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같은 이야기

유리구두

권영구 2006. 9. 21. 10:03

 □ 유리구두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문득 현관에 놓인 아이들의 예쁜 투명 신발을 한참이나 들여다봅니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이렇게 예쁠까?
 올해 유행이라는 3천원짜리 투명신발을 지난 여름에 아이들에게 하나씩 사 줬었는데 이런 예쁜 신발을 신는 요즘 아이들은 참 행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다닐 때 까만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그것도 바닥이 닳아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구멍이 나지 않으면 새 고무신을 사주지도 않았지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픈 기억 하나는 거의 다 닳아서 종이 장처럼 얇은 고무신을 빨리 닳아 구멍이 나라고 시맨트 바닥에 막 밀고 다녀 일부러 구멍을 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구멍이 작으면 더 신으라고 할까봐 아예 주먹이 들어갈 만큼 커다랗게 갈고 갈아서 들고 갔더니, 유심히 살펴보던 아버지께서 "오! 구멍이 너무 크다" 하시면서 함께 신발가게에 가자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오우 예~' 쾌재를 불렀지요. 하지만 일부러 구멍낸 것을 모르실 아버지가 아니지요. 신발가게에 새 신발을 사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고 버린 헌 고무신 중에서 바닥이 아직 두툼한 놈으로 하나 골라 신으라고 주셨습니다. 저는 세상이 이럴 수가 있느냐고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땅을 치며 울고불고...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에게 신발 살만한 돈이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등에 상자를 매고 다니는 등짐 엿장수를 하면서 중병을 앓으셨기에 우리 집에는 언제나 돈이 없었거든요. 이거 참, 무릎 꿇고 백배 사죄해도 시원챦은데 아부지는 가버리고 안 계시니...
 그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꾸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예쁜 신발을 내 아이들에게 사 줄 수 있어서 제 마음이 너무너무 행복해 눈물이 다 납니다.  2006.9.20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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