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연예소식

사라진 A매치, '국민 사기극'이 된 폴란드전

권영구 2011. 10. 10. 11:25

 

사라진 A매치, '국민 사기극'이 된 폴란드전

오마이뉴스 | 입력 2011.10.10 09:03 |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지난 7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폴란드전은 'A매치'라는 이름을 걸고 대대적으로 홍보된 경기였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무대에서 활약하는 대한민국 최고 선수들을 불러모았고, 수많은 관중들도 비싼 입장료를 내고 경기장을 찾아 열렬한 응원을 아까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경기가 끝나고 보니 이날 경기가 'A매치가 아니'라는 황당한 소식이 알려졌다. 한 팀 A매치 선수교체 한도(6명)를 넘었기 때문에 A매치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조광래 감독은 이날 교체 한도를 초과한 7명의 교체 선수를 투입했다. 한마디로 '기억에는 있지만, 기록에는 없는' 경기가 된셈이다. 이날 맹활약한 박주영과 서정진의 공격포인트도, 이동국의 1년만의 대표팀 복귀무대도 모두 '공식적으로는'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뛰었던 선수들이나, A매치인 줄 알고 열렬히 응원했던 관중이나 허탈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알려진 것처럼, 단순한 실수도 아니고 처음부터 '의도된 결정'이었다면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물론 조광래 감독은 이번 폴란드전에서 가능한 많은 선수들을 기용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고, 나흘 뒤에 열리는 UAE와의 월드컵 예선경기를 대비한 안배 차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엔트리에 뽑은 모든 선수를 테스트해 볼 것이 아닌 다음에야 고작 교체 멤버 한 명을 더 투입하기 위하여 굳이 A매치 기록을 깡그리 사라지게 만들어야 했을까? 더구나 마지막 교체는 종료를 2분 남긴 후반 43분(홍철-최효진)에 이루어졌다. 2-2로 비긴 상황에서 경기흐름에 영향을 미칠만한 교체도 아니었고, 그럴만한 당위성도 없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교체로 폴란드와의 A매치 기록은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은 결코 단순한 해프닝 따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2004년부터 선수교체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친선경기라 할지라도 국가대항전에서 너무 많은 선수교체가 A매치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공식적인 룰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협회나 일개 감독 따위가 마음대로 바꿔서도 안 된다. 그런데 명색이 국가대항전에서 규정을 알면서도 대놓고 무시한 것이다.

과거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도 월드컵 최종예선을 준비하던 2009년 오만과 원정 평가전에서 무려 12명의 선수를 교체해 A매치로 인정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나마 당시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약체팀과의 경기였고, 결정적으로 '원정경기'였기에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을 뿐, 그 역시 바람직한 결정은 아니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홈경기였다. 안방에서 모처럼 귀한 손님을 초대하고, 수많은 홈 관중까지 'A매치'라는 이름으로 모셔놓고서는 '연습경기'를 해서 사람들을 기만한 꼴이 된 것이다.

설사 조광래 감독과 축구협회에서 폴란드 측과 사전에 협의를 했다고 해서 합리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A매치는 말그대로 국가간의 대항전이다. 클럽경기처럼 당사자들 임의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록이 되어 역사에 남는 데다가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관중-국민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선수들에게도 A매치 한 경기에 출전하여 기록을 작성하는 것이 평생의 영예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평가전을 하고 싶었다면, 처음부터 비공개로 연습경기를 치르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관중에게도 사전에 고지하고 양해를 구했어야 했다. 엄밀히 말해 이것은 A매치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을 기만한 사기극에 가깝다.

감독의 권한도 정해진 룰 안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표팀과 A매치는 일개 감독의 어설픈 실험 욕심 따위나 충족시키자고 마음대로 룰을 바꿔도 되는 무대가 아니다. 가짜 A매치로 팬들을 기만한 데 대하여 조광래 감독과 축구협회의 공식적인 사과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