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 득되는 긍정, 자꾸 되새김질하라 | |
기사입력: 11-06-21 14:43
김봉중 전남대 사학과 교수 | |
미국 대통령 리더십에서 배운다 <2편> 원칙과 긍정의 되물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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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하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어떤 불가분의 권리를 조물주로부터 부여 받았으니, 거기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 추구의 권리가 포함된다.” 토마스 제퍼슨이 기초한 미국 독립선언문의 핵심 부분이다. 자유와 평등의 이상은 미국 독립뿐만 아니라 뒤이어 전개되는 프랑스 혁명, 그리고 이후의 숱한 자유 민주주의 혁명에 메아리쳤다. 독립투사 제퍼슨이 미국 독립선언문을 통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미합중국이 추구해야 할 이상을 제시했다면, 대통령 제퍼슨은 솔선수범해서 그 이상을 실천에 옮겼다. 1800년, 제퍼슨은 우여곡절 끝에 미국의 제3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연방파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존 애덤스의 집권 후에 공화파인 제퍼슨이 당선된 것이다. 미국 역사 최초의 ‘평화로운 정권교체’였지만 상처투성인 정권교체였다. 미국은 북부 기반의 연방파와 남부 기반의 공화파로 양분되었고, 연방파의 12년 집권에 대한 공화파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제퍼슨이 당선된 가장 큰 이유는 남부의 ‘몰표’ 덕분이었다. 정권을 잡은 남부 공화파는 복수의 날을 갈았고, 북부 연방파는 수세에 몰렸다. 미국 건국의 이상은 파당정치로 훼절될 위기였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제퍼슨은 앞 정권의 주요한 정책을 상당부분 그대로 이어나갔다. 특히 워싱턴이 유럽을 겨냥해서 세워두었던 미국의 중립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제퍼슨은 취임사에서 “유럽에 말려들어가는 동맹”을 피하면서 독자 중립노선을 걷는 것이 미국을 위한 “가장 위대한 법칙”이라고 선언했다. 이는 단어 몇 개만 바꿔서 워싱턴의 ‘고별사’를 그대로 되새김한 것이다. 워싱턴의 ‘고별사’는 제퍼슨뿐만 아니라 남부의 정치적 증오대상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작품이었지만, 대통령 제퍼슨은 중립정책을 미국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기 위한 최대의 정책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는 또한 “우리는 모두 연방파이며, 모두 공화파이다”고 하면서 지역과 당파의 분열 및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화합을 꾀하였다. 공화파들은 이전 정권에서 임명된 연방파 각료 전원을 내보낼 것을 제퍼슨에게 요청했으나, 제퍼슨은 거절하고 그들 상당수를 유임시켰다. 이것은 한 편으로 보면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지만, 큰 틀에서 보면 ‘되새김의 리더십’이었다. 올바른 것, 중요한 것은 국익을 위해서 당파를 초월해서 되새김함으로써 그것을 전통으로 다지는 그런 ‘되새김 리더십’인 것이다.
링컨, 어두운 단면에도 불구 역사적 신화가 된 이유 이러한 되새김의 리더십은 위기 속에서 더욱 빛났다. 1861년 미연방은 남북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미합중국을 유지시켰으며, 노예해방으로 미국의 오랜 숙제를 단숨에 해결함으로써 미국 최고의 영웅이자 우상인 링컨을 탄생시켰다. 링컨의 위대함은 그가 남북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 선조들이 세웠던 미국적 가치와 이상에 대한 되새김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그는 미합중국에 반기를 들고 연방체제에서 이탈하려는 남부 연합에 대한 비판보다는 미합중국의 건국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되새기며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미국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링컨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인물이며 신화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느 신화적 존재가 그렇듯이 링컨 역시 신화의 어두운 면이 존재했다. 변호사 시절 링컨은 단 한 번도 흑인노예를 변호한 적이 없으며, 그 자신도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흑인들을 열등한 사람으로 보았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은 남북전쟁에서 대외적으로 북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이며 전략적 선언이었다. 남북전쟁 당시 언론탄압, 인신보호영장 정지 등 비헌법적이고 독재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링컨을 통해 본 미국 리더십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링컨의 역사적 유산이다. 남북전쟁은 미연방을 반쪽으로 찢었고, 국민들의 아픔과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지역감정은 여전히 미국 통합의 정치적, 정서적 장애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링컨을 기억했고 되새김했다. 링컨에 대한 되새김은 뒷시대의 역사 수레바퀴에 붙고 또 붙어서 링컨을 거대한 영웅적 화석으로 재탄생시켰다. 당대 시인 월터 휘트먼은 링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링컨이 라일락꽃처럼 부활해서 불멸의 존재로 남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남북전쟁 이후 최초의 남부 출신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은 링컨의 정신을 받들어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미국 민주주의를 새롭게 정비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링컨이 노예해방을 위해 투쟁했듯이 문명의 악에 대항해서 싸웠다. 흑인 여가수 마리언 앤더슨은 인종차별에 항의해 링컨 기념관 앞에서 성악 공연을 했다. 마틴 루터 킹은 그 계단에서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전설적인 연설을 했다. 버락 오바마는 링컨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 주의 스프링필드에서 대선출마 선언을 했고, 대통령 취임식에서 링컨이 취임식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성경 위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했다. 법학도 오바마는 링컨 신화의 어두운 부분을 비판했지만, 대통령 오바마는 링컨 신화의 밝은 부분을 다시 밝혔다. 그 이전의 미국인들이 그랬듯이 오바마는 미국의 아이덴티티나 미래를 위해 링컨은 분명 미국의 영웅이자 우상임을 상기했다.
결국 미국의 힘은 되새김의 전통에서 비롯 미국 초기의 역사는 여느 나라의 역사처럼 당파싸움으로 어수선했다. 더군다나 지역주의 성향이 뚜렷한 당쟁이었다. 그렇지만 제퍼슨은 국익을 위해선 당파를 초월해서 앞 정권의 원칙을 ‘되새김’했다. 이러한 되새김의 리더십은 미국의 이상을 세우고, 다지며, 또 그것을 기리는 전통을 만들어가게 만들었다. 링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링컨은 분명 미국의 최고 우상이었지만, 그는 상당부분 만들어진 영웅이자 전통이다. 링컨의 신화와 실제에 따른 이른바 ‘링컨 불가사의(Lincoln enigma)’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해서 ‘미국 불가사의’를 창출하게 만든 미국의 역사의식이다.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이 그렇듯이 어떤 나라나 조직이든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없다. 오히려 혼란과 무질서가 우리 인간사의 정상적인 모습이다. 그 중에서도 장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세우고, 기리며, 되새김함으로써 놀라운 전통을 창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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