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잡스가 엔지니어들에게 남긴 유언은?

권영구 2011. 11. 21. 10:31

잡스가 엔지니어들에게 남긴 유언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닮은 기계 만들어라
스티브 잡스 추모열기가 여전히 뜨겁다. 그의 전기가 미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소식도 들린다. 더불어, 그의 유작 아이폰4S에 대한 반응도 뜨겁다. 하지만 애플의 신임 CEO 팀 쿡이 처음 아이폰4S를 소개했을 때만해도, 시장은 신제품에 실망했고 주가도 떨어졌다. 심지어 아이폰4S의 판매가 호조로 돌아선 이유도, 발표 다음날 별세한 잡스에 대한 추모열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있었다. 그런데, 아이폰4S의 사용자가 늘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애플이 새롭게 소개한 음성인식 인터페이스 시리(Siri)의 기능이 탁월하고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애플 마니아들의 바람처럼 시리가 개인 비서의 기능까지 해내려면 아직도 더 발전해야 하겠지만, 분명히 시선을 끌 만큼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람을 이해한 엔지니어, 잡스
잡스는 시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그가 여느 IT 기업 CEO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는 “사람”을 이해하는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다. 잡스는 한 인터뷰에서 '제품들이 썩었다. 더 이상의 섹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그의 통찰을 드러낸 바 있다. 모든 제품이 인간의 성적 욕구만큼이나 강력한 흡인력을 갖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또한 이 말을 통해 전자장비가 단순히 기술의 집약체가 아닌 인격적인 존재로 자리잡아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했다. 전자장비에 무슨 인격적인 존재감이 있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은 어느 중학생의 자살을 다룬 기사 하나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부진한 성적을 비관하여 20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진 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부탁이 “아이팟을 함께 묻어달라”였다. 힘든 시간에 자신을 위로해준 아이팟에 대한 학생의 애착이 느껴지는 유언이다.
 
잡스는 전자장비가 인격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기계가 사람을 흉내내야 한다고 믿었다.  사용자에게 기계사용법을 배우라며 두툼한 매뉴얼을 제공하는 다른 IT 기업과는 철학이 다르다. 그가 직관적인 기계 조작법을 강조하고 사람을 닮은 인터페이스에 공을 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잡스는 매킨토시를 통해 시각적 인터페이스를 대중화했고, 아이폰을 통해 손가락으로도 조작이 가능한 멀티터치 스크린을 선보였다. 그리고 아이폰4S를 통해서 청각적 소통이 가능한 시리를 선보였다. 이로써, 애플의 제품은 다른 어느 전자제품보다도 인간의 감각을 잘 지원하는 전자장비가 되었다.
 
혹자는 애플이 직접 개발한 것은 없고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조합한 것뿐이라며 애플의 성공을 평가절하한다. 이 말은 비록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잡스는 기술자들이 만들어놓은 기계장비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인격적 존재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잡스를 유명하게 만든 매킨토시의 탄생 비화를 보면 잡스가 왜 남다른 창조자인지 알 수 있다.
 

제록스가 제대로 활용못한 마우스를 살려내다
1979년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에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상장을 앞둔 애플의 주식 10만주를 100만 달러에 팔 테니 제록스의 연구소를 보여달라는 제안이었다. 일부 엔지니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제록스는 잡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2번에 걸친 연구소 투어를 허용했다. 단 한 명의 엔지니어를 동반한 잡스는 제록스 연구소가 개발 중인 PC 앞에 도착해서 움직이질 않았다. 마우스라는 낯선 기계를 이용하여 화면의 파일을 이동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자, 잡스는 마술에 걸린 듯 멈추어 섰다. 그는 일반 사용자가 사용법을 힘들게 배우지 않고도 쉽게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2년 후 제록스는 마우스로 조종하는 개인용 컴퓨터, 제록스 스타를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PC사업부를 접고 복사기기 개발에 집중했다. 반면, 연구소에서 돌아온 잡스는 제록스가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을 대중적인 모델로 바꾸어내라고 엔지니어들을 독려해 전설적인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제록스가 전문가를 위한 퍼스널 컴퓨터를 만드는 동안, 잡스는 일반인도 사용할 수 있는 파퓰러(popular) 컴퓨터를 만들었다. 
 

결국에는 기술이 사람을 따라간다
잡스가 사람을 이해한 엔지니어로 인정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더 편해지려고 한다. 그것을 이해하는 잡스는 무지몽매하고 게으르다고 대중을 탓하기 보다 어린이도 쉽게 쓸 수 있는 대중적인 제품을 만들었다. 그가 생전에 종종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바로 엔지니어들이 흔히 빠지는 전문성의 함정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이 IT 강국이라지만 여전히 하드웨어 부문에서만 강한 반쪽 짜리 강국이다. 최근 들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함께 작업하고, 인문학자들도 참여하는 작업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서 경영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로서는 더 늦기 전에 이런 변화가 시작되어 반가울 뿐이다.  더 많은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잠시 물러나 고전을 읽으면서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결국은 기술이 사람을 따라갈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김용성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최고위 협상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전자 마케팅부, 미국상무성, 윌슨러닝을 거쳐 휴잇코리아에서 리더십 컨설팅 책임자를 두루 거친 HRD 전문가다. 국무총리실, 포스코, 샘표, 한국전력 등에서 다수의 강의를 진행한 바 있으며, 현재 IGM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경영지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