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 세탁기 돌리자, 아래층 물난리… 한파發 빨래대란
강추위에 배수관 꽁꽁 얼어붙어 세탁기 물 1~3층 저층에서 역류… 층간소음 못지않은 분란거리로
입력 2021.01.12 03:00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유모(50)씨는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시작된 지난주부터 닷새 내내 빨래를 제대로 못 했다. 유씨가 사는 20층짜리 아파트 배수관이 꽁꽁 얼어붙으면서 세탁 오수가 1·2층 베란다를 통해 솟구치는 역류(逆流) 현상이 나타난 탓이다. 유씨는 “주말 내내 아파트 경비실에서 ‘세탁기를 돌리지 말아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했다. 유씨는 4층에 살아 피해가 없지만, 아래층 이웃을 생각해 세탁기를 안 돌리다 보니 4인 가족이 쓸 수건부터 똑 떨어졌다. 유씨 아내가 급한 대로 손빨래를 했는데, 탈수·건조까지 제대로 못 하다 보니 닷새 만에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마침내 손을 들었다. 유씨는 “일요일(10일) 오후 2시쯤 빨래 바구니 챙겨들고 동네 코인세탁방을 찾았는데, 이미 동네 사람들이 몰려서 그 추운 영하 날씨에 1시간을 기다린 끝에 간신히 빨래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동네 세탁방은 한파 특수 - 11일 오후 서울의 한 코인세탁방이 빨래하러 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일주일째 몰아친 강추위로 수도관과 배수관이 얼어붙어 세탁기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동전을 넣어 이용할 수 있는 셀프 빨래방 이용객이 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이 35년 만에 최저 기온을 기록하는 등 전국에 일주일째 강추위가 닥치면서 곳곳에서 난데없는 ‘빨래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강추위에 배수관이 얼거나 혹은 세탁기 수도관 자체가 얼어 붙었기 때문이다. 아파트 각 가구 세탁기에서 나온 세제 섞인 물이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고, 1~3층의 저층 베란다로 역류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6일부터 11일 사이 수도 시설 동파 신고 건수는 7521건이다.
서울·경기 등 수도권을 비롯해 대전, 경북 포항, 전북 익산 등 전국 각지의 온라인 커뮤니티, 맘카페 게시판에는 뿌연 세제물이 역류해 꽁꽁 얼어붙은 아파트 베란다 사진과 항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우리 집이 아이스링크가 됐다’ ‘베란다에 폐수가 얼어 타일이 다 망가지고 냄새까지 나서 지옥 같다’ 등의 내용이다.
한겨울 빨래대란은 아파트 ‘층간 소음’ 못지않은 이웃 간 분란거리가 되고 있다. 중·고층 주민들이 빨래를 하면 누군지 찾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저층 주민들은 ‘베란다 물을 퍼내지 않으면 오수가 거실까지 밀려 들어오는 참사가 벌어진다’ ‘대체 어느 집에서 세탁기 쓰는 건지 일일이 문 열어 확인하고 싶다’ 등 항의 글을 올리고 있다.
이웃 간 피해를 막기 위한 팁도 공유된다. 경기도 양주시에 사는 남기홍(41)씨는 “철물점에서 9m 길이 호스를 사다가 세탁기에 연결해 물을 화장실까지 끌어다 버리고 있다”며 “4인 가족이라 하루에 한 번은 빨래를 돌려야 하는데 1층에서 물이 역류해 얼음판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대안을 찾은 것”이라고 했다.
동네 코인 세탁방들은 강추위에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동전을 넣고 세탁기와 건조기를 쓸 수 있는 무인(無人) 업소들이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세탁기가 4대 있는 무인 세탁방을 운영하는 송모(59)씨는 손님이 갑자기 몰리자, 주말인 10일 오전부터 저녁 7시까지 매장을 지켰다. 송씨는 “손님이 너무 많이 와 세탁물을 세탁기에서 꺼내고 넣는 일을 대신 했다”며 “평소 주말 매출이 30만원인데 이날은 45만원을 벌었다”고 말했다. 근처 다른 세탁방 주인 김모(59)씨는 “근처 아파트 단지 수도관이 동파돼 올 들어 열흘간 평균 매출이 지난달보다 30% 많다”고 했다. 11일 세탁방을 찾은 이 동네 주민 박모(53)씨는 “이웃에게 피해가 갈까 일주일 동안 빨래를 못했다”며 “오늘 처음 코인 세탁방에 와 봤다”고 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주민은 “근처 세탁방은 너무 붐벼 차를 타고 방배동 세탁소에서 빨래를 하고 왔다”는 ‘세탁 원정’ 후기를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세탁 대행 업체들도 덩달아 ‘한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세탁 전문업체 크린토피아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10일 사이 무인 세탁방 이용량은 전주(前週) 대비 30% 증가했고, 전월 같은 기간보다는 50% 늘었다. 비대면으로 세탁물을 배달하는 서비스 ‘런드리고’는 “지난 9~10일 이틀에만 약 6t 규모의 물빨래 주문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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