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지식

알듯 말듯한 소비자 마음, 아이러니를 읽어라

권영구 2011. 10. 6. 17:07

알듯 말듯한 소비자 마음, 아이러니를 읽어라
시에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7편>

창조경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그가 그린 그림 중에 파이프 그림이 있다. 매우 유명한 그림이니 잘 알 것이다. 종이에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고 적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작자가 파이프를 그려놓고 파이프가 아니다’고 하니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면서 동시에 헷갈려 한다. 파이프라는 이름이 잘못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분명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 그것은 파이프 그림이다. 그림일 뿐이지, 파이프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당연히 파이프 그림을 진짜 파이프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에 당황한다.

이는 황인원 사진을 찍어놓고 ‘이 사람은 황인원이 아니다’는 문구를 적어놓는 것과 같다. 사진은 사진일뿐 진짜 내가 아니다. 진짜 황인원, 실존의 황인원은 사진 안이 아니라 밖에 있다.


실상을 숨기고 가짜를 드러내는 아이러니
세상에는 진짜와 가짜가 널려 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구별해 내는 일이 필요하다. 르네 마그리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것, ‘진실과 거짓의 차이 알기’였다.

‘이미지 배반’이라는 이러한 초현실주의 미술기법은 시에서의 ‘아이러니’에 해당한다. 시에서 사용하는 아이러니 기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보편적인 게 ‘척’이다. 실상과 진실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시치미 뚝 떼면서 가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러니 시는 표현된 단어와 실제 의미는 다르다.

1
국민학교 때 나는 학교 화장실 뒤의 콘크리트 정화조 안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개 한 마리를 보았었다.
지금도 나는 그 생각만 하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마 그 개는 그 정화조에서 끝내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똑같은 상황에서 어찌해볼 수도 없는 자신에 절망한다……
덥썩 잡아서 끌어올려야 하는 건데
그러나 개는 잡는 시늉만 해도 이빨부터 먼저 드러낸다 으르렁

2
나는 자본주의의 정화조에 빠진 한 마리의 개다.

박남철 시인의 <목련에 대하여 Ⅲ>라는 시다. 이 시에서 정화조에 빠진 개는 시인의 눈에 눈물이 고일만큼 ‘불쌍한 존재’이자, 잡는 시늉만 해도 이빨부터 드러내는 ‘공포의 대상’이다. 개의 성향이 이중적이니 이를 바라보는 ‘나’ 역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1을 읽을 때, 시인이 자신의 경험을 독백체로 풀어냈으니 독자는 제3자 입장에서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내려 가게 된다. 그러다가 2에 들어서면서 ‘허걱’하고 놀란다. 시인이 표현한 ‘나’가 시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를 읽는 ‘나’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나’가 ‘시인’이 아니고 ‘나’라면, 내가 자본주의라는 정화조에 빠진 한 마리 개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섬뜩한가. 그 섬뜩은 어떤 일에 대해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돈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모르는 체하면서 살았던 ‘나’의 이중적 실체가 이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나는 탓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자본주의라는 똥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불쌍한 존재이자, 누군가 나를 구하려고 손짓하면 악다구니로 반항하고 거부하면서 상대에게 공포를 주는 존재다. 이것을 깨달으면서 이 시를 읽는 독자는 거짓말하다 들킨 사람처럼 순식간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수도 있다. 1에서 ‘나’는 시를 읽는 독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존재의 이야기처럼 ‘척’을 하다가 2에서 짧은 한 문장으로 그것이 바로 ‘너’일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것이다.


소비자의 구매 활동에서도 아이러니 발생
이처럼 실체를 숨기고 가짜를 등장시켜 깨우침의 효과를 주는 아이러니는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하면서 진짜 동기는 숨기고, 가짜 동기를 드러내는 심리와 같은 기법이다.

인스턴트커피가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마케터들은 인스턴트커피가 기존 원두커피에 비해 ‘빠르고 쉽게 준비할 수 있다’는 편리함을 장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소비자는 전혀 받아들이질 않았다. 인스컨트커피는 많은 사람에게 외면당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 마케터들이 소비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대답은 모두 ‘인스턴트커피 맛이 싫다’였다.

커피 제조업자들은 이 대답을 매우 이상하게 생각했다. 자신들이 블라인드 테스트를 실시하면 대다수가 인스턴트커피와 원두커피의 맛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스턴트커피 맛이 싫다’는 대답은 겉으로 포장된 가짜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정답을 얻기 위해 1950년 메이슨 해어(Mason Haire) 교수가 인스턴트커피를 거부하는 심리적 요인 찾기 실험을 했다. 일단 두 그룹의 주부들에게 똑같은 리스트를 주었다. 1.5파운드짜리 햄버거, 식빵 2개, 럼퍼드 베이킹파우더 한 깡통, 당근 묶음, 복숭아 통조림 두 깡통, 감자 5파운드. 여기에 한 그룹은 이 리스트에 분쇄된 맥스웰 하우스 원두커피를 포함했고, 다른 그룹은 네스카페 인스턴트커피를 추가했다.

그러고 나서 주부들에게 리스트를 보여주며 어떤 사람이 쇼핑할 것 같은지 그 사람을 묘사해보라고 주문했다. 두 그룹의 결과는 놀랍게도 엄청난 차이를 보였다. 먼저 ‘원두커피를 쇼핑리스트에 포함한 구매자’에 대한 묘사는 ‘검소하고 현실적인 여자’ ‘요리하기 좋아하는 여자’ ‘절약하며 분별력 있는 여자’라고 대답했다. 반면 ‘인스턴트커피를 쇼핑리스트에 포함한 구매자’ 묘사는 ‘늦잠 잘 것 같은 여자’ ‘게으를 것 같은 여자’ ‘칠칠맞아 보이는 여자’ ‘생각 없을 것 같은 여자’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여자’ ‘근본적으로 게으른 여자’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자’ ‘아무렇게나 사는 여자’ 등으로 표현됐다.

이는 커피 구매자들이 가족을 돌보는 좋은 아내, 엄마, 주부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원두커피를 사려는 동기가 생겼음을 암시한다는 증거다. 마찬가지로 게으르고 아무 생각 없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이 두려워서 인스턴트커피를 거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주부’ 즉 ‘좋은 사람’에 대한 개념은 사회적으로 규범화돼 있다. ‘좋은 사람’이라면 어려서부터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공부한다. 더불어 사회가 무엇을 용납하고 용납하지 않는지도 배운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이 속한 문화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따르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 자기만의 주장을 펼치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라고 한다.

커피 구매자들은 다원적 무지 현상으로 인해 ‘좋은 아내, 엄마, 주부’라는 진실을 숨기고 ‘인스턴트커피 맛이 싫다’는 ‘척’을 했던 것이다. 시에서의 아이러니 기법과 같다.

앞의 시 2를 읽으며 독자가 아이러니를 깨닫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것처럼 커피 구매자들의 심리적 아이러니를 발견했으니 해결책이 나온다. 인스턴트커피 제조업체는 편리함에서 적합성(appropriateness)에 대한 어필로 판매 전략을 변경했다. 활동적이고 계획성 있는 세심한 여자가 인스턴트커피를 대접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런 행위가 보상을 받는 모습을 계속 강조했다. 그 후 다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원두커피 이용자들은 오히려 ‘고루하게’ 비춰지는 반면, 인스턴트커피 이용자들은 ‘긍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영업의 드러나는 모습과 다른 속내

아이러니는 실체를 뒤로 하고 가짜를 앞세운다는 측면에서 영업의 본질을 재정립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보통 영업은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러난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체는 다르다. 영업의 속내는 서비스를 파는 것이다.

어느 상점에서 상품 하나를 팔고 1000원을 벌었다 하자. 이중 700원이 원가라면 원가는 그 상품의 생산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다. 나머지 300원이 상점의 몫인데 이 몫이 바로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다. 그러니 300원어치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으면 가격이 그만큼 떨어져야 하고,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면 그보다 더 비싼 가격을 형성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는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만큼이나 소비자 니즈에 맞는 서비스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드러나는 모습과 속내가 다른 아이러니이고, 아이러니의 실체를 찾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성공시대를 구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미국의 노드스트롬 백화점이다. 고객만족 서비스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이 백화점의 감동 사례를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1970년대 노드스트롬이 알래스카에 있는 백화점을 인수한 후, 타이어를 판매하지 않고 있었는데 인수한 백화점에서 타이어 두 개를 샀던 고객이 “내 차에 잘 안 맞으니 환불해 달라”고 요구하자 군말 없이 환불해 줬다는 사례나,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젊은 여성이 구두를 사려고 왔는데 여자가 찾는 구두는 이미 다 팔리고 재고조차 남아 있지 않자 매장 직원이 인근 백화점을 모두 돌아다니며 구두를 찾아 나서 2시간이나 떨어진 곳에서 구두를 사다 줬다는 사례도 알 것이다. 그것도 ‘고객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그냥 선물로 주었다는 얘기 말이다.

어디 이뿐인가. 여행에 앞서 노드스트롬 백화점에 들러 옷을 한 벌 산 여성이 서두르다가 비행기표를 백화점 매장에 두고 공항에 도착해 당황해 하고 있는데 백화점 여직원이 비행기표를 들고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달려와 전해줬다는 얘기와 화려한 분위기의 이 백화점에 아주 허름한 옷을 걸치고, 생긴 것도 아주 흉측해 모두들 옆으로 피하는 여자가 한 명 나타나 고급 여성 브랜드만 취급하는 값비싼 의상 코너로 들어가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나중에 오겠다고 했어도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고객이 상품을 살지 안 살지를 판단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봉사와 친절 때문에 있다’는 대답과 함께 여느 고객과 다름없이 친절하게 대했다는 얘기 등 수많은 사례가 전해진다. 모두가 물건 판매는 ‘드러난 모습’일뿐이고, 영업 판매의 진실은 서비스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즉 영업의 아이러니 상황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