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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에서] 무방비로 맞는 '通商 전쟁'

권영구 2018. 3. 4. 17:29

[데스크에서] 무방비로 맞는 '通商 전쟁'


입력 : 2018.03.03 03:10

이위재 산업1부 차장
이위재 산업1부 차장

2002년 미국 부시 행정부는 중간선거를 앞두고 외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와 더불어 8~30% 관세를 매겼다. 나중에 폴 오닐 재무장관이 폭로한 대로 오하이오나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등 '러스트 벨트(rust belt)', 즉 철강기업들이 모여 있는 주(州)에서 표를 모으겠다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오닐과 에번스 상무장관 등이 자유무역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부시는 "협력적 업무 수행 자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오닐을 해임했고, 오닐은 부시를 '귀머거리로 가득 찬 방에 있는 장님'에 비유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속셈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이들에겐 경제학원론에 나오는 "무역 규제가 자유무역에 따른 이득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론 전체 경제적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전제는 안중에 없다. 그들 시선은 올 11월 중간선거와 다음 대선에 맞춰져 있다.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은 경제학 교수 출신인데도 강경 보호무역론에 동조한다. 경제학자들이 나바로에게 "(학자로서) 기본도 모른다"고 조롱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세계 각국은 자유무역을 신줏단지 모시는 척하지만 그건 계산기를 두드린 다음이다. 통상 마찰은 역사적으로 희극과 비극을 오가면서 되풀이되고 있다. 1961~64년 미국과 유럽은 '치킨 전쟁(chicken war)'을 벌였다. 값싼 미국산 닭 가공품이 유럽 시장을 장악하면서 서독과 프랑스·네덜란드 사육 농가들이 아우성을 치자 유럽은 수입 제한과 관세를 통해 방어에 나섰다. 미국은 유럽산 경트럭과 양주, 감자 전분 등에 보복 관세를 때렸다. 2000년 벌어진 한·중 마늘 분쟁도 비슷하다. 저가 중국산 마늘 공습으로 한국 농가 피해가 커지자 정부는 중국산 마늘 관세율을 30%에서 최고 315%로 올렸다. 중국은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 잠정 중단이란 보복 조치로 맞불을 놨다.

이번 철강 관세 선언도 마찬가지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가 너무 준비 없이 참전했다는 데 있다. 트럼프 당선으로 통상 포화가 밀려들 게 뻔한 데 탄핵·대선과 통상 라인 인선으로 8개월을 그냥 흘려보낸 게 뼈아팠다. 2년전 산업부는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수입 규제 가능성이 높은 철강, 석유화학, 섬유 산업 등에 대해 대비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결과는 참담했 다. 대통령 직속 통상 기구를 만들자는 전문가 제안은 통상 조직 소유권을 두고 벌인 외교부·산업부 밥그릇 싸움 속에 묻혔다. 최근엔 통상 조직 내 갈등이 심상찮다는 소식도 날아든다. 미국의 무역 제재 조치 최종 결재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이라도 잘 구슬리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겠지만 이번 정부에선 틀린 듯하다. 이래저래 수출기업들 탄식만 깊어간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2/201803020268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