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행복한 家)

[문화생활정보]아들을 향한 사랑을 세상의 아이들에게 잇다

권영구 2025. 5. 22. 10:05

언젠가 함께 마트에 갔던 날, 아들은 누가 보아도 못생긴 오렌지만 골라왔습니다. 왜 그랬냐고 묻자, 아들의 대답은 놀라웠습니다.

 

“제가 예쁜 것만 가져가면 다른 사람들이 속상하잖아요.”

 

 

나보다 남을 더 생각하던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엔 애써 모은 용돈을 어려운 친구들에게 ‘기부하고 싶다’며 선뜻 내어놓기도 했습니다. 아들은 자신이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듯, 부모님이 없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2025년의 새해 첫날 하늘의 별이 된, 22살 한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어린 아들의 영면 이후 부모는 아들의 이름으로 ‘추모 기부’를 했습니다. 아들의 명의로 기부된 후원금은 보호종료를 앞둔 아동 10명의 자립 지원을 위해 쓰고 싶다는 뜻을 전한 부모. 어머니가 추모 기부를 결심한 이유는 이랬습니다.

 

“아들이 어릴 때부터 영아원에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자연스레 아이 또래의 어려운 친구들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보육원에 나와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와 힘을 주고 싶어요. 우리 아들에게 다 주지 못한 사랑을, 다른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지난해, 소중한 아들은 공군 복무 도중 불의의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후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이미 의식 불명 상태였고, 아들은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13일 동안 힘겨운 싸움을 견뎌냈습니다. 아들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밝고, 친구들을 살뜰히 챙기는 아이였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동료 장병들을 위해 학업 과외를 자청했을 정도였죠. 또, 아들은 고등학교 시절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해 했던 영어 학습 봉사활동을 통해 나눔의 기쁨에 대해 더 깊이 느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모여 아들에게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아들의 선행은 지속 되었죠.

 

아들은 중학생 때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친구를 돕다가 함께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용기를 잃지 않고 친구들 사이에서 화해를 끌어내며 관계를 회복시켜 나갔고,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외면하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아이였죠. 어느 날은 할머니 댁에 방문했다가 가파른 언덕길을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미끄러질까 봐 본인의 용돈으로 염화칼슘과 모래를 사서 뿌리기도 하는 사려 깊은 아이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아들이 떠난 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습니다. 아들의 유치원 선생님, 중, 고등학교 친구들, 얼굴도 몰랐던 군인 아들을 둔 부모님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위로 속에서 아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의 ‘추모 기부’는 감사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기부금도 아들에 대한 조의금을 모아 마련한 것이었고, 엄마는 기부금이 아들의 친구, 군 동료, 군화모(군 아들을 둔 부모님 카페) 등 함께 슬퍼해 준 291명의 마음이라고 전했습니다.

 

 

아들에게 걸려온 마지막 전화, ‘빨리 청소하러 가야지, 내일 통화하자’며 말했던 것이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미어지지만, 부모는 많은 사람들의 위로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있고, 추모 기부를 통해 치유 받는 듯 하다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추모 기부를 망설이는 이들을 향해서도 너무 어렵게 생각지 말고, 작은 마음이라도 나누며 아픔을 극복해 나가시길 바란다는 따뜻한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하늘에서 우리 부부의 선택을 응원해주고, 기뻐해 주리라 생각해요. 늘 그래 왔듯이 우리는 영원히 한 팀이기 때문이에요”

 

 


#추모기부 #위로와나눔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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