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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일자리 로또'는 안 된다

권영구 2018. 2. 2. 09:32


[기자의 시각] '일자리 로또'는 안 된다


입력 : 2018.02.02 03:15

김재곤 사회정책부 기자
김재곤 사회정책부 기자
최근 한 공공기관은 사무 보조 업무를 하던 기간제 여직원을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과 함께 정규직으로 전환해줬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 방침에 따른 조치다. 대학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일하던 이 직원은 일한 지 한 달 만에 이 회사 정규직이 됐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규직으로 일하기엔 일거리가 충분치 않아 기존 직원들의 업무를 일부 나눠주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부 지시로 정규직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지난해 경기도 고양시는 관내 도서관에서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복불복'식 채용이 논란이 됐다. 이 도서관에는 수년 동안 기간제 근로와 봉사활동을 오가며 사서(司書) 등으로 근무해온 비정규 직원들이 많았다. 이들은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다음번 기간제 채용 시 가점을 주는 제도 때문에 기간제 근로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오래 일한 만큼 경력과 경험이 쌓여 누구보다 도서관 업무에 능숙한 인재였다. 하지만 시(市)가 작년 7월 20일 근무자를 기준으로 비정규직을 일괄 정규직화하면서 이 시점에 계약 기간 만료로 잠시 일터를 떠났던 베테랑 사서들은 돌아올 곳을 잃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 점검회의에서 "청년 일자리에 대해 향후 3~4년간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각 부처가 그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내각을 질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년 일자리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여전히 '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는 고정관념이 과감한 대책을 가로막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 일자리 창출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을 보면 과연 정부가 대통령의 일자리 창출 주문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비정규직을 당장 정규직화하라거나 일자리를 만들어내라는 식의 상부 지시가 떨어지면 공무원과 공공기관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졸지에 기대조차 안 하던 정규직이 되거나 복불복식 '일자리 로또'에 누구는 당첨되고 누구는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입사를 위해 성실하게 취업 준비를 해 온 사람이라면 공정한 경쟁의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느낌에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에 대해 203 0세대는 "우리 선수들의 기회를 일방적으로 박탈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일자리 창출이 급해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채용 과정은 공정한 기준에 따라 공정한 경쟁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 2030세대로부터 '국민 세금으로 쉽게 거둔 돈 갖고 정부가 생색낸다'는 비판이 더 거세질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01/2018020103039.html