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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정보) 천원짜리 햄버거가 가져다 준 백만불 인생

권영구 2009. 3. 31. 09:02

천원짜리 햄버거가 가져다 준 백만불 인생

천원짜리 햄버거가 가져다 준 백만불 인생 - 이영철 사장




2000년 9월,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후문길. 작은 체구의 한 남자가 공사판 인부들이 신을 법한 허름한 장화를 신고, 리어카 한 대를 애써 끌고 나타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이 남자는 빈 공터에 리어카를 세우고 햄버거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왜소한 체격의 그에게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그의 리어카 좌판 위에는 1000원짜리 희한한 버거 몇 개가 놓여져 있었다. 직접 만든 버거였으나 이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흘끔흘끔 리어카를 쳐다본 사람들 중에는 ‘1000원짜리도 음식이냐’고 수군대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때마다 그의 얼굴은 붉어졌다.

4년 뒤인 2004년 8월. 리어카가 있던 공터 옆에는 ‘영철street버거’라는 6평짜리 가게가 들어섰다. 4년 전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워 하던 남자 이영철(37)씨가 이 가게의 사장이다.

허름한 장화를 신은 채 리어카에서 버거를 만들어 팔던 그는 연매출 5억원에 40여개 가맹점을 지닌 ‘버거 체인’ 사장이 되었다. 1000원짜리 버거로 고려대 일대에서 대성공을 거둔 ‘영철street버거’. 불과 6평짜리 버거집에서 하루 평균 2000여개의 ‘영철버거’를 팔고 있는 그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이영철 사장은 지난 2월 고려대학교에 장학금 2000만원을 기탁했다. 앞서 이 사장은 2003년 5월 고려대 4ㆍ18기념관에서 ‘길바닥에서 성공한 공사판 인부’라는 주제로 고려대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다. 이제 그는 고려대생들에게 가장 친근한 아저씨(혹은 형)로 통한다. 단골 고려대 학생들로부터는 명절 때마다 찾아와 인사까지 받을 정도이다.

‘영철street버거’ 바로 옆에 위치한 유명 샌드위치 가게에는 기자가 지켜본 1시간 동안 단 두 명의 손님이 찾았을 뿐이다. 바로 근처에 있던 대형 패스트푸드점은 3개월 전, 아예 문을 닫았다. 1000원짜리 버거가 대형 프랜차이즈를 물리쳤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이다.

“요즘엔 ‘눈먼 돈’ 없어요”

이영철씨는 길바닥에서 안해본 일이 없는 사람이다. 공사장 ‘벽돌쟁이’ 출신인 그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초등학교 4학년 이후 학교를 못 다녔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과거 모습에 대해 “못 배우고, 기술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공사장에서 날품을 팔아 번 돈으로 아내와 아들과 딸, 네 가족의 생계를 어렵게 꾸려나가던 능력 없는 남편이자 아빠였다고 했다. 공사장에서 무거운 벽돌을 나르다 허리를 다치게 되자 막노동 일마저 어렵게 되었다. 돈이 없어 허리 치료도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절박했죠. 새벽에 잠들어 있는 딸의 얼굴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었습니다.”

1999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일대에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토스트ㆍ계란빵 장사를 시작했다. 그는 열심히 토스트와 계란빵을 구웠지만 큰돈을 만질 수는 없었다.

“토스트는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만들고 나면 금방 식어버립니다. 실패 원인은 맛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손님들 입맛이 이렇게 까다로워요.”

그는 다시 과일 장사로 바꿨다. 그는 불법 노점상 단속을 피해 용두동, 면목동, 외국어대 일대를 전전하다 주변 상인들의 텃세에 밀려 그나마 손해를 보고 말았다.

“결국 자리를 잡은 게 바로 저 옆(고려대 후문)입니다. 동네 주민들이 제 사정을 알고 자리를 잡는 데 많이 도와줬어요.”

2000년 9월, 이영철 사장은 과일 장사를 접고 고려대 후문 근처에서 다시 햄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키작은 아저씨가 파는 이상한 버거.

처음 학생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그의 희한한 버거는 하루 80개남짓 팔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빵 사이에 고기 패티와 야채를 넣은 전통적인 햄버거였는데 학생들이 도통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사실 저에게는 패스트푸드에 대한 기본 지식 자체가 없었어요. 그래서 유명한 길거리 음식이며, 패스트푸드 햄버거는 거의 모두 다 먹어봤어요. 그러니 조금 감이 오더라고요.”

그래서 개발한 것이 현재의 영철 버거.

“요즘은 ‘눈먼 돈’이 없어요. 단순한 맛으로 학생들을 맞추기란 불가능하죠. 만드는 시간이 적게 들면서, 식어도 느끼하지 않고, 매콤한 맛을 지닌 버거를 만들어 보려고 수백번 연습했어요.”

따뜻하게 데운 빵과 돼지고기 볶음, 양배추, 양파 볶음에 청양고추의 매운 맛까지 곁들인 ‘고기샐러드’ 속과 젊은층의 취향에 맞춘 달콤하고 매콤한 핫소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01년 3월, 6개월 만에 하루 400여개씩 팔려나가며 처음 수익이 나기 시작해 2003년 9월, 시작한 지 3년 만에 아예 근처에 있던 점포에 세를 내어 입주한 이후 하루 평균 500개에서 1000개, 2000개씩으로 팔리는 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4년 8월 현재, 월 매출 6000만원, 아르바이트 직원 3명, ‘영철street버거’ 특허 등록, 전국 40여개 ‘영철street버거’ 가맹점, 놀라운 대기록이 탄생했다. 그가 드디어 역경을 딛고 남들이 다 우습게 보던 ‘1000원짜리’로 대성공, 능력있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었다.

“개업한 이래 지금까지 1000원”

그는 성공 비결로 ‘1000원짜리 한 장’을 꼽았다.

“1000원은 학생들을 위한 싸고 단순한 가격입니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 1200원으로 하는 게 수지가 맞을 것 같아 고민이 많았어요. 혼자 장사하는데 200원과 거스름돈을 따로 주고 받는 게 불편할 것 같기도 하고 만드는 시간도 부족한데 걸치적거릴 것 같았어요. 학생들이 간편히 돈 내고 먹을 수 있으려면 1000원이 가장 적당했습니다. 좀 손해봐도 많이 팔면 되니까요.”

개업한 이래 지금까지 1000원 가격 그대로다.

“사실 지난 달 양배추 가격이 사상 유례없이 폭등해서 버거 1개당 200원 정도씩 손해를 봤어요. 그러나 가격을 올릴 수는 없었어요. 저의 오늘을 있게 해 준 고려대생들과의 약속이기도 하고요.”

그의 성공 비결은 단순 명료했다.

“처음에는 햄버거 하나에 콜라 한 잔씩 드렸는데 미안하더라고요. 학생들 눈치보게 하면서까지 장사하고 싶진 않았어요. 차라리 콜라 몇 병 더 나가는 만큼, 버거를 더 팔자고 결심했죠.”

영철 버거에서는 콜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1000원짜리를 판다고, 1000원만큼만 서비스하겠다 생각하면 망합니다. 저는 항상 그 이상 손님들께 드리려고 노력했어요.”

영철 버거는 대학 학기 중, 월 매출 60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비용은 재료값 월 2000만원(하루 70만원), 집세 월 100만원, 전기·가스 등 기타 잡비 월 40만원, 아르바이트 3명 월 300만원으로 순수익만 3500만원을 육박한다. 현재 전국적으로 40개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영철 사장은 더 이상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박리다매(薄利多賣)라 순수익이 많지 않아요. 대학에 얼마 안 되는 돈 기부했다고 다들 제가 큰 부자 됐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런 건 아니에요.”

그는 수익이 적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목소리에서 절로 뿜어져 나오는 마음의 행복감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항상 베풀며 살겠다고 했다.

“지금은 버거를 하루 2000개씩 팝니다. 4년 전, 리어카 한 대로 시작했는데…(눈물이 맺혔다) 어려울 때 도와주신 분들께 이젠 성의도 보일 수 있고, 너무나 행복합니다. 안암골 고려대 학생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펌글)

(부자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