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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는 과연 지상천국인가

권영구 2005. 11. 8. 22:21

 

불과 수년 전, 한국의 이민 선호국 가운데 1위에 랭크됐던 나라, 그러나 2년 전 새로이 개정됐던 이민법의 영향으로 잠깐 주춤했던 모국에서의 캐나다행 이민 열기가 최근 들어 재차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부의 초기 이민자들이 현지사정에 쉽사리 적응치 못해 극심한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대다수의 한인이나 초기 이민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나, 이 시간 현재도 한국에서의 캐나다행 이민 행렬이 쉴 틈 없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도 "캐나다는 지상 천국"이라는 막연한 환상만을 가지고 고국을 떠나 이곳으로 이주해 오는 이들이 적지 않아 심히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십 수년전,우리 나라에 IMF가 터진 이후 갑작스레 모국인들에게 캐나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그 가운데 어떤 분들은 부패가 만연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취급을 받는 사회적 분위기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또 이와 다른 어느 분의 경우는 이민을 오게 된 동기를 캐나다의 우수한 교육환경을 들어 이국땅에서의 불확실한 미래에도 열악한 교육환경에 자녀를 내 맡길수 없어 그동안 일궈왔던 모든것을 뒤로 한 채 캐나다 땅을 선택하신 분들 또한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무래도 한창 성장기에 하루종일 좁은 책상에 구겨 앉아 책과 씨름하는 자녀의 모습이 무척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물론 이 가운데는 문득 자신의 삶을 즐기고 싶은 내적 욕구 때문에 이민을 결정 하신 분, 또한 없지 않을 것이다. 명예퇴직을 신청해 받은 퇴직금을 이자율이 높은 시중은행에 넣어두고 이민와 골프를 하고 여행 다니며 잘 정돈된 정원 한가운데서 바베큐를 즐기며 노후를 즐겁게 살기위해 오신 분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앞에서도 필자가 잠시 언급 했던것처럼 이곳에 막연한 환상만을 가지고 오는 분들, 그것이 가장 큰 문젯거리이다. 그곳에 가면 "무작정 좋다고 하더라"그야말로 가장 위험 천만한 생각이 아닐수 없다.

 

우선, 토론토나 밴쿠버 한국인들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대도시에 4인 가족이 거주하려면 월세를 1천 달러- 1천5백달러 가량 매달 지불해야 한다. 캐나다는 한국과 달리 전세금 제도가 없다는것을 상식적으로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자동차는 이곳에서 필수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싸구려 중고차라도 구입하기 위해선 최소한 1만불 ~ 2만불 가량의 현금을 즉시 준비해야 한다.

 

또,한가지 대부분 사람들이 이미 잘 알고 있는것 처럼 캐나다에선 기본적 의료비는 무료라고 하지만 정부의 건강보험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치과에서는 사랑니 두 개만 뽑아도 기본 5백 달러는 지급 해야 한다.

 

이와 또 다른 어려움은 한국에서 관련업종에서 일을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래도 이곳에선 극히 일부 업종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자신이 전공했던 업종의 취업을 하기가 수월치를 않다는 것이다. 설사 어렵게 일자리를 잡았다고 치더라도 각종 언어 장벽 때문에 온갖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필자는 가장 최근, 이민 오신 분들 가운데 몇 분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민을 오시기 전 꼭 명심해야 될 몇가지 사항을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자신의 나이를 잊어야 한다. 자신의 나이가 많다고 해서 이곳에서 위 사람대접을 받으려고 한다면 그건 정말 큰 오산이다. 물론 이러한 사례가 한인들 사이에서 해당하는것은 아니라고 하나, 현지인들은 막내동생보다 어린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 석자를 함부로 부르는 것에 처음엔 당황하게 될 것이다.

 

둘째, 내가 남자인데 하는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캐나다는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들과 장애인들의 천국이라는 말이 있듯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특별히 보장이 잘 되어 있는 나라이다. 영국의 여왕을 대신한 총독이 여성일 뿐 아니라 정부의 장관이나 당수 또한 여성인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나는 여자니까 한국에서 처럼 화장이나 하고 혹은 가정에서 살림이나 꾸려나가면 되겠지 하고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큰 착각중에 착각일 것이다. 이곳에선 여성들도 남자들과 똑같은 사회일원의 한 사람일 뿐 아니라 캐나다 여성들은 대부분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이곳에 오면 이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각종 궂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국에서는 잘 나갔는데 이런 생각을 하루속히 버려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의 지위와 체면을 인정해 주지 않는 곳이 바로 캐나다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의사생활 10년을 했다가 이곳에서 하루아침에 피자 배달원으로 일하는 분도 있고 또 변호사였던 사람이 졸지에 택시운전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찌됐건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직업에 대한 귀천이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곳이다. 교수부인이 슈퍼마켓 등에서 막노동을 한다고 해도 누구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곳이 캐나다이며, 바꿔 말하면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결코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최종적으로 이민을 오고 오지 않고는 당연히 자신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한국을 떠나 오기 전 반드시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쓸데없는 오만(?)이나 자존심 등이 도사리고 있다면 이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와야 한다.

 

그 길만이 새로운 터전에서 하루 속히 적응하고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 05-11-08/송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