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 이야기

한가로운 산책시간

권영구 2011. 4. 12. 10:33

□ 한가로운 산책시간

쓰나미나 화산폭발, 지진같은 자연재난은 거의 예외없이 순식간에 들이닥칩니다. 현대과학의 힘으로 그 시간을 예측할 수는 있어도 그 정확도는 느림보 거북이보다도 하늘 나는 새들보다도 못합니다. 설사 그런 재난의의 징조를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그 엄청난 위력 앞에서 그저 멀리 도망치는 일밖에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서기 79년 8월 24일 네로 황제의 무지막지한 폭정에 베수비오산도 노한 것일까요? 사치와 환락의 도시 폼페이는 화산 폭발로 지구상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폼페이의 최후'라는 책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한 토막 나옵니다. 
그날 아침,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베수비오산을 바라보며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평소에 자기가 귀하게 여겼던 것들을 몇 가지씩 손에 쥐고 뛰기 시작합니다. 금괴, 돈, 보물, 장신구, 자식들, 여자의 손... 그러나 마그마가 밀려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그 쥐었던 것마저도 놓아버리고 살기 위해서 결사적으로 뜁니다.
그 아우성 속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지팡이 하나만 의지한 채 느릿느릿 걷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달리던 사람들이 그 태평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빈 몸이오? 그새 모두 불타버렸습니까? 더 잃을 것이 없습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오, 나는 늘 이 시간에 이 길을 산책한다오.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다 가졌기에 더 가질 것이 없다오. 당신들에게는 이 시간이 환란의 시간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한가로운 아침 산책 시간일 뿐이오"  
ⓒ최용우  

 

□ 놓친 고기가 더 크다

그물이든 낚시든 고기를 잡다보면 잡았다 싶은 고기를 놓친 때가 있다. 낚시에 걸린 고기를 잡아 올리다가 바로 눈앞에서 고기가 떨어질 때도 있고, 그물에 걸린 고기를 조심스레 그릇에 담다가 마지막 순간 손안에서 미끄러지며 물속으로 사라질 때가 있다.
다시 고기를 잡아보지만 놓친 고기는 자꾸만 생각이 난다.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고기는 본래의 것보다도 더 큰 것으로 생각이 되어 아쉬움도 커진다. 손가락만한 고기를 놓치면 손바닥만한 고기를 놓친 것 같고, 손바닥만한 고기를 놓치면 팔뚝만한 고기를 놓친 것 같고, 말뚝만한 고기를 놓치면 아이만한 고기를 놓친 것 같다.
지난날의 자랑에 빠져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지난날의 화려한 믿음을 떠올리며 자기자랑에 빠지지만 지난 시간의 믿음을 화려하게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현재의 믿음은 초라해질 뿐이다.
놓친 고기가 아무리 크면 무엇 하겠는가. 놓친 고기는 내 속을 채워주기는 커녕 더욱 허전하게 만들 뿐인 걸.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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