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아이디어 훔치기에 적극 나서라?

권영구 2011. 9. 30. 15:00

아이디어 훔치기에 적극 나서라?
개념화 사고법으로 창조하는 법

창조적 기업일수록 모방한다?
창조적 기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기업 애플이 자사의 노트북 맥북 프로를 소개했을 때가 기억난다.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노트북의 자랑스러운 기능 중 하나라면서 맥세이프라는 파워케이블을 소개했다. 컴퓨터의 빠른 속도나 선명한 화면이 아닌 파워케이블이 뭐 그리 대단할까 싶었는데, 설명을 들은 관객은 환호와 함께 박수로 응답했다. 맥북 프로의 파워케이블의 끝은 자석으로 만들어져 있어 찰칵 붙었다가 살짝 잡아당기면 금새 떨어진다. 노트북이 워낙 가벼운지라, 충전 중에 파워케이블을 건드리면 노트북이 떨어져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애플의 팬들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역시 애플’이라며 칭찬할 만 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파워케이블이 이미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일본 전기밥솥의 파워케이블과 같은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천하의 애플이 남의 아이디어를 베껴서야 되겠느냐고 비난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특유의 당당함으로 이렇게 되받아 쳤다. “우리 직원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훔치는 데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

사실, 모방은 창조성이 특히 강조되는 예술계에서 가장 빈번이 일어난다. 예술가들은 공공연하게 다른 연주자나 작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달리 표현하면 그들의 작품을 모방하고 흉내내면서 작품활동을 했다는 말이다. 이처럼 창조는 필연적으로 모방을 통해 시작된다. 창조적 조직을 만드는 것이 많은 기업의 화두가 된 요즘, 창조성을 강조하는 기업일 수록 남의 아이디어를 모방하는 일에 더욱 열심이다. 그런데, 창조적 모방과 뻔뻔한 표절 사이의 경계는 과연 무엇일까? 단지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통해  ‘창조적으로 아이디어를 훔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과제 개념화를 활용하면 아이디어 쏟아진다
만약 은행이 서비스 개선을 위해 호텔을 벤치마킹한다고 하면? 얼핏 무슨 ‘허튼 짓’인가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분명 실효성이 높은 일일 수 있다. 미국 오레곤에 위치한 엄콰은행은 만년적자를 면치 못하는 지방은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객만족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그리고, 직원 상당수를 메리어트 호텔로 보내 호텔의 고객서비스 노력을 벤치마킹했다.  엄콰은행은 전당포 느낌이 나던 창구의 인테리어를 바꿨고 직원들은 인사법도 다시 익혔다. 이를 통해 엄콰은행은 2009년 매출액 3.9억불의 거대 은행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상식을 뛰어넘는 전방위적 모방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창의적 모방의 과정에 ‘개념화’라는 의식적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에게 알파벳 대문자의 첫 글자 A를 보여주고 다음에 올 것을 연상하라면 흔히 B 또는 a를 연상한다. 그런데, ‘첫 글자’라는 개념만 알려주면 사람들은 한글의 ㄱ(기역)이나 숫자 1, 심지어 월요일을 연상하기도 한다. 정보가 부족할수록 상상력을 동원해 빈 공간을 채우는 우리의 뇌가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보여주는 영화보다 적당히 빈 공간이 있는 소설이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그래서, 창조적 기업들은 의도적으로 ‘개념화’사고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구한다.

개념화 사고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수년 전 일본의 한 기업이 봄철 꽃가루와 황사로 인해 고생하는 알레르기 환자를 위해 신제품을 출시했다. 이 회사는 ‘이물질 흡입을 막는 마스크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했다. 습기가 차고 대화하기 불편한 마스크를 대신할 상품의 아이디어가 궁해, 이 기업은 과제에서 몇 가지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거해 개념화시켰다. ‘이물질 흡입 방지’라는 개념만을 가지고 관련 제품과 아이디어를 폭넓게 수집했다. 방독 마스크부터 자동차 공기필터까지 다양한 상품을 조사한 후, 이 기업은 코로 들어가는 공기를 정화하는 콧구멍 필터, 노즈 핏(Nose Pit)을 출시했다. 봄만 되면 콧물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수년 전 박카스와 비타500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사실, 비타500이 나오기 전까지 소비자들은 비타민C 제품을 매번 물과 함께 챙겨먹는 일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경쟁업체는 녹여먹는 알약, 물 없이 먹는 가루약 등을 내놓은 상태였다. 비타500 개발자들은 ’약을 쉽게 먹는 방법’이라는 개념에 초점을 맞추어 조사를 했고, 물약 형태로 만들어진 박카스에 주목하게 되었다. 결국 비타500은 알약이나 가루약이 아닌 음료의 형태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비타500의 경쟁상품으로 지목되던 박카스도 1961년까지는 알약이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비타500은 박카스의 성공공식을 모방해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기업들이 창조성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창조적이라고 해서 꼭 독창적일 필요는 없다. 기업활동에 필요한 창조는 종종 모방과 응용 수준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진다. 기왕 다른 조직을 모방할 생각이면 제품 디자인이나 로고 등을 흉내내지 말고, 보다 근본적인 아이디어 차원에서 모방하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념화’ 사고훈련이 도움이 될 것이다.

<김용성 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