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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日)기업 퍼지는 '더치페이'… 커지는 경쟁력

권영구 2009. 10. 31. 09:41

[현장르포] 일(日)기업 퍼지는 '더치페이'… 커지는 경쟁력

입력 : 2009.10.22 03:29

협력업체와 거래 투명해져 매출 증가 등 긍정적 효과
국내선 신세계가 선도해 임직원에 계산기 나눠줘
롯데마트·현대百도 도입

15일 저녁 8시쯤 일본 도쿄 아카사카의 주점 '홋카이도(北海道)'. 30대 남성 직장인 4명이 생선구이와 꼬치 등을 안주 삼아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일행 중 한 명이 주머니에서 아이팟(iPod·애플이 생산하는 MP3플레이어)을 꺼내 들고는 '割勘'(와리깡·더치페이)이라 적힌 단추를 누르고 청구된 술값 '1만800엔'을 입력했다. 그러자 액정에 동석한 사람이 몇명인지를 입력하는 화면이 나타났다. '4명'을 표기하자 '25%, 2700엔'이라는 숫자가 떴다. 액정을 확인한 네 사람은 똑같이 2700엔씩을 꺼냈다. 주점 카운터의 계산기에도 똑같은 기능이 있었다. 점장 사토 히로유키(佐藤浩之)씨는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생활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더치페이' 문화가 기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일본 2위의 대형마트 체인인 이온(Aeon)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협력업체와 식사를 할 경우 예약을 한 쪽에서 식대를 계산하지만 자사(自社)의 참석자들이 먹은 음식값을 다음 날 상대측에 송금한다. 제조업체와의 관계에서 우위의 입장에 서는 것이 보통인 유통업체로서는 드문 사례다. 이온 개발사업부 니시카와(西川) 부장은 "글로벌 경쟁력은 협력회사와의 투명한 거래에서 시작된다. 때문에 이해관계자와의 거래에서 자기 몫은 자기가 내는 문화는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지난 15일 저녁 일본 도쿄 아카사카의 한 주점에서 필립모리스재팬 직원들이 술값을‘와리깡’방식으로 내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도쿄=장상진 기자

국내에서도 유통기업을 중심으로 더치페이문화가 확산 중이다. 이마트를 운영하는 신세계그룹정용진 부회장을 비롯한 모든 임직원의 명함에 'Shinsegae Pay(신세계 페이)로 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신세계 페이'란 자신의 몫을 자신이 계산한다는 의미다. 신세계 페이는 ▲공사(公私) 구분을 명확히 ▲먼저 제안하고 실천한다 ▲공평하게 부담한다 ▲작은 금액에도 적용한다 ▲비용 발생 즉시 지불한다 등의 다섯 가지 원칙 아래 운영되고 있다. 신세계 직원이 1만원짜리 음식을, 협력업체 직원이 8000원짜리 음식을 함께 먹었다면 9000원씩 내는 것이 아니라 1만원과 8000원을 따로 계산하는 식이다. '사회적으로 깨끗하고 투명한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2005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롯데마트에서도 지난 6월 1일부터 같은 내용의 '롯데마트 페이'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접대를 받는 버릇이 들면 당장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나중에는 떳떳하지 못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노병용 대표이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롯데마트는 희망 직원 전원에게 법인카드를 나눠주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같은 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투명성 확보를 위해 도입한 이 제도는 뜻밖의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매출 증가'이다. 대형마트 등을 통해 골프채를 판매하는 마루망코리아의 장영근 팀장은 "각자 계산을 할 경우 '을(乙)'이라는 위축감이 사라지면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게 돼 접대를 하는 대형마트에 비해 매출이 20~30% 정도 더 나온다"고 말했다. '행사기간에 매장에 골프연습장을 설치해달라'는 등 이전 같으면 '감히' 유통업체를 상대로 꺼내지 못할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면서 나타난 결과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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