직면한 가정을 점검하고, 복잡한 이슈에 대한 이해를 높여나가면서 사업 계획과 전략 수립 등에 활용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글로벌 시나리오에서 다루지 못한 국가나 사업 전략 단위의 집중화된 시나리오가 작성되기도 한다.

다섯 번째는 정탐(Reconnaissance) 단계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주변 환경을 관찰하고, 사건이나 트렌드의 함축적 의미를 해석하면서 올바른 대응을 해나가는 단계이다. 이 단계가 실질적으로 시나리오의 가치가 드러나는 단계로 시나리오는 단지 미래에 대한 정보나 이미지를 전달하는 단계를 넘어 현재를 올바로 해석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기억(memory of the future)’, 정신적 모델(mental model)로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시작 단계로 돌아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바뀐 상황을 다시 검토하면서 주기적으로 새롭게 시나리오 작성을 시작하는,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아무도 미지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성공 가능성을 높이자는 것이 40여 년 동안 시나리오 방법을 사용하면서 개발해온 셸의 기본 의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셸의 사례에서 살펴본 봐와 같이 시나리오 방법은 미래에 대한 좀더 성공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도구이며, 잠재적 가능성의 미래와 실재적 선택의 현재를 이어주는 전략적 대화(strategic conversation)의 도구이며, 잠재적 가능성을 염두에 둔 미래에 대한 정신적 지도(mental map)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그 유용성이 크다 할 것이다.

 

<이명호 iODC (변화경영연구원) 대표 컨설턴트>

이명호는…


연세대학교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KAIST IT MBA, KAIST 경영과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삼성SDS America에서 시니어 컨설턴트,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사장, 충남도립청양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 iODC (변화경영연구원)에서 조직개발과 전략, 특히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교육과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