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알기

(책소개) 일본정신의 풍경

권영구 2009. 10. 9. 22:56
모욕 당한 일본인 복수의 칼을 간다
[조선일보] 2009년 09월 26일(토) 오전 03:30 
 
이른바 '55년 체제' 이후 첫 정권 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한국 식당을 찾아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고, 한국 탤런트를 만나 "정조처럼 정치를 하겠다"고 말한다. 한국 드라마 마니아라는 그의 부인은 한·일 문화교류 행사 등에 모습을 드러내 한국어로 인사말을 한다. 일본 최고 정치지도자 부부가 보이는 이런 모습에 많은 한국인이 흐뭇해하는 듯하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이라면 어떨까. 우리 대통령 부부가 일본에 대해 같은 모습을 보인다면 한국인들은 이를 용인할 수 있을까.

'일본정신'이라는 같은 제목을 단 《일본정신의 풍경》과 《일본정신》의 두 저자 모두 "한국인은 일본에 대한 반감 차원에 머물러 있을 때가 많다"(이찬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기 자신을 상대화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박규태)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종교학자인 두 저자는 표피적인 현상 너머 저류(底流)에 흐르는 일본과 일본인의 심상(心象)을 깊이 있게 분석한다.


《일본 정신의 풍경》은 일본문화의 내면을 읽는 키워드로 가미[神]·사랑[愛]·악(惡)·미(美)·모순(矛盾)·힘[力]·덕(德)·천황(天皇)·초월(超越)·호토케[佛]를 제시하고, 《고사기》 《겐지 이야기》 《복옹자전(福翁自傳)》 《국화와 칼》 등 각각의 키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책을 골라 일본의 정신을 분석한다.

몇 해 전 일본에서 유행한 드라마 '전차남(電車男)'에서 주인공은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오타쿠'지만, 전차 안에서 부유한 집 아가씨(오죠상)가 치한에게 당하는 모습을 보고 치한들에게 그만두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실 일본 사회에서 일종의 간섭, 즉 '은혜를 입히는 행위'로서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전차남'은 그런 금기를 깼기 때문에 화제가 된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행위는 '덕(德)'이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은혜를 입었을 때 거기에 대한 '보은(報恩)'은 덕으로 간주된다. 은혜는 '보은'이 전제되기 때문에 그것을 베푸는 것도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일본인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는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현재까지도 최고의 일본문화론 중 하나로 꼽히는 《국화와 칼》은 이를 '기리(義理)'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원래 이 책은 1946년 미국의 일본 점령군이 참고할 목적으로 작성된 일본인의 특성에 대한 보고서였다.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이 보고서에서 일본인들은 무사도와 천황제에 '기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모욕하지 말 것을 충고했다. 전후 미 점령군이 천황제를 존속시킨 것에 대해 서구 언론은 "루스 베네딕트가 천황을 구했다"고 기사를 쓸 정도였다.

《일본정신》은 일본의 신도(神道)를 비롯하여 일본 공명당(公明黨)의 기반인 창가학회(創價學會), '나무묘호렌게교'를 암송하는 것으로 구원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일련종(一蓮宗) 등 일본의 여러 종교를 통해 일본정신의 내면을 탐색한다. 저자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인구가 일본에서 1%도 채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초월의 세계보다 현세적 일상사에 충실하고자 하는 일본인의 '비(非)종교적 종교성'이란 특성으로 정리한다.

두 책은 모두 학문적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일상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통해 일본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속 깊은 내면을 엿보려고 하는 독자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저자들이 말하는 '일본정신'을 살펴보면서 일본에 대한 '분노'나 '반감'을 넘어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이한수 기자 hs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