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대통령에 'No' 하는 FBI
입력 : 2018.03.02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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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올 1월 29일 백악관에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을 만나 "메모 공개가 위험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메모'는 2016년 대선 때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에 대한 FBI 수사가 민주당에 편향됐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켈리는 레이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지만, 레이는 그날 밤늦게 켈리에게 다시 전화해 메모를 공개하지 말 것을 거듭 주장했다.
작년 6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레이 FBI 국장은 트럼프의 측근 인사로 꼽힌다. 그런데도 자기를 발탁한 임명권자에게 공개적으로 '반기(反旗)'를 들었다. 트럼프가 FBI 독립성을 흔든다는 이유에서였다. 'FBI 직원연합'도 트럼프 대통령이 메모를 공개하자 "정쟁(政爭)이 우리의 헌신을 훼손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국장부터 직원까지 모두 독립성 수호에 나선 것이다.
83년 FBI 역사에서 대통령과 맞선 수장(首長)은 더 있다. 전임 제임스 코미 국장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트럼프에게 '충성(loyalty)을 원한다'는 압력을 받았으나 권력의 손을 잡지 않아 해임됐다. 5대 국장 루이스 프리도 자신을 임명한 빌 클린턴 대통령과 충돌했다. 1997년 FBI는 클린턴의 대선 자금에 중국이 관여됐다는 정황을 수사하면서 클린턴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백악관이 "왜 보고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프리 국장은 "백악관이 연루됐는지도 모르는 사건을 왜 보고하느냐"고 했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거의 예외 없이 검찰의 힘을 권력 유지에 활용했다. 검찰은 이에 맞춰 정권의 코드에 맞추는 모습을 보였다. 현 정부 검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지금 검찰은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에 온 힘을 쏟는 모습이다. 검찰이 훼손된 독립성을 되찾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청와대는 공수처 설치와 검찰 수사권 축소를 통해 검찰 개 혁을 하겠다고 한다. 제도 개혁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검찰이 청와대 눈치만 보지 않아도 많은 게 달라질 것이다. 검찰청법 4조에는 '정치 중립 의무'가 명시돼 있다. 미국 PBS 방송의 올 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FBI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도는 57%였다. 9개 기관 중 3위로 법원보다 높다. 우리 검찰은 언제쯤 이런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1/201803010213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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