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알기

공존의 나라, 일본

권영구 2009. 10. 11. 17:35

공존의 나라, 일본  

 
조성원 기자의 '혼네와 다테마에' http://ublog.sbs.co.kr/wonnsbs

 

일본에는 웬만한 동네엔 다 조그마한 목욕탕이 있다. 새로운 시설을 갖춘 곳은 '스파' 라고 부르지만, 여긴 한시간에 천 5백엔 이상(우리돈 만 2천원) 이니 좀 비싸다. 그 대신 센토오(淺湯) 라고 부르는 대중 목욕탕은 입장료 4백 20엔, 우리돈 3천원 가량이다. 나는 집에 목욕탕이 있지만, 이 허름한 동네 대중탕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입장료만 4백 20엔이고, 안에 있는 사우나(건식, 습식 등 땀 내는 공간)을 들어가려면 따로 500엔을 더 내야 한다. 물론 수건도 100엔 내고 빌려야 하고 조각비누도 20엔이다. 심지어 헤어 드라이어도 20엔이다. 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 보던 풍경이다. 시설도 그리 훌륭하지 않다. 낡은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고, 벽에는 레슬링이나 권투 경기의 광고, 옛날 맥주 광고사진 같은게 붙어 있다. 탕도 뜨거운 곳, 차가운 곳 해서 단 두개인데, 둘이 들어가면 좀 좁은 정도이다. 그래도 나는 이곳을 즐겨 찾는다. 좁은 탕 속에 앉아 있으면 옛날에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왔던 추억에 잠기는 것도 나름의 즐거움이다. 새것도 좋지만, 옛날 것에서 풍겨나오는 편안함 같은게 있다. 물론 420엔이라는 저렴한 비용도 훌륭하다.

 

내가 잘 가는 목욕탕은 주인이 70살쯤 돼 보이는 할머니다. 아버지가 하시던 것을 물려받았다고 하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른단다. 1900년인가? 어쩌고 하면서, 하여간 100년은 넘었다고 말한다. 요즘은 손님이 줄어들지 않느냐고 묻자, 그래도 꾸준하다고 하면서, 오히려 이 동네(신주쿠) 사는 한국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띠게 줄어들었다고 그 이유를 내게 되물었다. 한국 사람들은 시설 좋은 사우나가 생기면 그리로 간다는 게 답이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일본 사람들이 동네 목욕탕을 찾는 이유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목욕이라는 목적이 달성되고, 무엇보다도 저렴하고, 또 옛것에서 풍기는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라고들 답한다. 실리적인 일본 사람 답지만, 사실은 그게 소비의 원래 의미 아닐까? '허영'과 '체면'이라는 또다른 요소가 소비의 주된 이유인 우리와는 다른 점이다. 다양한 상품의 공존이 가능한 것은, 다양한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에서 틀어주는 음악은 대개 80년대 음악이다. 시카고, 프린스 엔드 더 레볼류션, 쿨 앤드 더 갱, 심지어는 F.R 데이빗의 노래까지 나온다. 물론 요즘 팝도 틀지만 옛날 노래도 많이 애용한다는 게 우리와의 차이점이다. TV의 CM을 봐도 배경음악이 옛날 노래가 많다. 한마디로, 오랫동안 닳을 때까지 쓰는 거다. 소비자들이 싫증내지 않기 때문에. 스타벅스도 많지만, 100년 이상 영업중인 동네 찻집도 여전히 성업중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싼 것과 비싼 것이 모두 존재한다. 다양하다는 얘기다. 가령 1000엔(우리돈 8000원)이 있으면 400엔짜리 소바를 먹고 250엔짜리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서 잡지 200엔, 빵과 쥬스까지 사 먹을 수 있는 나라다. 물론 비싼 음식, 비싼 물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일본이 선진국이라고 하는 이유는, 못사는 사람도 눈만 조금 낮추면 살아가는 데 별 어려움이 없다는 점이다. 싼 것과 비싼 것이 공존하고, 그 바람에 돈 있는 사람이나 돈 없는 사람이나 공존할 수 있게 되는 사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이다.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실제 필요한 것보다는 체면이 앞서는 사회, 무조건 새것만을 찾아 나서는 광기의 사회가, '공존'의 미덕을 한번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